여기: 논의의 구성 방식
(2) 논의의 구성 방식
유럽 역사의 맥락에서 접근할 때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세속화 과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한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것이 정말 이 땅에 있었다면,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 가능한 것이 있어야 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고전적 이원론은 지상계와 천상계,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 하는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과정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 과정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첫째,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을 이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역사적 성향이 이 땅에 나타났어야 한다.
이 땅의 역사에 위 두 조건을 만족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그 과정은 분명히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하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을 이 땅의 역사에서 찾는 경우, 이에 대한 기준은 ‘내용적 유사성’과 같은 것에 국한될 수 없다. 왜 그런지 먼저 살펴보자.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것을 규명하는 것 자체가 이 작업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논의의 중심축은 일단 ‘고전적 이원론’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흔들리면서 시작되었다.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다면,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비교해 볼만한 것이 위협을 받거나 수정을 강요당했다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그렇게 비교해 볼만한 것이 위협을 받게 될 가능성에 대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지상과 천상을 구분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자. 그러한 구분은 몸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 바깥과 안, 그리고 사건의 전후 관계에 제한된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천체의 운동은 지상의 운동에 비해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천체의 규칙적이고 주기적 변화 없이는 지상의 생명은 유지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특별한 인물의 탄생이나 존재는 하늘과 관련되어 해석되곤 했다. 이러한 지상과 천상의 원초적인 구분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있었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섬세한 비교에는 사용될 수 없다. 그러한 비교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상과 천상의 원초적인 구분이 아니라, 그 구분에 대한 해석 방식이어야 한다. 이때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 즉 신성이 구현된 것으로 여겨진 천상계에 대한 이해 방식을 지상계에 적용할 수 없다는 관점은 그러한 해석 중 하나가 된다.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는지를 따질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신 개념을 반드시 어떤 초월적인 인격신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다양한 문화를 접근할 때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와 같은 것을 ‘신’으로 간주할 때, 신 개념은 어느 곳에서나 발견된다.
동북아시아의 신유학(新儒學)은 유교(儒敎). 도교(道敎), 불교(佛敎) 전통을 합성시킨 사유 체계이다. 특히 신유학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이 땅을 지배했기 때문에, 유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에는 신유학의 핵심 개념들이 도사리고 있다. 신유학에서 ‘궁극적 실재’는 모든 형태에 논리적으로 우선하는 ‘태극(太極)의 원리’, 즉 ‘이(理)’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세상의 어떤 부정적 측면이나 결함에 대한 원인을 그러한 ‘궁극적 실재’에 돌리려고 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기독교와 유교에 공통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유교 경전에서 신의 섭리와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던 17세기 서양 지식인들의 동기는 합당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신유학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이 땅의 삶을 지배한 정치사상이었고, 유교는 사회 통합의 원리로 기능한 종교였다. 물론 신유학에도 여러 파벌이 있었고, 그것이 동북아시와 동남아 일부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은 각 지역에 고유한 논쟁거리를 발생시켰다. 역시 기독교의 신 개념도 시대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 까닭에, 그 개념을 하나의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하지만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지배한 시기에는 지상계는 선이 결여된 영역으로, 천상계에게는 신성이 구현된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지상과 천상의 원초적 구분, 그리고 현실세계의 부정적 측면을 궁극적 실재로 가정된 것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사고방식은 기독교와 신유학 모두에 공통된 것이지만, 그러한 식으로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은 유교 전통에는 이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그것에 담긴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해 방식은 고전적 이원론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기독교 역사를 차지한 시기는 언제쯤일까? 그 시기는 신약이 형성된 이후부터 16세기 말까지로 여겨질 수 있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을 핵심으로 갖는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것은 단순히 내용적 유사성에 근거한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역사적 맥락을 비교할 때 고전적 이원론과 기능적 유사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즉, 그것은 한 시기를 지배했지만 점차 약화되는 성향을 보여야 하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유럽 역사의 한 시기를 지배한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는 과정은 세속화 과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것은 한때 이 땅을 지배했다가 흔들리게 되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 즉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지배하던 시기에 굳어진 기독교의 교리는 원죄설과 사후 구원론이었다. 원죄설과 사후 구원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를 융합하려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신약이 형성되는 시기에만 해도, 원죄설과 사후 구원론은 기독교 교리의 대세는 아니었다. 원죄설과 사후 구원론이 기독교 교리 해석에서 권위를 얻게 된 이유는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그 정치적 상황은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교황을 중심으로 유럽이 개편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논외로 한다면,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속에는 ‘악을 선의 결여로 이해하는 방식’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절대 선을 ‘유일한 존재론적 실체’로 가정된 신의 속성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깔려 있다. 궁극적인 실재로 가정된 이(理)가 기독교적 신 개념과 비교되어 이해될 여지가 있더라도, 선에 대한 그러한 이해 방식은 신유학 전통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맥락은 고전적 이원론과 다를 수밖에 없다. ‘중심과 주변의 맥락’이라 부를 그 맥락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기 위해, 선과 실체의 관계를 간략히 다루어 보자. 이를 통해 중심과 주변의 맥락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게 되면, 유럽에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는가라는 문제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