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윤색 문제: 연주와 해석
* 윤색 및 문제 개발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다음 자료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GK 비판적 사고 031-381-2282)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음악 연주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특히 18세기부터 음악 이론 분야에서 활발하게 나타났다. 이 분야 연구의 획기적 성과는 음악 작품의 연주를 지칭하는 개념인 ‘연주(Vortrag)’가 생기면서 나타났다. ‘연주(Vortrag)’란 용어는 연사가 원고를 읽듯이 악보를 객관적으로 소리화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가수나 기악 연주자와 음악 작품 사이를 객관적 관계로 고정시켜 이해하였던 음악 연주는 수사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연주자와 웅변가의 유사성은 18세기 대부분의 연주 이론서에 언급되었다. 이 분야의 주요 저서를 남긴 크반츠는 음악을 웅변에 비유하면서, 훌륭한 연주는 훌륭한 강연과 유사하게 명확한 소리로 청중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고 당시 음악 연주에서 다양성이 허용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18세기 음악과 수사학의 중심을 이룬 미학은 ‘영향 미학’(또는 ‘감정 이론’)으로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사나 연주자가 언어의 힘 또는 음악의 힘을 통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는가였고, 이것이 바로 연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즉, 연주자는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주체를 버려야 했고, 연주하는 작품이 표현하는 감정에 빠져서 그 감정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연주론의 중요한 변화는 1800 년을 전후로 미학적 경향이 ‘영향 미학’에서 ‘작품 미학’으로 바뀌면서 나타났다. 작품이 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을 집중했던 미학적 평가는 가사나 표제 같은 음악외적 요인이 연관되지 않는 순수 기악 음악 -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과 같은 절대 음악 - 의 탄생과 더불어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 이제 음악 작품은 작곡가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정되었고, 이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구성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연주하고자 하는 음악 작품을 현재의 시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현대적 편곡 연’'라는 새로운 연주 유형이 등장하게 된다. 음악 작품이 독자적인 미학적 내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음악 연주는 ‘해석(Interpretation)’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의 상황과 함께 더욱 두드러졌다. 전축·녹음기의 발명 이후 음반(LP, CD)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실제적인 음악 연주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직접적인 음악 감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회적인 현상이었던 ‘연주’는 음반의 활성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게 되었고, 제작된 음반은 고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실제 연주와 거의 가까운 생생한 음을 재현하게 되었다. 또한 음악 인구의 증가와 전문화 경향에 영향을 받아, 작곡가와 연주가의 분리가 정형화되었으며, 연주자 가운데에서도 장르나 시대 또는 작곡가에 따른 전문 영역이 세밀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주를 일종의 '해석'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화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다른 연주와 구별되는 독자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들어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
1. 위 글에 근거한 판단으로 적절한 것에 대해서는 ‘O’를,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X’를 표기해 본다면?
(1) 지휘자가 곡의 템포나 멜로디의 장단을 임의로 조절하여 원곡을 해석하는 것은 18세기 연주론에서는 좋게 여겨지지 않았군. ( )
(2) 크반츠는 곡이 표현하려는 정서를 청중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을 연주의 힘이라고 생각했겠군. ( )
(3) 18세기 연주론에 따르면, 작곡가의 의도가 연주를 통해 청중에게 전달될 필요는 없었군. ( )
(4) 작품을 작곡자와 분리시켜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지휘자는 작품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억압감에서 해방되었군. ( )
(5)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동일한 곡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입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었어. ( )
2. <보기 2>는 <보기 1>의 주장들에 대한 평가이다. 위 글에 근거해 판단할 때, <보기 2> 중 적절한 것을 모두 고른다면?
<보기 1>
로마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Qunitilianus): “인간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훌륭한 웅변가는 반드시 음악의 원리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후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 마테존(J. Mattheson): “음악가는 멜로디를 마치 웅변처럼 여기고 작곡을 해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작가 버틀러(C. Butler): “음악은 마음에 특정 정서가 일어나도록 소리와 기악을 구성하는 기예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 A. Mozart): “나는 사람들이 나의 작품에서 어떤 느낌을 얻는지, 그리고 나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오로지 내가 느낀 것에 따라 작곡할 뿐이다.”
|
<보기 2>
(가) 퀸틸리아누스의 입장에 따르면, 훌륭한 연주는 작곡가가 의도한 것을 청자들이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 (나) 마테존의 입장에 따르면, 수사학에 대한 공부는 작곡에 도움을 줄 수 있겠군. (다) 버틀러의 입장은 19세기 이후 미학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어. (라) 모차르트처럼 작곡가가 청자의 정서적 반응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면서, 악보에 따른 정확한 연주의 중요성도 약해지게 돼.
|
① (가), (나) ② (가), (나), (다) ③ (가), (나), (다), (라)
④ (나), (다), (라) ⑤ (다), (라)
3. <보기>를 위 글에 보충시킨다고 하자. 이렇게 완성된 글에 대한 판단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쇤베르크는 20세기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음의 높낮이와 리듬만으로 구성된 작은 단위들의 변형과 발전을 통해 구현되지만, 주음-부음 관계를 파괴하는 불협화음 전략에는 억압적 사회 구조로 인한 고통, 이에 대한 폭로와 저항 등이 오묘하게 함축되어 있다. |
① 작곡자가 의도한 정서를 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작곡가와 청자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어. 이것은 현대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② 과거에는 특정 음이 특정 감정을 나타낼 목적으로 사용되었어. 특히 18세기 이전의 서양 음악이 그렇다고 할 수 있어.
③ 과거에서 현대로 오면서 음악이 표현하는 영역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지. 특히 특정 음을 사회 문제와 연관시켜 보려는 시도는 18세기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해.
④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지. 고통이라는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다면 전쟁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지.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을 사용한 방식은 이에 바탕을 두고 있어.
⑤ LP로 18세기 이전의 바로크 음악을 듣는 경우, 모든 사람들이 그 음악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갖는다는 보장은 없어. 또 동일한 사람이 그 음악에 대해 항상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야. 19세기 미학은 이점을 무시하지 않았지.
4. 위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① 18세기에는 연주자와 음악 작품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을 강조하였다.
② 18세기에는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연주가 좋은 연주로 평가받았다.
③ 19세기에는 음악 작품의 독자적 가치에 의의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④ 19세기에는 작곡가와 작품 사이의 관계를 긴밀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⑤ 20세기에는 연주자의 개성적인 음악 연주의 독자성이 인정되고 있다.
5. 위 글의 표제와 부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연주론 변화의 원천
--음악에 대한 미학적 경향의 변화를 중심으로
② 연주 개념의 변천 과정
--'연주'와 '해석'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③ 음악 연주의 현대적 의미
--음악과 다른 예술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④ 음악 연주의 변화와 음악 감상
--관련 기술 발전의 영향을 중심으로
⑤ 음악 이론의 미학적 토대
--'영향 미학'과 '작품 미학'의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6. 위 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바그너는 1873 년 바이로이트 개관 기념으로 베토벤의 '9번 심포니'를 직접 지휘했는데, 이때 그는 이 작품을 수정하여 연주했다. 그 이유와 방법에 대해 바그너는 자신의 글 "베토벤 '9번 심포니'의 연주에 관하여"에서 자세히 논증하였다. 그는 베토벤이란 한 거장의 의도를 올바르게 실행하기 위해서 작품의 편곡 연주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베토벤은 청각 장애로 인하여 그가 작곡한 관현악곡의 음향적인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2) 베토벤은 금관악기를 사용할 때 악기의 한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나, 바그너 당시에는 악기 기술이 발전하여 금관악기도 주요한 선율의 흐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
(1) 베토벤은 청각 장애로 인하여 그가 작곡한 관현악곡의 음향적인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2) 베토벤은 금관악기를 사용할 때 악기의 한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나, 바그너 당시에는 악기 기술이 발전하여 금관악기도 주요한 선율의 흐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① 바그너는 베토벤의 '9번 심포니'를 '연주'하기보다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군.
② 바그너는 베토벤과 '9번 심포니'를 분리시켜 그 작품을 '현재의 시대적 관점'에 맞게 재구성하려고 하였군.
③ 바그너는 '9번 심포니' 편곡 연주를 통해 바그너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음악 연주를 시도하였군.
④ 바그너의 '9번 심포니' 연주는 다른 연주자의 연주와 차별되는 독자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군.
⑤ 바그너의 '9번 심포니' 연주는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인 동시에 바그너를 감상하는 것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