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잡세상 잡글

[아인슈타인 구출 작전 1] 착한왕의 지하실

착한왕 이상하 2010. 1. 17. 17:42

착한왕의 지하실

 

 

 

학교 수업을 마친 무름이는 혼자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혼자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빨리 집에 가서 어제 끝내지 못한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아빠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아빠를 좋게 보려고 해도, 아빠를 아인슈타인 박사와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빠의 수학 실력은 정말 보잘 것 없다. 과학에 대해 물어 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무름아 잠깐만 있어봐.”

 

그리고는 아빠는 몰래 방 안에 틀어 박혀 인터넷을 뒤진다. 이 광경을 지켜볼 때마다 무름이는 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에휴!”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름아,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니?”

 

젠장, 착한왕 할아버지였다.

 

무름이가 자칭 ‘착한왕’이라고 주장하는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착한왕이 귀찮았다. 그와 얘기하다 보면 아인슈타인 전기를 오늘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왕은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선글라스를 걷어 올리면서 착한왕이 갑자기 ‘@$%563352721’라고 말했다.

 

“도대체 뭔 소리에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요.”

 

“무름아 ‘@$%563352721’는 아인슈타인의 모든 정보를 담은 계란의 번호란다.”

 

“왜 그러세요? 오늘 너무나 이상하세요,”

 

무름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혼자 키득거리는 저 늙은이를 떼어 버릴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다.

 

“에너지는 질량에다가 속도의 곱의 곱한 것이지.”

 

“어, 할아버지가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방정식을 어떻게 알아요? 우리 아빠는 에너지가 질량 곱하기 속도로 알고 있던데, ... .”

 

“흐흐흐, 내가 모르는 게 있니?”

 

착한왕은 위인전기에도 없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무름이는 착한왕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무름이의 발걸음은 착한왕의 발걸음에 맞춰져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름이는 걸어가면서 남루한 옷차림의 착한왕을 힐끗 힐끗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아빠보다 수학은 잘하시는 것 같네요.”

 

“수학이 그렇게 중요하니?”

 

“물론이죠. 수학을 못하면 과학을 할 수 없으니까요.”

 

“과학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벌써 다 공부한 것이에요. 그래서 엄마가 수학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구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수학은 항상 빵점을 맞은 과학자도 많은데. 그리고 수학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과학도 있단다.”

 

“그런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한 과학자는 아니죠. 또 수학이 필요 없는 과학은 중요한 과학이 아니죠.”

 

착한왕은 웃으면서 무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이윽고 산속에 있는 착한왕의 집에 도착했다. 무름이는 갑자기 겁이 조금 났다.

 

“설마 착한왕이 인간의 탈을 쓴 늑대는 아니겠지.”

 

착한왕의 집은 무름이의 집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방 한 구석에는 피자 박스가 약 1미터 높이 정도로 쌓여 있었다. 이 산 속까지도 피자 배달은 오는 모양이었다.

 

“피자나 큰 걸로 한 판 시켜 먹을까?”

 

“됐어요. 배 안 고파요. 어서 번호 ‘@$%563352721’이 붙은 계란이나 보여 주세요. 그 계란 속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면서요?”

 

“급하긴, 이리로 오너라.”

 

착한왕은 피자 박스들을 치웠다. 바닥에는 빨간색 바탕의 네모난 뚜껑이 있었다. 착한왕은 뚜껑을 열고 초록색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 가운데가 뻥 뚫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구멍이 나의 지하실로 통하는 곳이지. 사닥다리를 조심해서 밟고 내려 오거라. 저 번에 먹다 남은 피자 찌꺼기가 사닥다리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지하실로 내려가다가 구른 적이 있단다.”

 

무름이는 입만 벌리고 서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지하실로 내려온 무름이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 공간은 무름이의 집을 몇 채 합친 것보다 더 넓었다.

 

“놀라긴, 무름아 이리와 친구들과 인사하렴.”

 

착한왕은 무름이에게 ‘밴드’라는 이름을 가진 암탉을 소개시켜줬다. 일반 암탉보다는 두 배 정도 큰 몸짓의 밴드는 생김새도 달랐다. 머리통은 앵무새를 닮았고, 목에는 검은 띠가 있었다.

 

착한왕은 밴드에게 줄 먹이를 갖고 왔다.

 

“헉, 밴드가 이걸 먹어요?”

 

착한왕은 평소에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버린 책들을 모아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무름이는 아파트의 쓰레기 폐기장에서 착한왕을 만났던 것이다.

 

착한왕은 사람들이 버린 헌 책들을 분쇄기에 넣어 갈았다. 가루가 된 책에 쵸콜릿 시럽을 정성스럽게 뿌렸다. 책 가루가 밴드의 먹이었던 것이다.

 

“자, 이제 보렴. 밴드가 알을 낳는 광경을!”

 

책 가루를 다 먹은 밴드는 커다란 황금빛의 알을 낳았다. 착한왕은 그 알에 ‘@$%956825245’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이 알에 뭐가 들었게?”

 

“글쎄요?”

 

“밴드가 먹은 책의 모든 정보가 들었단다.”

 

책 속에 담긴 정보는 읽어낼 수 있지만, 알속에 담긴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름이는 궁금하기만 했다.

 

“주인님, 손님을 데리고 오셨네요.”

 

“검은 병아리야, 무름이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니 앞으로 주인처럼 모셔야 하느니라.”

 

무름이는 뒤를 쳐다봤다. 착한왕이 ‘검은 병아리’라 부르는 거대한 기계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검은 병아리는 외눈박이에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병아리야, 번호 ‘@$%563352721’의 계란을 삼키렴.”

 

착한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563352721’의 계란이 검은 병아리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름아, 이리로 들어오렴.”

 

착한왕은 검은 병아리의 몸통에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름이는 약간 겁이 났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착한왕을 뒤따라 검은 병아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