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21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 대만은 2000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놓고 찬반론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이 번에 합헌 판결이 하나 나왔다.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번 합헌 판결을 놓고 온나라가 부글부글 끓는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판결을 놓고 대만과 한국을 비교할 때,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 물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면, 책 한 권 분량의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최소한의 논의만 전문적 주해 및 주석 없이 전개한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를 합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이를 둘러싼 논쟁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자칭 진보를 대표한다는 경향 신문은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발하는 이유로 '양심'에 대한..

<세속화 '저기'와 '여기'> 머리말 완성본

* 과거에 올린 머리말은 삭제했다. '원고 구성 방식'에 해당하는 도식 이하 부분은 새롭게 덧붙여진 것이다.지금 올린 것을 약간 수정해 의 머리말로 사용할 것이다. 머리말 세속화(secularization)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정치 등의 분야가 종교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종교 교리가 특정 이념으로 해석될 때, 세속화는 ‘그 어떤 이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끌려가지 않게 된 상태’를 뜻한다. 세속화된 사람이란 ‘어떤 이념에 관심을 갖더라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진 이들’을 뜻한다. 따라서 그 어떤 종교 교리에 ‘삶의 지도’를 내맡기길 거부하는 무종교인(無宗敎人)은 적어도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세속화된 사람이다. 무신론자가 무종교인일 수 있지만, 무종교인이 무신론자일 필요는 없..

<세속화> 후기: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계몽주의)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에 대한 비판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는 ‘특정 지역의 역사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 특정 지역의 사회 상태 및 변화가 실현 가능하도록 해준 고유의 가치 체계, 문화, 사고방식 등이 있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전제한다는 것’은 ‘그러한 고유한 것들이 특정 사회 상태 및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고유한 것들이 없으면 특정 사회 상태 및 변화가 불가능함’을 뜻한다. 특정 지역 X의 사회 상태 및 변화가 다른 지역 Y에서도 실현 가능하려면, Y는 X의 그러한 사회 상태 및 변화가 가능하도록 해준 고유한 것들을 모방 수용..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에 대한 구상 1. 물음들

* 과 연관된 글 인간, 자연, 사회,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세계 이해 방식의 변천 과정을 다루는 것을 지성사라고 할 때, 세속화 담론은 새로운 세계 이해 방식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것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무종교인의 관점에서 세속화 과정을 서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현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종교인이 종교적 교리들의 진위에 무관심하다고 할 때, 그는 그러한 교리들 속에 반영된 그 어떤 세계 이해 방식에도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그가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에게 세계 이해 방식들이란 진위 여부의 단순한 판단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 중 상당수는 특정 시대 지역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

<세속화> 후기: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막스 베버)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를 가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들 중 베버 형제가 있다. 특히 축의 시대에 형성된 종교를 ‘주술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는 야스퍼스의 관점은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야스퍼스와 달리 기독교의 모든 종파를 ‘주술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톨릭은 주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종교였다. 베버는 가톨릭 미사의 설교 시간이 개신교의 설교 시간보다 짧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신교의 설교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관련된 도덕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 반면, 가톨릭 미사의 제의에는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초자연적 힘에 호소하는 주술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한 주술성과 가톨릭 성체의 의미, 곧 ‘초자연적인 것에 자신을 내맡겨..

<세속화>후기: 두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축의 시대 1)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축의 시대’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인물은 야스퍼스(K. Jaspers)이다. ‘축의 시대’란 서기전 500년 이후 여러 문명권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현실 초월성’을 발견한 시대를 일컫는다. 그러한 ‘현실 초월성’은 종교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전통 및 자연의 매개로 신적인 것과 접촉하는 세계 이해 방식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이때 인간은 신적인 것과 직접적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며 구원의 대상이 된다. ‘현실 초월성’은 철학적 측면에서는 상황과 무관한 ‘초월적 혹은 보편적 진리’를 뜻한다. 종교적, 철학적 측면에서의 ‘현실 초월성’은 ‘진정한 개인 개념’을 함축한..

<세속화> 후기: 첫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독단적 지성사란 세계 이해 방식들의 복잡하고 역동적 거래 관계의 흐름을 숨겨 버리는 ‘역사 서술 방식’을 일컫는다. 그러한 첫 번째 역사 서술 방식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 두 세계 이해 방식 W1, W2를 골라내어 둘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 관계 맥락 속에 내용적으로 고정시켜 버린다. 이때 W1, W2가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은 누락된다. 이와 함께 그러한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인공 환경의 물질적 조건의 변동, 전쟁 및 자연 재해,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동 맥락 등도 누락되기 쉽다. 지나치게 대립적 관계 맥락 속에 내용적으로 고정된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