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Man Argument 5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6. Why The Third Man?

6. 제 3의 사람 논증 TMA에 대한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은 플라톤의 지적 발달 과정을 추적하는 데 두 가지 접근법이 가능함을 분명히 해준다. 첫 번째 접근법은 ‘플라톤도 여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적 혼란 혹은 혼선에 빠질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의 저술들을 분석해 나가는 접근법’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블라스토스는 자신이 TMA에서 발견했다고 여기는 플라톤의 지적 혼선을 바탕으로 ‘플라톤의 지적 겸손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에 대한 근거로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그럼에도 첫 번째 접근 방식을 받아들이면, 플라톤의 저술을 대할 때 그에게서 정합적 형상론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5.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

5.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에 따르면, OM과 U는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TMA의 무한 후퇴 논증을 발생시키는 과정에 UI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 과정은 OM, SP, NI에만 근거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에 따르면, OM은 U를 전제한다. 물론 이때 그 전제 방식이 단순히 OM과 U의 형식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OM에 U가 내용적으로 이미 함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지는 논의거리가 될 수 있다. 전자의 전제 방식은 OM과 U의 분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반면, 후자의 전제 방식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OM이 U를 전제하는 방식은 논외로 하자. U를 전제한 OM 방식을 OMU라 할 때, OMU는 다음과 같다. • OMU 임의로 주어진 n개..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4. Predicates pros heauto vs. ta alla

4.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당연히 TMA를 피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TAM는 그들의 형상론을 반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 플라톤은 TMA를 피해 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에서 TMA를 피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위 문제를 ‘TMA 문제’라고 하자. 앞서 살펴본 현재의 TMA 구성 방식을 고려할 때, 그 해결 방법은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다. • TMA의 무한 후퇴 논증은 OM, SP, NI에 근거하고 있다. 무한 후퇴가 발생하지 않도록 OM, SP, NI 모두 혹은 적어도 하나를 부정 혹은 수정하거나, 적절히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OM과 U는 더 이상 모순 관계를 맺..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3.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

3. 현재 대세인 TMA의 구성 방식은 다음의 절차를 따른다. • 첫째, OM, SP, NI를 바탕으로 하나의 형상 도입이 결국 무한개의 형상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무한 후퇴 논증을 건설한다. • 둘째, 무한 후퇴 논증의 결론이 U와 모순되기 때문에, U, OM, SP, NI는 하나의 무모순적인 체계를 이룰 수 없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직접적 결론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보조 정리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의 핵심은 첫 번째이다. (i) OM에 따라 o1, o2, ..., on 모두 F일 때 o1, o2, ..., on들이 참여하는 적어도 하나의 ‘F와 관련된 F-ness’가 있다. (ii) NI에 따라 F와 관련된 그러한 어떤 F-ness는 각 oi(1≤i≤n)..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1. 논의의 전체 윤곽

* 다음 글은 추후에 수정되어 나의 원고 의 부록 중 하나로 사용될 것임을 밝혀 둔다.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 3의 아름다움 논증’과 같은 것 대신 ‘제 3의 사람 논증’이라는 용어를 택했을까? - 1.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불변하는 하나됨’이 세계의 본 모습이라고 주장한다(Owen에 의해 널리 퍼진 이러한 해석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이 거의 통념처럼 굳어져 여기서는 그냥 차용함을 밝혀 둔다).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역설들은 불변하는 것들을 가정하여 양적 변화 및 질적 변화 모두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제논의 책을 읽고 그의 역설들을 비판한 후 파르메니데스와 대화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