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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룸메이트 존 윅킨스

착한왕 이상하 2020. 9. 10. 17:59

아이작 뉴턴 1661년 캠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할 때, 그의 입학 조건은 적은 비용의 학비 대신 부유층 학생들과 선생들의 심부름을 담당하는 것! 이 사실은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나 정작 뉴턴은 그들에게 봉사하는 커녕 그들을 완전히 왕따시켰고, 본인도 왕따를 당하게 된다. 당시에도 기숙사에서 학생들의 파티가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고립된 삶의 대명사 뉴턴은 그런 파티를 극도로 혐오했다. 어느날 소음을 피하려고 바깥에 나갔다가, 역시 자신처럼 소음을 피해 나온 2년 후배 존 윅킨스(John Wickins)를 대면하게 된다. 이리하여 둘은 1665년 함께 살게 된다.

 

뉴턴이 1684년 트리니티 칼리지를 떠날 때까지, 뉴턴과 존 윅킨스는 룸메로 동일한 거주 공간을 공유했다는 것! 이것 때문에 혹시 둘이 동성 관계가 아닌지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여러 증거들을 볼 때, 윅킨스는 뉴턴의 집사 같은 역할을 했다. 실험실 정리, 실험 돕기, 밥상 차려주기, 아프면 간호 등 말이다. 뉴턴의 천재성을 알아챘다 하더라도, 20여년 동안 윅킨스의 생활은 거의 노예짓을 한 것 같다.

 

뉴턴이 트리니티 칼리지를 떠나면서, 둘의 관계도 깨진다. 왜 깨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윅킨스는 이후 뉴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턴의 숨겨진 비밀> 등과 같은 책을 출판해 한몫 챙겼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도 뉴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턴은 그 괴팍한 명성 만큼이나 돈을 펑펑 써댄 인물이었는데, 주변 인물들에게 고가의 선물, 기부 등을 많이 했다. 실례로 자신의 사촌 여동생 컨듀잇의 딸에게 6천파운드나 남겼다. 트리니티 칼리지를 떠날 때에는 모든 가구와 일부 편지들을 모두 윅킨스에게 주었다. 윅킨스의 아들은 그것들이 뉴턴의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보관했다고 한다.

 

다음은 뉴턴의 프리즘 실험을 묘사한 삽화인데, 윅킨스가 사색에 잠긴 뉴턴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