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81

계몽주의 다시 보기(수정)

1. ‘계몽(enlightenment)’ 또는 ‘계몽 운동’과 같은 용어는 있어도, ‘계몽주의’라는 용어는 원래는 없다. ‘계몽주의’에 직접 대응하는 ‘저기’의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계몽주의’란 ‘계몽 시대의 철학’ 혹은 ‘계몽 시대의 중요한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라는 ‘저기’의 표현을 압축시킨 것에 불과하다. 계몽 시대는 일반적으로 유럽 역사의 ‘16세기 말 또는 17세기 초에서 18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를 일컫는다. 물론 그 시기 유럽의 모든 지식인이 계몽주의자들은 아니다. 또한 계몽주의자들의 입장도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계몽 운동’이라 불린 별도의 사회 개혁 운동도 실제로는 없었다. 다만 사회 개혁 운동에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인물들이 참가하거나, 그들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헬로’

알렉산더 그래엄 벨의 ‘헬로우’ 1. 지식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확산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은 지식과 사회를 매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해당 지식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수준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업에 의존적이다. 이렇게 재구성된 지식은 상품의 가치를 지닌 인공물과 같은 하드웨어(hardware)나 프로그램 혹은 책과 같은 소프트웨어(software)로 사회에 확산된다. 지식이 기업을 매개로 하여 사회에 확산되는 과정은 복잡하다. 그 과정에서 지식의 소유자, 기업, 사회 모두가 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을 중심으로 한 전화 산업 발전의 역사적 사례는 지식의 소유자, 기업, 사회 모두가 득을 보게 된 운 좋은 경우에..

파라오 항문의 수호자, 네루 푸이트

현대 의학은 면역, 신경, 내분비 체계 및 기관의 기능 구분에 따른 많은 분과가 있다. 고대 이집트 의술 체계는 현대 의학보다 더 많은 분과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술 성격을 지녀 의사가 제사장을 겸하기도 한 고대 이집트 의술 체계는 당연히 현대 의학보다 발전하지 못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신적 요소들이 고대 이집트 의술 체계에 뒤섞여 있다. 기관마다 그리고 질병마다 각각을 다루는 별도의 의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의술 체계는 지금보다 더 많은 분과로 구성된 것이었다.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기를 원한 파라오의 경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담당하는 별도의 의사를 두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비문, 석판, 파피루스 등을 보면, 파라오의 항문병과 항문 관리를 담당한 별도의 의사들이 있었다. 그..

유럽의 반유대주의 역사 2. 그 흐름, 루터의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

민족 또는 종교 제거적 반유대주의의 정서적 뿌리인 유대인 및 유대교에 대한 반유대 정서의 역사는 최소한 고대 로마 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제국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 인식되었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으며 유대교에 근거한 교리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혹은 공통 시대 이전 70년경 로마 제국이 유대 국가를 멸망시킨 후, 유대인들은 고대 세계 전역으로 흩어졌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정식 단일 국교가 되기 전까지 동일 지역의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은 그들 각자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다신교 사회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정치적 문화를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그 조화로운 관계는 깨졌고, 유대교와 유대인들은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글 보기 ..

유럽의 반유대주의 역사 1. 민족 제거적 반유대주와 종교 제거적 반유대주의

유럽의 기독교 중심 종교사, 20세기 후반 이후 중동 지역 분쟁사를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이다.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는 독일 언론인이자 급진 좌파 운동가 빌헬름 마르(Wilhelm Marr, 1819-1904)의 1879 저서 에 처음 등장한다. 마르는 현재 과학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난 과학적 인종주의(scientific racism)와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에 근거해 독일의 유대인 포용 정책을 당시 독일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마르가 적대시한 것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포함한다. 마르는 유대인들의 활동을 그냥 방치하면 독일이 재력을 바탕으로 한 유대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마르의 ..

간토 조선인 대학살과 계엄령의 목적을 둘러싼 논쟁

일본의 군사적 제국주의 혹은 군국주의의 다이쇼 시대 1910년대와 1920년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제 1차 대전을 틈타 일본은 1910년대 쉽게 아시아 전역을 파고들었고,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맞았다. 1920년대 상황은 돌변한다. 정치적으로는 군국주의, 온건한 제국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더 나아가 정부 구성에서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즘 혹은 무국가주의 세력들이 나타났다. 극심한 불평등에 대항해 노동자 및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일본 천민 계급인 부라쿠민 사람들도 일본수평사(日本水平社)를 조직했다. 경제 불황기 속의 정치 판세 변화로 권력의 핵심인 군국주의 세력은 1918년 쌀 폭동 민란과 같은 대규모 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걱정했다. 군구주의 세력은 치안유지령을 ..

거리의 여성 1865년 런던, L. 니드의 빅토리아 시대의 바빌론

19세기 중엽 유럽 국가들의 사회 상태를 ‘젠더’와 연관지어 논의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있다. 생산 방식의 변화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활동 무대 및 시간성에 따라 더욱 명확해지면서, ‘남성’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로질러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반면에 여성은 ‘사적 영역’, 특히 가족 사회에 구속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젠더 역할 구분론은 당시 사회들을 분석할 때 유용하다. 당시 사회 상태의 지배 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끌어 낸 입장이기 때문이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3197020253 거리의 여성 1865년 런던, L. 니드의 빅토리아 시대의 바빌론 19세기 중엽 유럽 국가들의 사회 상태를 ‘젠더’와 연..

타이타닉과 올림픽호, 방수 격막 디자인

올해 2023년 6월 18일 타이타닉(Titanic)호 관광 잠수정이 출항한 지 1시간 45분만에 연락두절되었고, 이후 폭발음이 감지되었다고 한다. 탑승객 5명은 모두 사망했다. 이번 사건으로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타이타닉호 침몰 원인 중 하나로 설계 디자인의 문제점이 거론된다. 때로는 글보다 그림이 많은 것을 쉽고 빠르게 알려 준다. 타이타닉과 올림픽(Olympic)의 구조 설계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타이타닉 설계 디자인 방식의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3136929593 타이타닉과 올림픽호, 방수 격막 디자인 올해 2023년 6월 18일 타이타닉(Titanic)호 관광 잠수정이 출항한 ..

의자가 필요 없는 남자

의자가 필요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몸 형태는 어떨까? 엉덩이 쪽에 다리가 붙어 있는 형태를 상상할 수 있다. 그 세 번째 다리는 꼬리처럼 균형을 잡아 주기보다는 앞 두 발을 들고 줄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엉덩이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이다. 프란체스코 프랭크 렌티니(Francesco “Frank” Lentini)라는 이탈리아 남자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의자가 필요 없는 남자’로 소개했다. 프랭크 렌티니는 엉덩이 골반에 세 번째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다리만을 사용해 줄넘기도 할 수 있었다. 렌티니가 ‘의자가 필요 없는 남자’로 자신을 소개한 것에는 그의 유머 감각이 반영되어 있다. 렌티니는 다리가 세 개인데 어떤 식으로 양말이나 신발을 사는지 묻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두 켤레를..

르 프티 주르날 삽화 1911, 1907, 모로코, 조선, 프랑스

내일 목요일 새벽 4시 피파 월드컵 2022 준결승전 프랑스 대 모로코 경기가 열린다. 이 경기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모로코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모로코는 우리 눈에 분명히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인데, 정작 많은 모로코 사람들은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서북부 식민지는 모로코와 유사한 인종 분포, 역사, 문화를 가진 알제리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의 이원화된 식민지 통치 정책이며, 두 번째는 서사하라 소유권을 둘러싼 모로코와 알제리의 극심한 갈등이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955636279 르 프티 주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