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6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3. 태초(빅뱅)를 둘러싼 논쟁 (수정)

(3) 태초를 둘러싼 논쟁 자연에도 역사가 있다면, 그 출발점을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정당하다. 하지만 자연의 역사가 태초를 가정하는 전일적 우주 역사 HCH 속에 귀속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기독교의 신 개념과 양립하기 힘든 우주론은 빅뱅 가설에 근거한 우주론이 아니라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이다. 빅뱅 가설은 과학적으로 확정된 가설이 아니다. 빅뱅 가설은 일부 발견에 사변(speculation)이 개입된 하나의 우주론일 뿐이다. 현대 과학은 태초의 물음을 다룰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까닭에,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도 빅뱅 가설에 근거한 우주론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빅뱅 가설’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과학을 상징하게 되면서, 또한 우주에 대한 대중..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2.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 (수정)

(2)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만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더욱이 자연의 역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러한 우주론이 기독교의 신 개념과 모순된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여기서는 다음 물음과 관련하여 그 이유를 밝히고, 이어지는 글에서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을 살펴볼 것이다. • 자연의 역사를 수직선에 비유할 때 그 수직선의 출발점을 가정할 수 있는가? 그러한 출발점은 우주의 태초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자연의 본모습을 부분들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으로 가정하는 경우, 자연의 역사들은 그러한 반복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우주의 국소적 현상들이다. 따라서 태초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가? 태양계가 사라진다면, 생명체가 안식처로..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1. 열린 체계로서의 과학 (수정)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촘촘히 배열한다고 생각해 보자. 현대 과학에 익숙한 이는 죽은 물질계(物質界)에서 출발하여 원시생물을 거쳐 인간에 이르는 과정을 연대순으로 배열할 것이다. 그는 질적 상태 변화의 비순환적 과정, 즉 자연의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의 수직선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방향성을 갖는 수직선을 ‘자연의 역사선(nature's history line)’이라 부르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촘촘히 배열한다고 할 때 우주 전체가 위계질서를 가진 하나의 사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비유에 근거한 것이 바로 ‘존재 사슬’이다. 존재 사슬이 기독교의 다양한 신 개념과 맞물려 논의될 수 있다. 또한 그..

창조 신화와 자연의 역사 3. 성서 대 자연, 그리고 매개 개념 (수정)

(3) 성서 대 자연, 그리고 매개 개념 성서에서 신의 섭리를 찾든,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든, 그 섭리는 신의 속성으로 여겨지는 전지전능함, 충만성, 통일성과 같은 것과 관련을 맺게 된다. 이 때문에, 신의 섭리를 성서에서 찾아보려는 입장과 자연에서 찾아보려는 입장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두 입장의 공조 관계는 다음의 경우에 깨어지게 된다. • 성서를 은유의 체계로 여기지 않고 글자 그대로 믿는 경우 • 성서의 은유 체계를 적대시 하는 경우 첫 번째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자. 성서의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인류의 역사가 자연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그는 창세기의 논리적 비정합성도 무조건 거부하려 든다. 그는 인간이 신에 의해 특별히 창조된 존재..

창조 신화와 자연의 역사 2. 6일 (수정)

(2) 6일 자연 환경은 태고로부터 인간에게 생존을 위해 적응해 나가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공간은 인간에게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생존을 위협하는 변덕스러운 위험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자연 환경을 생존에 적합한 인공 환경으로 변형시켜줄 과학기술이 없었던 시절, 자연의 변화는 역사 담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반면, 특정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음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기록과 고증에 근거한 역사학이 출현하기 전에도 집단의 유래와 고유성을 간직하려는 노력은 영웅들의 일대기를 담은 전설과 신화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한 전설과 신화의 내용은 해당 집단이 처한 상황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정착지에서 쫓겨나 여러 곳을 배회했던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업보를 원죄로 돌리고 죄를 사해주는..

창조 신화와 자연의 역사 1. 창조 신화와 자연 (수정)

창조 신화와 자연의 역사 (1) 창조 신화와 자연 기독교의 창조 신화가 과학적 증명 대상이라 여기는 창조 과학은 다음의 핵심 논제로 구성된다. SC1. 지구는 진화론자나 지질학자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SC2.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다. SC3. 진화론자들의 화석 연대기는 부정확한 것이다. SC4. 창조 과학은 진화론과 대등하게 학교 과학시간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SC1에서부터 의문이 발생한다. 기독교의 신 개념과 진화론이 물과 불의 관계로 단순화시키는 통속적인 이해 방식을 받아들여도, 지구의 나이가 진화론이나 지질학에서 주장되는 것보다 짧아야 할 이유는 성서 그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나이를 그렇게 짧게 보는 이들은 성서 전체에서 지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