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존재 사슬의 논리 13

점들의 간격과 위치 4.3.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3. 무신론, 무종교인의 관점

(3)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3. 무신론, 무종교인의 관점 복잡성 증가를 신의 섭리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창조주로 가정된 신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 이러한 결론은 신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배제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라마르크가 무신론을 주장했어도, 진화가 복잡성의 증가 과정이라는 그의 관점은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다. 만약 라마르크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이었다면, 그 관점에 근거해 어떤 논증을 펼쳤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증은 다음과 같다. • 복잡성 증가 과정은 우주의 특정 부분들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다. • 복잡성 증가 과정이 전일적 우주의 역사 속에 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 태초를 가정하는 우..

점들의 간격과 위치 4.2.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4)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진화가 복잡성 증가의 과정이라는 라마르크의 주장에서 복잡성의 증가는 신의 설계도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또한 라마르크가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하는 전통에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복잡성 증가 개념을 ‘신의 자기 구현 과정’과 연관시킬 수 없다. 이때 다음의 논증이 성립한다. •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전통이 있다. • 그 전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신에 의해 예정된 우주의 설계 방식을 신의 섭리와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우주의 진화 목적과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 라마르크는 두 가지 관점 모두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는 자연에서 신을 섭리를 찾아..

점들의 간격과 위치 4.1.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1

(4)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1 신을 믿는 사람이 자연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라마르크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라마르크의 입장을 받아들일 때 그는 과학과 양립 가능한 창조설을 ‘강한 자율적 우주 창조설’로 보았다. 라마르크에게 신은 우주를 설계한 존재도, 생명의 씨앗들을 우주에 심어 놓은 존재도 아니다. 그에게 신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목적인도, 작용인도 아니다. 그의 신은 물질계에서 생물계로의 전이 및 생물계의 진화에 대한 가능성만 우주에 마련해준 존재이다. 즉, 물질계에서 생물계로의 전이 및 생물계의 진화는 우주의 자기 조직화 과정의 산물인 까닭에 신에 의해 예정된 조화의 전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력과 같은 물질의 필연적 속성의 제한 속에 대상들의 우연적인 연결망이 형성되..

점들의 간격과 위치 3. 자연 신학, 창조적 진화론 (수정)

(3) 자연 신학, 창조적 진화론, 그리고 라마르크에 대한 왜곡 만약 라마르크의 생명나무가지 도식이 존재 사슬의 전개 방식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면,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목적론’을 함축할 수밖에 없다. 즉, 생물계의 진화는 신이 예정한 목적을 향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받아들이면,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지적 설계자 가정에 바탕을 둔 자연 신학 전통에 흡수될 수 있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이 ‘약한 의미의 자율적 우주 창조설’을 대표하는 까닭에, 다음의 문제가 발생한다. • 신의 설계도에 비유되는 존재 사슬을 실재하는 것으로 전개시켜주는 자연적 원인은 무엇인가? 신이 진화의 경로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면, 환경의 점진적 변화가 변이의 원천이어야 한다. 이러한 대답에 따른다면, 환경은 진화의 ‘보이지 않..

점들의 간격과 위치 2. 라마르크와 다윈 (수정)

(2) 라마르크와 다윈 진화에 대한 라마르크와 다윈의 입장 차이는 다음 두 도식을 비교할 때 드러난다. 각 도식은 수직선과 생명가지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편의상 과 모두 동일한 생명나무가지에 근거한다고 가정하자. 라마르크와 다윈 모두 종 변형에 의한 진화의 역사를 인정한다. 이때 둘의 결정적 차이는 수직선에 대한 해석에 기인한다. 에서 수직선은 시간축이면서 동시에 존재 사슬을 나타내는 반면, 에서 수직선은 시간축만을 나타낸다. 생명나무가지의 각 점을 특정 종이라고 할 때 그 점과 수직선의 점 사이에 성립하는 대응 관계는 에만 해당한다. 따라서 에서 진화는 종 다양성 축적의 과정인 동시에 종들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에서 진화는 종 다양성 축적의 과정일 뿐이다. 은 존재 사슬을 정적인 것이..

점들의 간격과 위치 1. 난제들 (수정)

점들의 간격과 위치 (1)난제들 존재 사슬을 수직선에 비유하여 도식화한 경우를 다시 기억해 보자. 수직선의 각 점은 신에 의존적인 존재들의 각 계층을 나타낸다. 신의 전능함과 관련하여 우주의 창조 방식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또 정점의 의미와 관련하여 신 개념의 다양성도 살펴보았다. 따라서 점들의 간격, 즉 계층들 사이의 간격과 위치 설정 방식에 대한 해석도 어떤 신 개념을 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직선의 점들, 즉 계층들은 크게 물질계와 생물계로 나뉜다. 점들의 간격을 논하는 것은 전체적으로는 물질계와 생물계 사이에 틈새가 있는지를 논하는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생물계 내의 계층들, 실례로 오랑우탄과 침팬지 같은 계층들 사이에 틈새가 있는지를 논하는 ..

정점의 의미 6. 생물학의 두 전통과 우연적인 것 (수정)

(6) 생물학의 두 전통과 우연적인 것의 부활 물질계의 법칙만으로는 생물계의 분류 체계를 건설하기 힘들다는 인식은 18세기에 급성장했다. 이 점은 존재 사슬에 대한 18세기 관점이 주로 생물 현상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다. 만약 생물계에 역사가 있다면,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인 자연에도 역사가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 생물학의 기여가 있다. 또 생물학의 발달은 유기체의 내부를 조작할 수 있는 실험 방법론의 발달에 빚지고 있다. 그러한 실험 방법론이 없었다면, 발생, 번식, 성장,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생물계의 현상을 적절한 단서에 근거하여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과학적 작업에서 그러한 단서는 일반적으로 실험이라는 통로를 거쳐 발견되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생물계의..

정점의 의미 5. 전성설 (수정)

(5) 전성설 ‘어떻게’라는 질문 범주와 ‘왜’라는 질문 범주의 구분 속에서 과학을 전자에, 신학을 후자에 위치시키는 기계론 전통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데카르트처럼 과학적 발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진영이 있었는가 하면, 보일처럼 과학적 발견을 신의 섭리를 밝히는 수단으로 여기는 진영도 있었다. 물론 데카르트가 존재의 목적을 다루지 않는 기계론 전통의 과학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또한 보일도 엄격한 과학적 설명에 신의 목적을 개입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어떻게’라는 물음의 영역에 속하는 과학적 설명을 그 자체로 완성된 것으로 보았다. 즉, ‘어떻게’라는 물음의 영역과 ‘왜’라는 물음의 영역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세계의 완벽한 이해에 도..

정점의 의미 4. 17세기 지적 설계론의 핵심 (수정)

(4) 17세기 전통의 지적 설계론 중세 본성론에서 우연에 의해 발생한 사건, 즉 기회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그 첫 번째 측면은 태초 이후 우주의 자체 유지와 맞물린 인과적 복잡성과 관련된다. 이때 인과적 복잡성은 사건 발생의 선후 관계를 따지는 관점이 아니라, 대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따지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우연에 기인한 기회는 신의 아가페적 사랑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은 신이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 두 번째 측면은 우연적인 것을 기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때 기적은 신의 전능함과 충만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중세 본성론에서 신이 태초 이후에 개입할 여지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점의 의미 3. 본성론 (수정)

(3) 본성론 본성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한 알파라비(Al-Farabi), 아비세나(Avicenna) 등 이슬람 학자의 영향 아래 중세에 유행한 창조설이다. 본성론의 핵심은 우주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은 ‘그 무엇’에 속하도록, 혹은 ‘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essence)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계의 대상들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우, 그러한 본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동일시하여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기독교의 신 개념이 다른 만큼, 중세 본성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알기 위해 다음 두 문제를 차례대로 다뤄보자. • 천사는 ‘순수한 영적 존재’로 가정된다. 그러한 존재가 어떻게 가능한가? • 예수는 엄밀히 말해 인간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