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69

배구장에 나타난 두 마리 오리. 의식과 경험, 프로코피예프의 미운 오리 새끼

눈 없이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귀 없이 어떤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눈의 망막에 맺힌 상, 귀의 달팽이관의 진동, 그러한 상과 진동이 1과 0과 같은 불연속 전기적 파형으로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은 의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전기적 파형을 일종의 정보와 같은 것으로 가정해도, 정보 처리 과정 역시 의식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한 입력 처리 과정은 경험과 관련하여 우리가 ‘의식적 활동’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며, 그 과정의 초기 단계인 망막의 상과 달팽이관의 진동은 가시 영역과 가청 영역의 한계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있는 것을 사전에 규정하는 단계이다. 그 초기 단계는 위치 혹은 장소들의 ‘시간적 동기화’와 맞물려 있다. 글 보기 -> https://blog.na..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물음들

나에게 가장 신비하면서도 설명하려면 더욱더 미궁으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뿐 아니라 생각한 것, 상상한 것 모두 ‘나’라는 것의 외부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몸도 ‘나’의 앞에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나는 과정 속에 ‘나’라는 체계가 있다. 건강한 성장기에는 체내 작용과 몸의 변화가 ‘나’의 앞에 드러나도 큰 주목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노화 과정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체내 작용과 몸의 변화는 ‘나’의 경계 대상이 된다. 체내 작용과 몸의 변화가 그러한 경계 대상이 될 무렵, 가까운 주변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배우자, 부모, 자식의 죽음은 남은 인생과 함께 한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3..

밀 대 다윈, 여성의 권리에 관하여

개인의 발달 없이는 사회의 긍정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스코틀랜드 계몽 운동의 핵심인 이 관점을 정당화하려면, 인간의 본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를 인식한 애덤 스미스(A. Smith)는 에서 개인 간 거래 관계를 단순히 시장 중심의 경제적 측면만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에는 그러한 거래 관계를 통해 개인의 자기중심적 성향이 사회 집단 전체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화 가능하다는 스미스의 관점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은 행위와 판단의 설명에서 본성과 양육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를 인식하고, 인간을 도덕적 동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의 틀에서 사회를 분석하지 않았다. 역으로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의 틀에서 도덕을 분석했다. 개인의 개선과 관련해 양육을 중요시..

조현병과 크레펠린의 진단 카드: 이론 및 관점과 진단 카드의 인지적 순환 관계

에밀 크레펠린(E. Kraepelin, 1856-1926)은 현대적 정신 질환의 분류 체계를 마련한 독일의 정신 의학자이다. 특히 조현병 혹은 정신 분열증(schizophrenia)의 발견 과정을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인물이다. 크레펠린의 정신 질환 분류 체계 형성 과정에 그의 진단 카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분류 체계와 진단 카드의 관계를 ‘진단 카드들 -> 분류 체계’의 관계로, 즉 진단 카드들을 분류 체계 마련의 단순한 귀납적 토대처럼 소개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과학적 발견에서 어떤 가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 단서들, 설명을 요구하는 단서들과 이론 체계의 실제 관계는 결코 결과의 관점에서 이상화된 발견 맥락과 확증 맥락의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발견 맥락에 ‘귀납적’, ..

융의 성격 유형론

* 아래는 다음 글에 이어지는 글이다.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674812521 ​ 옛날 같으면 위 글에 이어 바로 아래 글을 작성했을 것이다. 글쓰는 게 가끔 그적거려보는 소일거리가 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이어 썼다. 굳이 이어쓸 이유는 없다.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MBTI의 무비판적 확산을 경계하는 글들은 기사로도 나오고 있지만, 논문들을 찾아보니 정작 MBTI에 대한 체계적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성격 이론의 분류, MBTI와 융의 성격 이론의 관계, MBTI가 융 이론의 오용인 이유, MBTI의 문제점, MBTI를 유행하도록 만드는 이유 등을 다룬 약간 '무거운 글' 한편은 누군가는 남겨놓아야..

성격 이론 분류: 유형 대 특성, 상황 의존성, 발달 대 서사

MBTI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국내 논문이 있다면 간략히 소개하려고 찾아보았으나, 만족스러운 것을 찾지 못했다. MBTI가 무비판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MBTI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구체적 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련 글을 쓰기로 했다. 소수만 볼 것이지만 말이다. MBTI는 성격 이론의 검사법 중 하나이다. MBTI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려면, 성격 이론들을 분류해야 한다. 관련 인물들의 논문, 국외 유명 대학 커리큘럼 계획서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성격 이론들 분류에 필요한 기준들조차 불분명했다. 어느 유명 대학 커리큘럼 계획서는 아예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성격 이론 역사를 개괄하고 있던데, 이러한 소개 방식은 역사적 왜곡에 가깝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이 융의 성격 유..

놀이와 학습: 아동 교육 다시 들여다보기(요약)

* 다음은 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 저것 모으면 A4 용지 기준으로 약 100쪽 정도되는 것 같은데, 완성시키면 250쪽 정도 나올 것 같다. 전체 요약을 작성한 이유는 이제는 지력이 쇠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당문간 진행하지 않을 것인데, 훗날 이런 요약 없이는 작업을 이어갈 자신이 이제는 없다. 최근 끝을 내지 않고 남겨둔 와 을 우연히 다시 보았는데, 아무리 20년도 넘은 것이라고 해도 내가 쓴 것임에도 어떻게 종결시킬지 막막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시간이 나면 당분간 진행하지 않거나, 미완성으로 남겨둘 원고들에 대해서 요약본을 만들어 놓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목적의 작업을 할 때 약간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놀이와 학습 ..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5. 브라우버르의 직관주의와 연속체, 밀의 예상 반응

브라우버르, 힐베르트 모두 기하학을 수학의 기초로 간주하기 어려운 시대를 경험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 때문이었다. 브라우버르도 힐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산수를 수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브라우버르는 공리 체계에 근거한 수학의 형식화를 불필요하다는, 그리고 논리학이 수학의 일부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셈을 경험과 무관한 타고난 능력으로 여겼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셈 능력 발휘에 시간이라는 선험적 조건을 전제했다. 다시 말해, 마음에는 경험 이 전에 경험을 가능하도록 해 주는 선험적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시간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선험적 조건으로서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을 가능하도록 해 주는 선험적 조건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할 수도 없다. 만약 그것을 직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