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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논리(Fuzzy Logic)

착한왕 이상하 2010. 1. 18. 15:25

퍼지 논리(Fuzzy Logic)

 

 

 

1.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일상어의 표현들, 실례로 ‘뜨겁다’, ‘차갑다’, ‘영리하다’ 등은 모호(vague)하다. 여기서 모호하다는 것은 그러한 표현의 지칭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딱히 구분되지 않음을 뜻한다. 커피가 뜨겁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명확하지 않다. 커피의 뜨거움 정도는 항상 다른 것에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뜨거운 것일 뿐이다. 또 커피가 식었을 때에도, 커피의 상태를 차갑다고 단정짓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렇듯 사건의 발생 유무를 나타내는 1과 0 혹은 참과 거짓으로만은 사물의 상태 변화 및 차이를 서술하기는 힘들다.

 

코스코(B. Kosko)와 이사카(S. Isaka)는 고전적인 2치 진술 논리가 사물의 상태 변화 및 차이와 관련된 모호한 표현들을 다룰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퍼지 논리를 개발하였다. 고전적인 2치 논리는 참 아니면 거짓으로 판단 가능한 진술들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진술들은 사건들을 함축한 경우가 많다. 즉, 특정 사건을 함축한 진술은 그 사건 발생 유무에 따라 참 또는 거짓이 된다. 진리치 참을 1로, 거짓을 0으로 나타내는 경우, 고전적인 2치 진술 논리에서는 그 중간치인 0.5와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고전적인 2치 진술 논리로 사물의 상태 변화 및 차이를 다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물의 뜨거운 상태는 인간에게 정도의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도 차이에서 기인하는 표현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모호한 것을 항상 명확한 것으로 대체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언어의 일상적 용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2.

코스코와 이사카의 퍼지 논리에서 각 진술의 진리치는 0과 1 사이의 어떤 값으로 표현된다. P를 임의의 진술을 나타내는 변수, V를 진리치 함수라고 할 때 다음이 성립하게 된다.

 

0≤V(P)≤1

 

‘이 커피는 진하다’라는 진술을 고려하여 보자. 이 진술은 진한 정도에 따라 0(거짓)과 1(참) 사이의 진리치를 갖게 된다. 퍼지 논리에서 부정 연결사 ¬, 접속사 ‘또는’에 해당하는 이접 연결사 ∨, 접속사 ‘그리고’에 해당하는 연접 연결사 ∧는 각각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 임의의 진술 P에 대하여, V(¬P)=1-V(P). (임의의 진술을 부정한 것의 진리치는 1에서 그 진술의 진리치를 뺀 값이다.)

 

• 임의의 진술 P, Q에 대하여, V(PQ)=max(V(P), V(Q)). (두 진술을 이접 연결사로 결합시킨 것의 진리치는 두 진술의 진리치 중 최대값이 된다.)

 

• 임의의 진술 P, Q에 대하여, V(PQ)=min(V(P), V(Q)). (두 진술을 연접 연결사로 결합시킨 것의 진리치는 두 진술의 진리치 중 최소값이 된다.)

 

이렇게 규정된 연결사의 기능에 따를 때 고전적인 2치 진술 논리의 배중률 등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사건 발생 유무에 따라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에 잘 적용되는 2치 진술 논리에서 각 진술은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의 진리치만 갖게 되는데, 이를 배중률이라고 한다. 배중률은 ‘P∨¬P’로 표현된다. 고전적인 2치 진술 논리에서 ‘P∨¬P’는 항상 참이 되지만 퍼지 논리에서는 아니다. 즉, P에 어떤 진술을 집어넣든 ‘P∨¬P’ 형의 진술은 2치 진술 논리에서는 항상 참이지만 퍼지 논리에서는 아닌 경우가 발생한다. 또 ‘P∧¬P’는 2치 진술 논리에서 항상 거짓인 모순을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퍼지 논리에서는 아니다. 즉, P에 어떤 진술을 집어넣든 ‘P∧¬P’ 형의 진술은 2치 진술 논리에서는 항상 거짓이지만 퍼지 논리에서는 아닌 경우가 발생한다.

 

 

 

3.

퍼지 논리를 공학적 장비에 적용한 최초의 시도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F.L. 스미스 주식회사(F.L. Smith & Co.)는 시멘트를 굽는 가마에 퍼지 논리 체계를 장착했다. 8년 후 일본의 히타치(Hitachi)는 퍼지 논리를 지하철 운송 체계에 적용했다. 현재 퍼지 논리 체계는 세탁기, 에어콘, 카메라, 캠코더, 커피 머신 등 여러 가전제품에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