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Academic Info.

물리적 실재성을 가진 공간: 사장된 관점

착한왕 이상하 2016. 2. 19. 04:10



요새 실재와 물리학, 물리학과 수학의 관계에 대한 잡념이 많아 원래 내 작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태. 내일부터 다시 원래 내 작업을 진행하려 하는데, 그 동안 잡념 중 일부를 간략하게 나마 올린다. 트위터 글쓰기 방식으로 .... 격식을 갖추어 글을 쓰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1. 현대 이론 물리학은 거의 수학적 모형 혹은 구조 실재론으로 치닫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을 반기는 사람이 아니라, 요새 쓰잘 데 없이 이것저것 보다가 든 생각이 있다. 소위 분석철학의 모태인 논리 실증주의가 신칸트학파에 표면적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스쳐 지나갔다.


2. 특수 상대성이론 SR 부각되면서 논리실증주의, 신칸트학파 양쪽 모두 정합적으로 SR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쟁이 벌어졌는데, 모리츠 슐리크의 몇 편 논문 덕에 논리실증주의가 승리했다는 게 정설이다. 신칸트학파 카씨러의 SR 설명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프리드맨 등에 의해 많이 논증된 것이고, 내 관심사는 이렇다.


3. 일단 공간을 두 종류로 구분하자.


뉴턴: 공간은 운동을 위해 전제된 실체다(AS 절대 공간)

라이프니츠: 물체들의 장소적 관계일 뿐(RS 상대공간)


뉴턴 역학은 사변적 요인을 철저히 제거한 방식의 수학적 지식 체계이기 때문에, 뉴턴 역학 자체를 놓고 위와 같이 공간에 대한 두 가지 해석 방식이 가능하다.  이후 클라크(AS 옹호 진영)와 라이프니츠 논쟁을 보면 정지 상태이거나 등속 운동인 경우는 논쟁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가속 운동인 경우만 논쟁거리가 된다.


4. 칸트 경우, 뉴턴역학을 절대 진리로 전제했으나, 그의 정당화 방식은 마음의 조건들로 부터 법칙들의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실체로서의 절대 공간 AS보다는 상대공간 RS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RS에서 공간은 단지 인식의 측면으로 환원될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5. 라이프니츠의 죽음으로 클라크와 라이프니츠의 논쟁은 끝난다. 뉴턴의 AS는 아니지만 공간 자체를 물리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에터론(공간=특정 물질)이다. 뉴턴의 AS에서 공간은 비물질적 실체이다. 때문에, 뉴턴의 실체로서의 공간은 RS를 배제할 수 없다. RS가 단지 인식의 측면으로 환원될 가능성을 배제하려면, 물체 사이의 관계들도 단순히 거리가 아닌 물리적 실재성을 가져야 한다. 에터론이 주류 물리학에서 날라가고, 슐리크의 논문이 등장할 무렵에는 철학자들도 일방적으로 '물리적 실재성을 가진 공간' 관점을 제거시켰다.


6. 결국 표면적으로 논리실증주의가 신칸트학파에 승리했다곤 하나, 이것은 그저 선험적이고 경험적 판단 가능성에 대한 규정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두 진영 모두 공간 자체가 물리적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관점은 아예 제거시키고 논쟁을 한 것이다. 즉, 공간 자체가 물리적인 것일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사장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7. 상대공간 RS를 인식론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주류 관점이 되고, 이후 공간은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처럼 등장해 버린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등장하는 4차원 시공간 구조가 물리적 실재성을 함축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모든 측정을 위한 수학적 프레임과 같은 것으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8. 이런 식으로 설정해 버리면, 분석철학에서 갖는 현재의 관념론적 위상이 드러난다. 분석철학이 현대 주류 물리학에 기대는 한, '실재에 대한 판단이란 마음의 산물이라는 관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 이후 이론 물리학이 그런 사고방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면 측정의 예측성을 설명해 주는 도구처럼 기능한다. 이걸 농담으로 스쳐지나갈 수 없는 게, 분석철학의 현재 동향을 보라. 칸트, 헤겔은 분석철학 초기와 달리 지금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하다 싶을 정도다.


9. 언어 중심 사고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후, 분석철학을 보란 말이다. 비트겐슈타인 콰인보다는 오히려 칸트 관련 책이 훨 많이 나온다니까. 요새도 그렇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수학적 모형을 실재화하는 데 반감을 가진 몇몇 철학자들은 아예 에터 변형론을 들고 나오는 판국이다.


10. 뭔가 단단히 뒤 꼬였어. 20세기 초 이후, 물리학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 100여년 과정에서 방향 설정이 잘못되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생각을 구체화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다 마음에 의존적이다. 맞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게 무의식적으로 과학 속에 깊게 파고 들면,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은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


11측정 방법 및 양화에서 중요한 수학적 모형이 설명 모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추상화되어 과학 이론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현대 이론 물리의 큰 줄기다. 검증은 개뿔 데이터에 이론개입시킨 시뮬레이션이다. 이런 방식의 이론 물리가 '물리적 실재'를 탐구한다는 억지를 성립시켜 주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주에 수학적 구조가 있도다!


12. 성경 문구하고 비슷하지. 태초에 말이 있도다! 이제는 철학이 과학에 의존적이야 한다는 주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특정 이론의 교조화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과학이 철학에 의존해야 한다는 개소리도 있고 말이야. 이런 와중에서 21세기는 누구씨 해설서만 수만권 나올 기세다.


13. 진짜 지금이야말로 전환을 이끌 운동이 필요한 시점 같다. 터무니 없는 동양 대안론 이런 것은 당연히 안 되지. 서양 저쪽은 이미 바닥난 것 같고, 이쪽 좀 많이 아쉬워. 휩쓸려 지랄이니 ...  아무튼 '물리적 실재성을 가진 공간' 관점이 정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인지 좀 따져 보아야 하겠다.


21세기 암흑기


수학적 구조 실재론 경향을 띤 현대 이론 물리의 특징 중 하나는 이론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런 이론 물리는 엄격한 통제 실험 대상이 아직 될 수 없는 까닭에, 반례가 나오면 임시변통적으로 수정되곤 한다. 빅뱅, 벌써 30번 이상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입자물리의 표준 모형론의 경우, 지금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면 21세기 말 쯤 기본입자 100여개, 힘의 종류 20여개 정도는 될 것 같다. 소위 신의 입자라 불린 힉스 발견으로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다른 입자일 가능성을 놓고 지금 논쟁 중이라고 한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이론은 반례가 나오면 임시변통적으로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깨져야 한다? 이것도 정말 단순한 생각이다. 그 이론이 적용 범위를 좁혀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고전역학, 고전전자기학, 자연선택 가설 등을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피본 대표적 경우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다. 다윈과 월러스 이전에 자연선택 가설의 핵심은 '선택압'을 먼저 생각한 사람은 사실 라마르크였다. 그런데 라마르크는 당시로는 연구하기 힘들었던 유전론 안에서 생물 진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의 잘못된 가변 유전론(라마르크가 직접 언급하지도 않은 '목이 길어지는 기린 이야기로 대표되는 유전론) 때문에, 그의 자연선택 개념은 빛을 발할 수 없었다. 반면에 다윈은 진화론 다음에 유전학을 별개로 다루었다. 다윈의 유전학은? 너무들 다윈 빨아대지 말라. 그의 유전학 수준은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 수준이다.


아무튼 수학적 구조 실재론 경향을 띤 현대 이론 물리 덕에 서양 철학자들도 분주해질 듯. 우주의 추상적 혹은 수학적 구조의 실재성을 따져야 하니까. 다시 플라톤 시대로 복귀하렵니까? 원래 우주란 놈이 알기 힘든 놈은 맞는데, 이렇게도 추상적이고 복잡한 놈이었나? 엘레간트 우주 지랄? 지금 판세는 수학과 물리적 실재 사이의 관계,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의 성격, 데이터에서 과학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경우들의 방식과 정당성 등부터 다시 따져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