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Academic Info.

일반 상대성 이론에 담긴 아인슈타인의 진의

착한왕 이상하 2016. 3. 31. 00:56

<세속화: '저기'와 '여기'> 원고 수정 과정에서 부록들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지라, 800쪽으로 끊기 위해 일부 부록들은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 과정에서 고민스러웠던 것 하나가 있다. 여기 블로그에도 올렸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http://blog.daum.net/goodking/188) 수정한 것을 뺄 것인가 말 것인가?

 

최근 중력파 발견 운운하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이 '중력을 기하학화하고 우주의 4차원적 시공간 구조를 밝힌 작업'이라는 주장이 통설처럼 번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의 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목적은 '중력 현상과 관계성계의 운동을 통합하는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가진 물리학사 지식에 따르면, 일반 상대성 이론이 '중력을 기하학화하고 우주의 4차원적 시공간 구조를 밝힌 작업'이라는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진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주장이 대중서와 신문 방송 매체를 타고 급속히 번져 나가고 있어, 해당 부록을 빼려고 했던 것이다. 아니면 1920년 경으로 돌아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둘러싼 당시 논쟁을 재정리하여 기존 부록을 확장해야 한다. 이런 것은 지금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행히 나의 입장이 기댈 수 있는 최근 물리학사 논문 하나를 발견했다. 그 논문을 소개하기 전에 상대성 이론 발전에 대한 일반 경향을 먼저 언급하자.

 

상대성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원맨쇼로 파악하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성 이론의 출현 및 발전 과정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나뉜다. 첫째, 아인슈타인처럼 빛의 일정 속도를 전제하고 진행된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추상적인 4차원 시공간 개념과 결합해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발전한다. 둘째, ‘빛의 일정 속도가설을 전제하지 않고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킨 전통이 있다. 이러한 경우, 빛의 일정 속도는 물질의 활동성의 한계로 해석될 여지를 갖는다. 셋째, ‘공간은 곧 물질이라는 가정 아래 기존의 에테르 가설을 수정하여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킨 전통이 있다. 추상적인 4차원 시공간 개념이 없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전통은 사장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고전적 전자기학과 관성계에 국한된 뉴턴 역학의 통합을 목적으로 한다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 현상과 관성계의 운동의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후자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추상적인 4차원 시공간 개념이 수학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의 기하학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며, 4차원 시공간 모형 자체를 물리적 실재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주하는 통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미국 과학을 상징하는 빅뱅 우주론과 결합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 상대성 이론은 4차원 시공간적 구조의 수학적 모형을 함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 이론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Lehmkuhl, D.(2014), “Why Einstein Did Not Believe that General Relativity Geometrizes Gravity”,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Part B: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다운로드: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355219813000695

 

위 논문은 물리학자나 물리학도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다. 요새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분과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관심이 없는 것은 상관 없는데, 왜곡된 정보를 너무 많이 흘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과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겠지? 그저 방정식 모형 만들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면 논문을 싫어주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 이론 물리학은 점점 '판타지 소설의 수확화'가 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게 허튼 소리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채 권위에 약하니, 허튼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몰린의 다음 책을 한 번 읽어 보길 바란다.

 

Smolin, L.(2007), 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Mariner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