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Academic Info.

진화론에 대비된 관점 명확히 하기

착한왕 이상하 2016. 3. 29. 20:29

한 동안 19세기 중엽 이후 진화론에 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 열기는 많이 식은 상태다. 대부분의 책은 다윈 띄우기, 진화론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립된 방식으로만 진화론을 파악한다. 진화론의 과학하한 피셔나 도브잔스키 등은 가톨릭 유신론자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진화론과 관련된 책들은 수백 쪽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실 30여쪽 분량으로 정리 가능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갖 주변적 얘기를 갖다 붙쳐 쪽수 늘리기 장난질이 너무나 심하다.진화론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진화론과 대비된 관점을 명확히 알야아 한다. 그 관점은 다음과 같다.

 

• <진화론에 대비된 관점>

자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해 사소하다. ‘상태의 질적 변화를 수반한 비순환적 과정에 근거한 자연의 역사가 있다면, 그 역사는 인간 존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인류의 역사보다 짧다. 따라서 인간 존재가 자연의 역사 속에서 우연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

 

위 관점과 대비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진화론의 관점이다. 진화론의 출현 과정을 이해하려면 무신론 대 유신론의 협소한 논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 존재가 자연의 역사 속에서 우연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논하려면, 자연 현상의 설명에서 우연적인 것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트는 과정을 논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이 싹트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한 연구서는 거의 없다. 아예 진화론에 대비된 위 관점이 정착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한 대중서도 거의 없다. 이러한 와중에서 진화론이 마치 '그 근거가 애매모호한 과학적 합리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대중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진화론에 대비된 관점>을 명확히 알려면, 알렉산드리아 시대 성서 해석을 둘러싼 담론을 알아야 한다. 그 담론은 단순히 기독교나 유대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알렌산드리아 시대의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것이다. <진화론에 대비된  관점>이 정착한 과정을 알아야, 위 관점이 중세를 거쳐 근대에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유지 방식에서 기계론 및 전성설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우연적인 것이 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어떤 식으로 부활했는지도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진화론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유명한 관련 대중서를 멀리해야 한다. 핏캐스트 등에 나오는 소리에 '아'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그냥 그대로 살기를 권한다. 시중에 도는 대중서는 생물학 발달 과정을 진화론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왜곡에 불과하다. 자연의 탐구에서 우연적인 것의 부활을 이끈 경로는 다양하다. 생물학의 경우, 다지증에 관한 연구 등 초기 유전학 및 개체 발생학이 그 부활을 먼저 이끌었다. 생물학의 이러한 여러 전통이 형성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모른 채 진화론 관련 대중서, 팟캐스트. 온갖 쓰레기 강좌에 빠지게 되니, '진화론은 생물학의 통합 이념' 혹은 '진화론 중심의 통섭'이라는 헛소리에 현혹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거도 없는 '진화론은 과학이자 세계관이다'라는 개소리를 내뱉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정말 진화론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진화론 지식 정도만 일단 믿을만한 것으로 간주하고,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눈을 돌릴 것을 권한다. 그래야 <진화론에 대비된 관점>이 눈에 들어 오게 되며, 혜안을 가지고 이후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알아야 할 인물들 중 한 명을 들라면, 필로(Philo)이다. 스텐포드 철학 사전 등에서 필로에 대해 조사해 보는 것이 시중에 도는 대중서 여러 권을 읽는 것보다 훨씬 낫다. 솔직히 말해 시중에 도는 과학 및 과학사 대중서들 상당수는 인터넷 이것 저것 짜집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책을 왜 사나? 돈이 남아 도는가? 아무튼 필로를 다룬 연구서 하나를 권한다.

 

Runia, D.T.(1986), Philo of Alexandria and the Timaeus of Plato, Br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