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원래 안 먹는데 오늘 이상하게 허기져 외식하고 왔다. 옆에 가족처럼 보이는 일원이 있었는데, 정치 얘기를 하다가 언쟁이 높아지더라. 누구 A가 이런이런 얘기를 하니, 상대방 B가 가짜뉴스 만들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던 게 원인이었다.
당신은 A와 B 중 누가 더 문제있다고 보는가?
정확한 답은 없는데, 나는 B로 본다. 가짜 뉴스란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과거나 현재 사실을 왜곡 해석하여 공공에게 알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를 때, 개인 간 대화에서 가짜 뉴스라는 정의를 적법하게 적용하기란 아주 까다롭다. 설령 A가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정말 불순한지 그리고 그가 정말 그런 의도를 가졌는지 자체가 논쟁 거리가 될 수 있다. 대화가 논리적 흐름으로 구성되려면,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가짜 뉴스를 일단 구분하고 들어가야 한다. 실제 대화에서 그 둘이 중첩되더라도 말이다. A의 정보가 의심스럽다면, 스마트폰 등으로 뒤져보고 A의 정보가 잘못되었음을 밝혀주고 대화를 이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짜 뉴스 만들지 마라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결국 대화 단절을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 드디어 미국 제3자 은행 제제, 즉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을 둘러싼 뉴스들이 뜨기 시작했다. 금융위는 근거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엄벌 처벌하겠단다. 그러면서 증권가 지라시 운운했는데, 그 지라시는 1달전 로이터 등 국외 기사와 그 기사를 인용한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보도에 근거하고 있다. 그 지라시가 과장한 측면은 있더라도, 허위 사실 유포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미 재무부는 아직 세컨더리 보이콧에 관해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세컨더리 보이콧 실행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서 '사실' 운운하는 금융위가 황당하다. 은행들에게 전화는 왜 하니? 그러면 은행들이 사실 확인해 줄 수 있는가? 황당하다.
한반도 정세를 자꾸 과거 동독과 서독의 관계와 억지로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독이 무작정 조바심을 내어 통독을 앞당긴 것은 절대 아니다. 미소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통독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그 붕괴를 상징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동독 혼란기와 함께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다르다.
경제적 세계화라는 게 별게 아니다. 선진국은 다른 국가를 생산기지로 이용해 국내 소비자들을 유리하게 만들어주고, 생산기지를 담당하는 국가도 함께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는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을 갖고 있다. 미국은 국채 팔고 중국 등으로부터 저가로 소비재를 공급받는 대신 고부가 가치의 서비스산업을 활성화시켰다. 그런데 제조업이 약해지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중산층도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미 지난 대선 당시 분위기를 보라. 정치적 이념에서 대립했던 트럼프와 센더서의 경제 공약은 거의 비슷하다. 그냥 막말로 자국 우선주의였다. 지금 정세를 반세계화 혹은 신냉전 도입기로 보는 것은 무리다. 다만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협공 등으로 '각자 도생'의 물결이 일고 있다.
남북 평화 분위기는 중요하며 해야 한다. 비무장 지대 공동 관리, 민간 교류 등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그 순서가 빗나가면, 모든 걸 망친다. 미국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금 당장 북한 문제에 몰입할 수 없다. 유럽과 유엔은 대북 제제 완화 조건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트럼프는 그보다 약한 것을 제시했다. 사실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핵무기 완전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마어마해 어느 국가 하나가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핵무기 리스트와 제3국 이전이나 공동 관리 정도로 트럼프가 조건을 낮춘 것이다. 물론 트럼프 진의는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일단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트럼프가 제시한 조건에 걸맞는 것을 이행하지는 않았다. 대신 계속 남한을 대북 제제 완화의 지렛대로 사용했다.
적어도 미국 중간 선거 성격을 안다면, 아직 수교가 완전히 되지도 않은 북한 수장의 친서를 들고 유럽 국가들을 찾아가 대북 제제 해제에 협력해 달라고 하는 것은 현 국제 정세에 비추어 패착이다. 막말로 트럼프는 문이 자기 뒤통수를 깠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남한을 대북 제제 완화의 지렛대로 사용해 보고, 그게 쉽게 안 먹히면 어떻게 나올까? 오히려 우리쪽에 핑계를 갖다부쳐 각종 약속을 파기하고 미국과의 담판 분위기를 마련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미국 중간 선거 전에 우리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서두루는 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 완전히 미국 사대주의자이구만! 천만에 말씀! 막말로 조선이 청에게 두드려 맞은 건 그 당시 국제 정세 흐름을 잘못 파악한 집권 세력의 무능이다. 집권 세력이 무능하면, 백성만 힘들다.
깨시민들, 즉 어떤 주어진 도덕을 전제하고 그것을 실현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잘못된 민주주의를 배운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막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면서, 미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 유포 지라시를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이론에서 그런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곳은 없다. 물론 지나친 가짜 뉴스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을 반영한 각종 의견들, 추정들, 심지어 지라시들마저 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짜 뉴스로 몰아버리면,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언론 통제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그런 의견들, 추정들, 지라시들은 가짜 뉴스의 적용 범위 속에 명확히 가두어 놓기 힘들다.
집단이 조화롭게 유지되려면, 항상 현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체계적 감시 제도가 필요하다. 각종 혼란스러운 의견들, 추정들, 지라시가 돈다는 것은 그런 제도가 없거나 부실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이 나라 금융에서는 이상 징후을 사전에 포착해 다양한 결과를 예측하도록 해 주는 체계적 감시 제도가 아예 없다. 그 결과,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 여 대 야 말만 무성할 뿐, 금융 권력에 가깝게 위치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개돼지 취급을 받게 된다. 미 재무부 발표도 없는 상황에서, 각종 해외 보도를 참작한 소문들을 무조건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는 행태야말로 반민주적인 것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미국 쪽에서 정부를 건너뛰고 한국 대기업들과 직접 접촉했다는 보도가 뜰 정도라면, 금융위는 책임 전가를 할 게 아니라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하기사 경제 부총리가 벌써 세컨더리 보이콧 발생시에 대비한 계획을 이미 갖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제제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 가능성이 높다면 아예 조용히 있다가, 그냥 한 방 먹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율 흐름을 보면 그 가능성은 지금은 거의 없다. 다만 정부가 정신을 못차리고 계속 허우적 거린다면, 향후 정말 은행 1곳 정도 맞을지도 모른다. 대기업들은 이미 해당 은행과의 거래를 끊었을지도 모른다. 제일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항상 고려해 선택해야 하므로 그래야 한다. 자, 이제 나를 가짜 뉴스를 퍼뜨린 죄로 엄단해 볼래? 지금 상황에 근거한 추정마저 가짜 뉴스라고 한다면, 이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다만, 조중동은 해외 기사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자신들 입맛에 맞도록 치장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그 반대 여파로 정부의 가짜 뉴스 차단 주장이 나온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무조건 가짜 뉴스로 치부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지 마라. 대신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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