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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유행과 정치 3. 독일, 이탈리아, 한국(작성 중)

착한왕 이상하 2020. 4. 27. 20:19

독일 메르켈 수상의 지지율 상승을 봉인 효과와 연관시켜 분석하려면, 먼저 독일 국민들의 일반적 투표 성향을 알 필요가 있다. 독일의 총선 투표율은 기괴할 정도로 높다. 보통 80% 이상은 나온다. ‘기괴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한 국가의 민주적 역량 평가에서 개인적으로 투표율을 큰 변수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선 투표율이 70%대로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 기존 거대 정당의 득표율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군소 및 새로운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일의 이러한 투표 성향은 일면 부러운 것이기도 하다. 투표율이 70%대로 하락하면, 기민당과 사민당으로 대표되는 거대 정당들은 인적 구성 및 정책의 측면에서 일종의 체질개선에 들어간다. 메르켈도 기민당의 그러한 체질개선 과정을 통해 수상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슈미트의 경제 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또 콜 시대 기민당 정책을 대폭 수정하면서 역량을 발휘한 메르켈은 4선에 성공했다.

 

독일의 투표율은 2013년 총선에서 71%로 급락했으며, 2017년 총선에서는 76%로 상승했다. 두 경우 모두 군소 및 새로운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2017년 총선의 경우 극우 신생 정당 AfD가 무려 12%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7년 총선 당시 메르켈의 지지율은 전후 독일 정치사에서 두 번째로 낮은 것이다. 2019년에는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메르켈의 지지율은 완전히 바닥을 헤매게 된다. 반면에 녹색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심지어 녹생당이 기민-기사당 연합도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20196, 기민-사민당 연합의 지지율은 24%로 급추락했고, 녹색당의 지지율은 27%를 기록했다. 독일의 진보 대 보수를 대표한 기민당 대 사민당의 전통적 대립 구조는 이미 상당히 붕괴된 상태이며, 새로운 진보, 보수를 내세운 군소 정당 혹은 그 두 이념을 극복해야 한다는 대안 정당들이 약진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메르켈은 2017년 집권 이후 사실상 물러나는 수순을 밟고 있었고, 그녀가 속한 기민당은 인적 구성 및 정책 노선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독일을 강타하면서 메르켈의 지지율은 416일을 기준으로 79%까지 상승했다. 2019년 말이나 2020년 초 지지율과 비교한다면, 최소 2.5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봉인 효과가 그 상승을 이끌었다고 가정할 때, 봉인 효과 자체는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해제되는 성격을 갖고 있어 속단할 수 없지만 현재 메르켈의 지지율은 이미 8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측한다. 바이러스 확산 사태 초기에 집단 면역비슷한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메르켈은 적극 대처로 정책을 변환했다. 독일 의료진은 하루 12만 명을 진단하기도 했다. 치사율도 공식적으로 1% 정도이다. 독일의 방역 체계가 다른 주변 국가와 비교되면서 메르켈의 인기는 치솟았다.

 

독일의 방역 시스템이 주변 유럽 국가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독일은 네덜란드와 함께 정책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를 대표한다. 독일은 효율성 문제로 일찌감치 의료보험 제도를 수정했다. 연간 소득 6천 유로 미만의 사람들은 국가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6천 유로 이상의 사람들은 국가 보험과 민간 보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더 많은 보험을 내고 좀 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은 민간 보험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민간 보험과 연계된 민영 병원들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인구 1,000명당 지나치게 병원 수가 많다는 비판이 뒤따랐으나, 병원 수 증가가 지금에 와서는 바이러스 사태 대책에 효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막강한 중소기업의 연합체를 바탕으로 한 생산 체제이다. 경제적 세계화 과정에서 유럽 및 북미 국가들의 제조업 업황은 축소되었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지역 공동체나 영세 기업이 생산하는 생필품, 각종 공구, 장비 등이 독일 총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일회성 바이러스 진단기 개발기에 매달리려는 다국적 제약 기업은 많지 않다. 거대 다국적 제약 기업에게 진단기 개발은 크게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국적 제약 기업들뿐만 아니라 진단기 개발에도 매력을 느낄 중소 제약 기업이나 연구 기업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국가가 지원만 하면 당장 마스크나 방역복을 생산해 낼 중소기업들도 많다. 이러한 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독일은 다른 주변 국가들보다 효과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대처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주변 경쟁국과의 상대적 비교는 독일 국민들 상당수에게 우리 독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세계화 과정은 일부 지식인들이 떠드는 것처럼 결코 문화적 융합, 탈국가 측면의 과정이 아니다, 부분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해도, 그 세계화 과정은 어디까지나 국민 국가(nation-state)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경쟁 논리를 세계화 과정의 평가에서 탈색시킬 수 없음을 뜻한다. 교육의 측면에서의 세계화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70년대 이전의 교육 체계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양적 평가를 통해 교육을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삼는 양상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세계화 과정에서 나온 각종 국제적 평가 기준들이 이를 반영한다. 이제는 아예 선생들의 수행 평가에 대해서도 그러한 국제적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데, 솔직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의심스럽다. 국가 간 경쟁 논리가 세계화 과정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강화되었다면, 이미 언급한 바디 폴리틱스의 요소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위기시에는 더 강하게 사회 표면에 부각될 수 있다. 메르켈의 지지율 상승에는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한 일부 국민들의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고 추정할 때, 그 추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빌드(das Bild)지의 최근 기사 내용들을 살펴보는 것일 수 있다.

 

독일 일간지 빌드는 다국적 출판 기업 스프링거(Springer) 소속으로 스피링거의 주 매출원 중 하나이다. 빌드는 종종 영국의 선(the Sun)과 비교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선정적이며 많은 소문거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휴가철이 되면, 비키니 복장의 여성들이 빌드지의 앞면을 차지한다. 요새 말 많은 국내 방송윤리위원회와 같이 특정 정당에 편향된 기관이 독일에 있었다면, 빌드지는 벌써 폐간되었을 그러한 일간지이다. 빌드의 모토는 정치적 중립이다. 어느 정당 혹은 정치적 이념에도 편들지 않으며 철저히 국익을 대변하겠다는 목적으로 악셀 스프링거(A, Springer)가 설립한 일간지이다. 그런데 경제적 국익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독일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일간지이다. 정치계 거물들이 가장 겁내는 일간지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쥐드도이취 자이퉁, 스피겔과 같은 소위 정론지보다는 빌드지이다. 빌드지에 발목을 잡힌 정치가는 살아남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노동자 절대 다수가 출근 시 빌드지를 손에 들고 공장에 들어간다. 거의 다 그렇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확대되면서 빌드지 주요 기사 제목을 보면, 이런 식이다. ‘사망자 몇 명의 이탈리아’, ‘이탈리아 또다시 어느 지역 봉쇄하다’, ‘영국 수상 급기야 산소 호흡기를 단 신세가 되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클럽에 모인 프랑스 청년들’, ‘미국의 트럼프의 말 같지 않은 자화자찬’. 이런 식의 제목의 기사를 보면 그 내용도 매우 선정적이다. 아예 방역에서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아시아 국가들인 대만, 베트남, 얼마 전까지 상태의 싱가포르, 홍콩 등을 까는 기사도 있다. 아시아인들은 사적 자유를 모르며 권력에 순종적이기 때문에 방역에 그나마 성공적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빌드지의 선정적 내용의 기사를 정론지들보다 선호한다. 빌드지의 그런 기사 내용은 뭐랄까 때묻지 않은 순박함혹은 단순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방역을 폄훼하려는 독일 정론지 기사들도 눈에 띄는 추세이다. 그 내용을 보면 포장만 그럴듯할 뿐 정말 더 유치하다. 무슨 대학의 어느 교수 혹은 세계적 석학 누구의 기고문들인데, 천편일률적으로 유교 및 유교 자본주의를 거론하면서 아시아인의 순응적 사고를 비판한다.

 

기고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방역 성공의 비밀을 유교와 연관시켜 국민들의 순응성을 언급한 인물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어느 집단에 유교적 사고방식, 청교도적 사고방식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과거 유형론적 사고방식을 혹독하게 비판한 자들이었다. 특히 포스트모던 후기 구조주의 계열의 인물들이 그렇다. 그런데 정작 지금의 현실 문제를 진단할 때는 구체적 대안은 내놓지 못한다. 이 점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 스스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유형론적 사고에 기대어 다른 나라 상황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인간들이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세계적 석학으로 둔갑하는 21세기는 일면 두렵기도 하고, 일면 우습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사스와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방역 체계를 개선시킬 수 있었다. 또 다른 감염병 대유행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모범국으로 회자되는 대만의 방역 체계 일부를 흡수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 사태에서 보여 준 무지막지한 지역 봉쇄는 피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유교를 가지고 아시아인들의 권력 추종성 운운한 학자들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말 바꾸기를 할지 궁금하다.

 

독일 노동자들의 수준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 절대 다수가 빌드지를 읽고, 상당수는 그 기사 내용에 동화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글 결론에서 보게 되겠지만, 나는 봉인 효과에 빠지는 것을 무조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다. 왜 그런지는 글 말미에서 보게 될 것이다. 빌드지 기사 내용과 빌드지 구독층을 언급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직면해 메르켈의 급격한 지지율 상승 동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독일 국민이 늘어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메르켈을 지지했을 것이다. “지금 총선이 열려야 했는데!”라고 안타까워하는 기민-기사당 연합의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권력의 우두머리 지지율이 그대로 총선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또 우두머리의 주변 인물을 중요 지역에 공천하는 것은 힘들도록 정치 체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총선이 열린다고 가정한다면, 메르켈의 무시무시한 지지율 상승은 분명히 기민-기사당 연합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탈리아로 시각을 돌려보자. 이탈리아 콘테 수상의 지지율도 416일 기준 71%로 급상승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당연히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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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내일이나 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