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양면성

착한왕 이상하 2022. 2. 3. 01:47

* 아나운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 나라 사람들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내용을 들어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만으로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 같더라. 이건 아니지. 그래서 쓴 글이다.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에 ‘SNU Noblesse Oblige)를 사용하던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천명한 곳에 기부하는 사람은 멍청이다. 그리고 제발 현 상태의 대학에 기부하는 사람들, 정신 좀 차립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양면성

 

현대 사회에서도 교육은 여전히 일종의 세뇌 장치로 기능한다. 교육받은 사람들 다수는 세뇌당한 사람들이다. 세뇌는 기존 사회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권력에 기생하여 작동한다. 세뇌당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목적과 관련하여 다수가 좋게만 평가하려 드는 용어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그 사용 맥락은 현 정치 체제에서 수용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절대 선의 의미를 부여하려 드는 용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본주의를 들 수 있다(이상하, 2020). 또 다른 실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들 수 있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조건적 선으로 포장될 수 없다. 남에게 뭔가를 베푸는 것을 악이라고 할 수 없는데, 왜 그럴까? 한번 따져보자.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637423006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양면성

* 아나운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 나라 사람들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누군가는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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