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정치에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말 애매모호한데, 그 ‘과학’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 ‘과학’이 특정 조건 아래 재현 가능하고 반복 사용 가능한 과학적 지식이라면, 과학적 지식 체계 자체가 정치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이유는 없다. 그 ‘과학’이 그러한 지식 체계를 생성시키는 과정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재원, 투자 및 생성 여건을 필요로 하는 그 과정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과학’이 정치와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영역이라면, 그러한 영역으로서 과학의 기능 역시 정치 영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기능은 과학자와 과학 공동체에 의존적이다. 그 ‘과학’이 과학자나 과학 공동체의 입장, 태도 및 행동 방식을 뜻한다면, 과학자와 과학 공동체는 전통적으로 정치에 중립적일 것을 요구받아 왔다. 물론 과거에도 과학자와 과학 공동체가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 사례는 다반사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와 과학 공동체의 발언이 대중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아니다. 과학자 및 과학 공동체가 정치에 중립적이어야 한다면, 사회의 한 영역으로서 과학은 정치 영역의 밑에 위치해야 한다. 집단의 복지를 목적으로 한 과학은 국가의 시녀로 봉사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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