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는가? 이 물음에 대해 그 누구도 강하게 긍정적으로 답하거나, 부정적으로 답할 수 없다. 만약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더라면, 동서 비교 철학과 같은 분야의 의미는 퇴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분야는 서양의 역사적 맥락에 흡수될 수 없는 동양의 역사적 맥락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의 세속화 과정과 비교해 볼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아예 없었다면, 조선(朝鮮) 이후 대세가 된 유교(儒敎)는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흔들림 없이 사회 전체의 통합 원리로 기능했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18세기 중엽 이후의 이 땅의 사회와 학풍을 고려할 때 너무나 강한 것이다.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비교할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의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대한 기반으로는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것은 또 다른 독립적인 연구를 요구하는데, 나는 이를 위해 필요한 동양 사상의 전개 과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은 양의 지식이 오히려 문제의 진단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것이 이 땅에 있었는가’라는 주제를 후학에 남기고, 이 땅의 역사에 국한해 그 주제를 짧게 다룰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지적할 것이 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성이 그것이다.
(1)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성
특정 주제를 다루기 위해 동양과 서양을 비교할 때 ‘동양적 사고방식’ 대 ‘서양의 사고방식’ 혹은 ‘동양적 세계 이해’ 대 ‘서양의 세계 이해’라는 대립 구도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역사와 무관하게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발생시킨 요인, 실례로 어족의 차이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러한 어족의 차이가 대상을 분류하는 방식의 차이로, 그래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동양에는 오로지 이러이러한 사고방식만이 있었고, 서양에는 그것에 대비된 사고방식만이 있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단지 언어의 논리적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적 사고방식과 서양적 사고방식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사람들은 두 문화의 양립 불가능성을 주장하거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동양 혹은 서양을 미화하거나, 아니면 동서의 융합을 모색할 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동양적 사고방식을 ‘상징적’, ‘유비적’, ‘은유적’, ‘회귀적’, ‘종합적’, ‘전일적’, ‘상황적’, ‘유기체적’, ‘관계적’, ‘상관적’으로, 그리고 서양적 사고방식을 ‘변증적’, ‘논리적’, ‘추상적’, ‘선형적’, ‘분석적’, ‘본질론적’, ‘행위자 중심적’, ‘기계론적’, ‘작용적’, ‘환원적’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동양적으로 규정된 것들도 서양에 있었고, 서양적으로 규정된 것들도 동양에 있었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동서의 차이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사람들은 동양적 사고방식과 서양적 사고방식에 대한 자신들의 규정 방식을 문화사와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 중 일부는 중국 의학과 병리학을 바탕으로 한 서양 의학 혹은 화학이나 분자 생물학의 비교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구분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든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에는 ‘과학의 방법론’과 ‘과학에 근거한 세계의 해석’ 혹은 ‘세계 이해 방식’을 동일시하는 오류가 배어 있다. 이는 화학사의 단편만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화학에서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방법론이 중요했다. 그런데 실험과 맞물린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방법론의 목적은 물질 분리, 변환, 그리고 합성이다.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화학의 방법론은 그런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화학사에서 대세였던 세계 이해는 오히려 관계적이고 상관적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근대 화학의 모태인 연금술의 ‘원소 개념’이다. 물질 분리, 변환, 합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응성’이라는 개념이 필요했고, 반응성을 설명하기 위해 원소에 어떤 ‘능동적 원리’ 혹은 ‘영혼’을 부여하는 관점은 연금술 전통을 대표한다. 그러한 원리들은 서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반응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원소들은 반응성의 정도에 의해 상관관계를 맺게 된다.
기계론이 득세한 시기에는 연금술의 원소 개념에 담긴 ‘능동적 원리’를 사변적인 것으로 여겨 부정하는 입장이 대세였다. 그러한 능동적 원리를 가정하는 것은 물질의 운동 변화만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 즉 접촉과 같은 작용인만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와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응성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특별한 입자, 즉 ‘플로지스톤(plogiston)’이라는 열소(熱素)가 가정되었다. 그러한 열소를 부정한 보일이나 라브아지에조차도 반응성을 설명하기 위해 질소 혹은 산소에 매우 특별한 지위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야금학의 발달과 함께 전기 화학이 출현했고, 전기 화학은 반응을 매개하는 ‘친화력’이라는 개념을 유행시켰다. 물질의 활성, 곧 에너지가 양화 가능하게 된 이후, 화학은 현대적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화학의 실험 방법론은 분석적이고 환원적이다. 원소를 분리하고, 원소의 결합 방식을 모르고서는 원소들 사이의 반응 관계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학의 실험 방법론을 가지고 화학에 근거한 세계 이해 방식도 분석적이고 환원적이라는 주장은 화학사에 대한 무지를 보여줄 뿐이다.
화학의 모태인 연금술과 중국 의학을 비교할 때 원소에 능동적 원리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히 ‘행위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원소를 행위자에, 그리고 원소의 능동적 원리를 행위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힘, 즉 작인에 유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의학의 ‘몸’ 개념에서도 행위자 중심의 사고방식과 유사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실례로 심장에 유기체를 주관하는 원리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을 들 수 있다. 그 누구도 중국 의학과 과학의 특정 분야를 비교하여 ‘동양에 고유한 사고방식’, ‘서양에 고유한 사고방식’이라는 유형을 일반화할 수 없다.
말브랑쉐(N. Malebranche)를 비롯한 17세기 유럽 학자들은 신유학(申濡學)의 이기론(理氣論)을 접하고 이(理)를 창조주의 섭리로 해석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신 개념을 가지고 모든 종교의 핵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반면에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지나차게 일반화하는 관점이 유행했다. 이러한 유행의 결과는 유사한 내용, 즉 동양적 사고방식과 서양적 사고방식의 유형을 만들어 특정 분야의 성격을 규정짓는 텍스트들의 반복적인 출현밖에 없었다.
세계 이해의 문화적 차이를 다룰 때, 말브랑쉐처럼 그 차이를 자신의 관점에 가두어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방식은 허용될 수 없다. 또한 그 차이를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동양’ 대 ‘서양’이라는 유형 속에 가두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 그 어떤 경우든, 구체적인 특정 역사에 대한 단순한 평가로 인한 역사적 왜곡만이 남게 된다.
<덧글>
세계 이해 방식에서 문화적 차이는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그 차이를 지나치게 일반화할 수 없는 이유는 [사방전후(四方前後)]에서 다룰 것이다. [사방전후는]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므로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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