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저기: 서문

착한왕 이상하 2010. 8. 31. 15:26

저기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무종교인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으로 불리는 특징들, 즉 근대 및 현대를 특정 시기의 과거 전통과 구별시켜주는 특징들은 종교적인 것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양립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실제 세속화 과정보다는 그 과정에 대한 극단적인 지적 반응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지적 반응에 따르면, 종교성의 사장이 세속화의 본질처럼 규정되며,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종교성의 사장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에 의해 특정 시기의 과거는 근대 및 현대에 비추어 암흑기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 방식을 함축한 지적 반응이 19세기 세속화 운동을 촉발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이분법, 그리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진 역사는 그 과정에 어떤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는 지적 반응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세속화 과정에 어떤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가지고 근대 및 현대를 특정 시기의 과거와 구분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 사장론이 성립하도록 그러한 특징들을 이론적으로 과대 포장하여 근대 및 현대를 특정 시기의 과거 전통과 단절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때 종교가 사장된 사회 상태는 미래에 다가올 유토피아로, 그리고 그 특정 시기의 과거는 그러한 유토피아에 대비된 암흑기로 규정된다.

 

‘종교 시장 논리’는 종교 시장이 형성된 현실을 가지고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이분법, 그리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일원론’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필연성은 없다. 이 점은 종교 시장 논리 옹호론의 출발점이다. 그 출발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출발점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종교 시장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 출발점을 받아들일 때 부정되는 것은 단지 세속화 과정에 대한 잘못된 규정 방식, 즉 종교 사장론을 함축한 일원론에 근거한 규정 방식일 뿐이다. 또한 종교 시장 논리는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는 역사 읽기의 방식인 ‘기독교 전통의 세속화론’에 기대에 정당화횔 수 없다.

 

세속화 과정에 어떤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여 근대 및 현대를 과거 전통과 단절시키는 역사 읽기 방법을 부정한다고 해서, 근대 및 현대적인 것으로 불리는 특징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전통의 세속화론’은 미래에 다가올 유토피아를 가정하여 특정 시기의 과거를 암흑기로 규정하는 역사 읽기에 대한 극단적 반발일 뿐이다. 즉,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을 기독교에 뿌리를 둔 개념 혹은 사고방식의 세속화로 보는 ‘기독교 전통의 세속화론’은 역사적 증거를 결여한 것이다. 더욱이 기독교 전통의 세속화론에 기대어 종교 시장 논리를 정당화할 수 없음을 살펴보았다.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종교 시장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면, 실제 세속화 과정은 종교성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 과정은 단지 종교의 사회적 권위가 약화되는 과정을 뜻할 뿐이다. 특정 종교가 사회 통합의 원리로 기능하는 지역을 가정해 보자. 해당 지역의 종교가 다른 종교와 함께 번성하기는 힘들다.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현 상황은 종교 시장 논리에 힘을 실어줄 수 없다. 그 현상은 오히려 세속화 과정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따라서 이 땅의 무종교인은 세속화 과정에 대한 올바른 규정 방식과 잘못된 규정 방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때 무종교인은 서양의 역사적 맥락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속화된 이 땅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다룰 물음은 다음 두 가지이다.

 

• 첫째, 세속화 과정에 대한 올바른 규정 방식은 무엇인가?

 

• 둘째, 서양의 역사적 맥락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속화된 이 땅의 전통에는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비교될만한 것이 없는가?

 

여기서는 첫 번째 물음을 다루고, 이어지는 절에서 두 번째 물음을 다룰 것이다.

 

이 땅은 다수가 무종교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라는 점에서 분명히 세속화된 사회이지만, 무종교인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가로막힌 사회이다. 위 문제들을 다루는 가운데,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