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규정 방식

착한왕 이상하 2010. 9. 7. 07:08

(1)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규정 방식

‘세속화 과정’은 유럽 사회가 ‘교회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역사적 과정’을 뜻한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이해 방식을 따를 때, 세속화 과정에 대한 규정 방식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 첫째, 세속화 과정은 사회 체계의 각 계층이나 분야가 종교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 자체의 고유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종교적 교리 해석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고유성을 확보한 각 계층이나 분야는 ‘세속화된 것’으로 여겨지며,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특정 종교가 사회 전체의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뜻한다.

 

• 둘째, 세속화 과정은 종교 혹은 종교성이 사장된 사회 상태를 향해 나가는 역사적 단계를 뜻한다. 이때 세속화된 계층 혹은 분야는 종교적인 것과 배타적인 관계를 맺어야 그 자체의 고유성을 확보한 것으로 여겨지며,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종교가 더 이상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는, 혹은 사장된 사회 상태’를 뜻한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은 유럽의 실제 세속화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규정 방식은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빌미로 특정 시대에 규범적 독자성을 부여하려는 입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이러한 두 규정 방식의 차이는 ‘세속화의 대상’, ‘세속화 과정과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관계’, 그리고 ‘평가 기능’이라는 세 측면에서 분명해진다.

 

세속화의 대상 측면에서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규정 방식을 분석해 보자. 첫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르면, 세속화의 대상은 특정 시대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 및 분야이다. 이 경우,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서의 종교는 세속화 과정에 의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하부 분야 혹은 기능 단위로 인식된다. 종교적 교리는 해당 종교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것이지, 결코 사회 전체의 통합 원리처럼 여겨질 수 없다. 또한 사회의 각 계층 및 분야가 종교의 권위 혹은 이념에서 해방된 경우, 그것은 사회에서 종교와 대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 사회는 각 계층들 혹은 분야들의 유기적 관계망으로, 그리고 이상적인 정치적 합의는 그러한 관계망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계층 분화에 따른 가치 체계의 다원화가 ‘세속화된 사회’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이는 종교 시장이 형성된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종교 시장 형성은 종교의 다원화를 반영하며, 종교의 다원화는 가치 체계의 다원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정치적 합의가 기득권층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은 세속화된 사회에서도 배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집단적 차원에서의 정의’를 구현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고, 민주주의의 핵심 논제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르면, 세속화의 대상은 특정 시대가 된다. 세속화 과정은 종교 혹은 종교성이 사장된 사회 상태로 다가가는 역사적 단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때 세속화된 시대는 세속화되지 않은 시대와 대립 관계를 맺게 된다. 두 번째 규정 방식으로 세속화된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 상태는 단순히 종교가 사회에 군림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 사회 상태는 종교가 사장된 상태이다. 그러한 사회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 그 사회에 대비된 상태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때 ‘세속화’는 미래 지향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을 따를 때, 종교 시장이 형성된 현대는 진정으로 세속화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가 약해진 현실은 종교가 사라진 미래의 유토피아에 대비되어 이해되어야 하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또한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합리적인 세계, 그리고 그것에 대비된 과거를 비합리적인 세계로 이분하는 관점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세속화 과정과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관계 측면에서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규정 방식을 분석해 보자.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을 따르면, 세속화의 대상은 특정 시대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 및 분야들이다. 그러한 계층 및 분야가 세속화된 경우, 즉 종교적 교리 해석으로부터 그것의 기능이 자유로워진 경우, 종교의 사회적 권위가 약화되거나 붕괴된 역사적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세속화된 사회를 가능하도록 해준 어떤 역사적 계기는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세속화 과정과 세속화된 상태의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세속화 과정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둘의 연결 관계가 유럽의 내적, 혹은 자생적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의 역사적 맥락을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까지 확대시킬 수 없다. 그렇게 확대시키는 것은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평가는 ‘역사 읽기에 대한 어떤 철학적 규정 방식’을 전제하고 있다. 실례로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인과 법칙과 같은 것이 역사적 사건들에도 있다는 전제를 들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전제는 역사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될 수 없다. 그러한 전제는 특정 방식의 역사 읽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제된 것일 뿐이다. 더욱이 유럽의 세속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근대 및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과 세속화 과정을 연관시킬 때,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세속화 과정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 그리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이 붕괴되는 과정들은 서로 중첩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서적으로 나타났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가 신분제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세속화 과정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졌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특징인 계층 분화는 신분제의 붕괴 없이는 일어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가 신분제의 붕괴로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의 붕괴는 신분제의 붕괴에 대한 밑거름과 같다. 둘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지려면, 특정 시대를 지배한 관점이 그 다음 시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한 입장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한 관점과 함께 맞물려 평가되어야 하는 시대적 배경, 경제적 요인과 같은 ‘역사적 조건’들은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때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의한 산업 혁명과 같은 것이 없었어도,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관점의 붕괴는 신분제의 붕괴로, 신분제의 붕괴는 계층 분화로, 그리고 계층 분화는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 상태, 즉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속화된 과정과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관계가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유럽이 아닌 바로 이 땅의 역사이다. 이 땅은 유럽 맥락의 세속화 과정 없이 세속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과정과 비교할만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자.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을 따르면, 세속화 과정과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필연적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을 따르면, 세속화의 대상은 특정 시대가 된다. 두 번째 규정 방식에서 ‘세속화’는 ‘종교 혹은 종교성의 사장’을 뜻하기 때문에, 세속화된 사회일수록 종교가 사장된 사회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된다. 세속화 과정은 종교 혹은 종교성이 사장된 사회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역사적 발달’은 ‘세속화되지 않은 사회 상태’가 ‘세속화 과정’을 거쳐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전환되는 발달을 의미하게 된다. 이때 세속화 과정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와 필연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파악된다. 만약 세속화 과정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것은 단지 역사적 단절을 의미할 뿐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을 받아들이면, 세속화 과정의 이 전 시대, 즉 세속화된 시대에 대비된 시대는 암흑기로, 그리고 세속화된 시대는 미래에 다가올 유토피아로 규정된다. 앞서 살펴본 ‘기독교적 사고방식의 세속화’ 입장은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 대한 극단적 반발로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사고방식의 세속화 입장을 따르면, 그 역사적 관점에 깔린 목적론적 진보 개념은 단지 기독교적 종말론이 세속화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평가 기능의 측면에서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규정 방식을 살펴보자.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에 의하면, 세속화의 대상은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 및 분야들이며, 세속화 과정과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필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첫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른 ‘사회의 세속화 정도에 대한 평가 기준’은 ‘종교가 사회 전체의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종교인의 수를 따지는 것은 사회의 세속화 정도를 평가하는 일방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은 현실 진단의 평가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즉, 종교의 권위가 약해진 사회에서 과연 무종교인 계층은 그에 합당한 정치적 대우를 받고 있는지, 혹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각 계층 및 분야의 고유성이 잘 유지되도록 해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르면, 종교인의 수가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종교 혹은 종교성이 사장된 사회 상태가 세속화된 사회 상태라면, 종교의 사회적 권위가 약화된 정도는 ‘사회의 세속화 정도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른 평가 기준을 받아들이면, 종교인의 수가 적은 사회일수록 세속화된 사회이다. 세속화된 사회일수록 합리적인 사회라는 입장을 받아들이면, 종교인의 수가 많은 사회일수록 비합리적인 사회가 되어버린다. 사회의 세속화 정도를 이렇게 종교인의 수에 따라 양적으로 평가하는 경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종교의 기능마저도 부정되어야 한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 따른 평가 기준을 받아들이면, 현재에 잔존하고 있는 종교적 전통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만다. 세속화된 사회와 종교적 전통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대립 구도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은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세속화 과정에 대한 첫 번째 규정 방식을 ‘세속화 과정의 역사적 규정 방식’으로 부르자. 세속화 과정의 역사적 규정 방식과 달리,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에서 ‘세속화의 대상’은 특정 시대가 된다. 그 시대는 종교의 기능이 사라진 시대가 도래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단계로 여겨진다. 이 경우, 세속화 과정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한 특정 철학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세속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규정 방식은 ‘세속화 과정의 철학적 규정 방식’으로 불릴 수 있다.

 

세속화 과정의 철학적 규정 방식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세속화 과정의 역사적 규정 방식을 무의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이 점이 종교 시장 논리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세속화 과정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종교 시장 논리 옹호자는 세속화 과정의 철학적 규정 방식을 가지고 마치 실제 세속화 과정이 없었던 것처럼, 혹은 현실 진단에 무의미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