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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잡스의 죽음

착한왕 이상하 2011. 10. 7. 01:05

*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잡스는 아이들에게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반은 이번 잡스의 죽음을 빌미로 토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음 자료는 이를 위해 급조된 것임을 밝혀둔다. 여기에 올린 자료에는 토론을 위한 문제들 및 주제들은 빠져 있다. 참고로 다음 자료는 <생각의 기차 2>에 담긴 것을 개작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왜 존경하니? ‘우주의 신비를 밝힌 위대한 과학자이니까요’라고 아이들은 답한다. 나폴레옹을 왜 존경하니? ‘유럽을 정복한 위대한 장군이자 황제이었으니까요’라고 아이들은 답한다. 대학은 꼭 가야하니? ‘네, 그것도 유명한 대학에 가야 해요’라고 아이들은 답한다. 이렇게 답하는 아이들은 사회에서 의무화된 미래의 선택, 즉 입시라는 선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장기적인 전략을 필요로 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선택은 현재의 선택에 대해서는 집적적인 제약으로 기능한다. 삶을 기차에 비유할 때, 미래에 대한 예측과 선택은 기차의 엔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입시처럼 ‘사회에서 의무화된 미래의 선택’은 현재의 삶을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 사춘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볼 기회를 제공하는 시기’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수 없도록 삶의 장벽을 만들어 버리는 시기’가 되고 만다, 이렇게 변질된 사춘기를 보낸 학생들에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고작 지위, 유명세, 출신 학교 등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학생들의 눈에 들어오는 누군가는 ‘그의 삶이라는 과정’보다는 ‘그의 삶의 한 순간을 차지할 뿐인 어떤 결과물’밖에 없다.

 

‘잡스가 죽었어.’ ‘아이폰을 만든 그 사람이 죽었데.’ 아이폰만 가지고 잡스를 평가한다면, 잡스는 아이폰을 만든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아이폰이 나오는 과정을 가지고 잡스를 평가한다면, 잡스의 삶은 가능한 꿈을 실현시키고, 또 그 실현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도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폰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폰은 단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개인의 투쟁적 삶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에 불과하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미래에 선택하게 될 중요한 대상은 결코 입시와 같이 확실하게 주어진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확실하게 주어진 것이 미래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실현 가능한 것을 찾고, 시도해보고, 또 다른 것을 찾아보려는 모든 과정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애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새로운 도전 대상으로 떠오른다. 지능을 장착한 기계를 만들어보려는 집단적 노력은 컴퓨터를 탄생시켰고, 컴퓨터가 소형화됨으로써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체계의 실현 가능성이 열렸다. 어떤 가능성이 실현되고, 이로 인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과정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가능성의 실현과 새로운 가능성의 열림이라는 끊임없는 연쇄 반응은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는 사람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애플(Apple)’을 창시한 워즈니악(Stephen Wozniak, 1950~)과 잡스(Steven Jobs, 1955~2011)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1. 아르파넷

오늘날 컴퓨터는 영국의 NPL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 및 연구소가 공조하거나 경쟁하는 가운데 출현한 인공물이다. 에커트(John P. Eckert, Jr., 1919~1995)와 모클리(John W. Mauchly, 1907~1980)가 1951년에 개발한 유니박(UNIVAC: 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은 최초의 상용 가능한 컴퓨터로 회자된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체계인 인터넷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이미 195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컴퓨터에 주소를 지정해주고, 주소에 따라 자료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크(network)의 개념은 랜드(RAND: Research and Development)의 바란(Paul Baran, 1926~)에 의해 제안되었다.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의 대학원생 서프(Vinton G. Cerf, 1943~)와 칸(Robert E. Kahn, 1938~)은 정보 전송과 수신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송제어 프로토콜(TCP)과 인터넷 프로토콜(IP: Internet Protocol)을 개발했다. 그 결과, 네 개의 대학 사이에 아르파넷(ARPAnet)이 1969년에 구축되었고, 1971년에 이르러 20여 개 이상의 사이트(site)가 아르파넷을 기반으로 하나의 의사소통 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2.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

아르파넷은 인터넷의 초기 형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아르파넷 구축에 담긴 정신은 사회 전체 혹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겠다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보와 지식의 공유 및 소통은 여전히 엘리트층과 권력 기관에 국한된 것이었다.

아르파넷이 오늘날 인터넷으로 진화하는 데에는 여러 장벽이 남아 있었다. 상용 가능하도록 소형화된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이 없었다면, 그러한 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에는 1971년 당시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법 장치 ‘블루박스’(blue boxes)를 개발하고 비밀리에 판매한 두 청년이 기여를 하게 된다. 바로 애플(Apple) 사를 창립한 워즈니악과 잡스였다.

 

1975년 버클리 대학을 중퇴한 워즈니악은 휴렛패커드(Hewlett-Packard) 사에서 일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잡스는 비디오 게임 업체인 아타리(Atari)에서 근무하면서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된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애플 I의 개발과 함께 둘은 1976년 애플사를 창립했고, 뒤이어 애플 I을 개선한 애플 II가 1977년 선을 보였다. 컬러 모니터와 플로피디스크를 장착한 애플 II는 인터넷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개인용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잡스와 워즈니악

 

 

 

3. 인터넷

지능을 장착한 기계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컴퓨터를 탄생시켰고, 컴퓨터의 소형화는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촉진시키는 의사소통 체계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꿈을 불러일으켰다. 애플 II의 출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에 근거한 정보의 통일적 이용 방법인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이 영국의 비너스-리(Tim Bernars-Lee, 1955~)에 의해 개발된 이후, 각종 인터넷 검색 엔진이 나타나면서 지금의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체계인 인터넷은 특정 국가 차원에서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으며, 인터넷 없는 일상생활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도래한 것이다.

 

 

 

4. 이후

워즈니악은 최초의 만능 리모트 컨트롤(universal remote control)을 개발하는 등 그의 발명가적 기질을 꾸준히 발휘하면서, 아동 교육에도 관여했다. 워즈니악은 2001년 ‘제우스의 바퀴’를 뜻하는 워즈(WOZ: Wheels of Zeus)라는 회사를 설립해 무선위성 항법 장치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개발하기도 했다. GPS는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시시각각 제공해줄 수 있는 장치이다.

 

잡스는 1985년 에플 사의 내부 분쟁으로 인해 애플사와의 인연을 끊었다. 그 후 음성 및 화상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지닌 NeXT와 Pixar 사를 지휘했다 1997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합병 하면서, 잡스는 다시 애플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을 지휘하면서 나온 인공물이 바로 ‘아이폰(iPhone)’이다.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 전화를 개선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계망을 촉진시켜 사회 구조의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킨 도구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아이폰이 휴대 전화를 재창조했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