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이래즈머스 다윈과 홍대용(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7. 24. 23:22

과학이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여겨진 시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대 조선의 유생들은 서양의 천문지리학에 관심을 가졌다. 18세기가 실학(實學)의 태동기임을 참작한다면, 과학이 조선 양반층과 유럽 귀족층에 끼친 영향을 교차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경세를 중시하는 조선 시대의 학문 전통으로 규정한다면, 실학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실학이 민중 운동 차원까지 확대되었는지는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조선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여긴 실학자들도 많았다. 과학이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의 수단으로 기능했다면, 그러한 실학자들에게는 ‘탈 중국 논리’를 정당화해주는 수단이었다. 이를 살펴보려고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을 간략히 비교할 것이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과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바로 그 두 사람이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3110950446

 

이래즈머스 다윈과 홍대용

과학이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여겨진 시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대 조선의 유생들은 서양의 천...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