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툴민(S. Toulmin)과 게리 올슨이 대화로 진행한 것을 상상해보니 두 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간을 들여 찾아본다면 툴민의 강연이 담긴 비디오나 오디오 파일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는 대화를 나눈 질문들 중 몇 가지를 골라 적어보았다. 질문은 번호를 쓰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Gary A. Olson(1994), "Philosophy, Rhetoric, Literary Criticism: Interviews", Southern Illionis University Press.
Stephen Toulmin
Literary Theory, Philosophy of Science, and Persuasive Discourse: Thought from a Neo premodernist - Gary A. Olson
질문 1. 툴민 교수님께서는 세간에 주목을 받는 책들과 기사들을 많이 쓰시고 강연도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에서 볼 때, 교수님은 자기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시나요?
툴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처럼 큰 만족감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저에게 작가와 선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작가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 정말로 부합한 것인지는 분명하게 답을 못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겠죠.
질문 2. 우리는 훌륭한 작가들이 수사학적 측면이나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글쓰기 방식을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글을 쓰기 전에 구상은 어떻게 하시는지, 글은 자주 고치시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시는지요?
툴민: 저는 40년 이상 글을 써왔습니다. 그간의 세월 동안 글을 쓰는 방식은 바뀌어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만년필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윤리를 다룬 제 첫 번째 저서는 펜과 잉크로 집필했습니다. 보통 글을 쓰기 전에 앞서 녹음기를 꺼내어 생각해놓은 구상을 녹음 합니다. 그 다음 컴퓨터로 생각을 정리하고 그때부터 진짜 원고를 쓰기 시작하죠. 글을 고치는 것은 워드 프로세서로 작업합니다. 저는 기술이 발달해 글을 쓰는 방식이 편리하게 변화해나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문장에 밑줄을 치고 글을 고쳐나가는 과정은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작업입니다. 펜으로 썼든, 타자로 쳤든지 간에 새로 글을 썼을 때의 결과물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줍니다. 글을 수정하기 위해 7~8번 정도 계속해서 고쳐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같은 뜻이라도 더 나은 문장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문장의 절을 다른 곳으로 배치시켜 전체적인 흐름이 제대로 들어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워드프로세서는 도덕적인 의미에서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에서 누군가 따로 교정을 보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글의 전체적인 구상을 잡기 전에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쓸 주제만 가지고 글을 쓰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책들을 그러한 방식으로 글을 썼고, 최근에 쓴 <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겨진 이야깃거리> 또한 글의 주제들과 생각들을 명료하게 정리한 후에 원고를 썼습니다.
질문 3. 교수님은 글을 집필하시기 전에 주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시는 것이 먼저 이시군요.
툴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의 글쓰기 방식이란 건축과 같은 것입니다. 건축물을 세울 때는 모든 설계가 들어맞아야 하듯이 그러한 감각을 가지고 원고를 씁니다. 사실 종이에 글을 쓰거나 워드로 작업을 하는 과정에는 특정 단원에 이르러서 글이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정말로 집필하는 작업에서는 주제에 대해 작품 번호를 매기듯이 글을 씁니다. 조금 전에 제가 글을 고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철학자들의 글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철학자들의 글을 읽기 괴롭게 만드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글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그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이 어떤 철학자의 글을 7번 정도 되풀이 하여 마침내 그 속에 담긴 저자의 뜻을 이해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는데 여러 번 되풀이 하여 읽었다는 것이 불편할 순 있지만,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제가 매우 존경하는 존 듀이(John Dewey)의 글을 읽을 때 그러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때때로 듀이가 주기적으로 글의 일부분을 찢어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들어 프린터로 글을 보내는 것이 아닌지 상상해보았습니다. 듀이가 정말 그렇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글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러한 난감함을 자주 느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 글이 독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에 대해 자주 고민을 합니다.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독자가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에 관한 것들을 말입니다. 이러한 고민들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툴민, 당신은 글을 정말 깔끔하게 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군요.” 라고 말합니다. 저만의 글쓰기 지침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글쓰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글쓰기 지침을 통해 글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들입니다. 먼저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써져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질문 5. 당신에게 지적으로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입니까?
툴민: 그것에 대해서는 쭉 나열해보도록 합시다. 만약에 우리가 철학적으로 영향을 준 인물을 말한다면, 나는 당연히 비트겐슈타인을 꼽을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캠브리지에 있을 때 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알란 제닉과 함께 쓴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에서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그의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확신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어요. 수업을 듣기 전부터 고전적 회의주의(classical skepticism)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저를 그쪽 방향으로 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비트겐슈타인과 섹스투스 그리고 몽테뉴에 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들의 저서를 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철학의 영역(technical philosophy)은 고전적인 피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었다고 봅니다.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변을 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서 되묻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곳에 다다랐는가?(How on earth did we get into this trap?")
비트겐슈타인은 저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 철학자입니다. 그처럼 저와 같이 물리학으로 시작했습니다. 나의 첫 학위는 물리학과 수학에 관한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레이더에 관한 연구를 맡았는데 제 관심사가 동료 물리학자들의 그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업할 때마다 나는 종종 쉬곤 했는데 그때 실험 과학자가 될 자질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이론들이 너무 수학적으로만 쓰여 있었습니다. (제가 종종 과학자에 대한 말을 할 때, 1942년 당시의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당시에 제가 캠브리지에서 어떤 것들을 배워왔는지 다시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첫 출발은 물리학이었습니다. 그렇게 관심사는 과학철학, 과학사, 사회학, 정치과학 등으로 이동해갔습니다. 결국에는 정밀과학의 여러 주제에 대한 지성사를 다루었죠. 이러한 관심사의 이동을 저는 든든한 빌딩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표현은 피어 진트(Peer Gynt)의 의미와는 반대입니다. 진트는 바깥쪽부터 양파를 벗겨나가죠. 그렇게 되면 가운데 부분은 비어있게 됩니다.(어떤 사람을 양파로 비유할 때, 양파의 껍질을 벗겨나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중심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 -해설) 물리학자로 시작한 툴민에게는 중심을 찾아볼 수 없으실 겁니다. 그러나 그 중심부터 시작해 제 학문적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관심사들인 양파 껍질을 한 겹씩 차곡차곡 쌓아올렸다고 할 수 있죠. 비트겐슈타인 또한 물리학에 대해 지독히도 관심이 없었지만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태도에 대한 사유를 얻게 됩니다. 그는 볼츠만 (Ludwig Boltzmann)에게서 물리학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볼츠만이 자살을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제게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방법이 가장 잘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접근 방식 중에서 윤리학에 대해서는 찾지 못했지만요.
질문 6. 첫 번째로 출간하신 책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S. Toulmin(1950), Reason in Eth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툴민: 맞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윤리학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강의를 통해서라도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주장이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나는 그에게 철학적 관점을 배웠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데카르트를 비판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와 같은 입장을 보이죠. 그의 초기 노트에서 “역사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주어진 세상과 내게 다가오는 것들 뿐이다.” 라고 썼습니다. 굉장히 강한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적으로는 유아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사유가 자리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역사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이성에 대한 작용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콜링우드(R. G. Collingwood)는 저에게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해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를 읽고 나서 저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웠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쓴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저의 전체적인 작업은 베이컨의 신기관(novissimum organum)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주로 글에 관련된 주제들은 합리성, 합당함, 이성의 사용에 관한 것들입니다. 책을 끝낼 때마다 다루지 않은 복잡한 주제에 대해 단서를 남기곤 하였는데 이것은 독자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항상 다음에 쓸 주제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논변의 사용> 마지막 결론부에서 “지금까지 다뤄왔던 논변의 형식들이나 개념들은 역사적인 방법을 통해 그러한 개념들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책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들을 뜻하는 것인데 철학자로서의 콜링우드에 대한 관점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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