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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착한왕 이상하 2016. 11. 11. 00:31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썰물 때 바닷가로 나갔다. 늦은 밤이라 주변에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달빛만 바닷물이 빠진 개펄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개펄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을 찾을 방법은 없다. 아침이 되면 밀물로 인해 지폐는 바닷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 사람은 지폐를 줍는다. 이 상황을 지폐 줍기 상황이라고 하자.

 

지폐를 개펄에 그냥 나두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재화를 낭비하는 것에 해당한다. 지폐를 주은 사람은 금전적 이득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은 금전적 손해를 본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무조건 긍정해야 한다면, ‘지폐 줍기 상황은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득점을 합한 것이 0이 되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에 가깝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왜냐하면 게임 이론에서 게임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의 전략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을 택하는 행위자로 가정되어 있는 반면, ‘지폐 줍기 상황에서 지폐를 줍는 행위는 지폐를 잃어버린 행위를 고려한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폐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폐를 주은 사람이 오만 원의 금전적 이득을 얻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이로부터 그 이득이 지폐를 잃어버린 사건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지폐가 발견되기 전에 바닷물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따라서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이 금전적 손해를 본 것은 맞지만, 누가 그 지폐를 주웠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금전적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지폐를 줍는 순간에만 국한해 생각한다면, 지폐를 주운 사람은 금전적 이득을 보았고, 이로 인해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아갈 손해는 없다.

 

논리적 비약을 허락해 이를 일반화해 보면, ‘파레토 효율성혹은 파레토 적합성에 대한 다음의 규정 방식을 얻을 수 있다.

 

 

파레토 효율성을 만족한 이득, 파레토 효율적 이득(Pareto efficient gain)’은 어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최대 이득이다.

 

지폐 줍기 상황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보면 위 규정 방식을 만족함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 Pareto, 1848~1923)가 제안한 파레토 효율성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어느 개인이 최대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경제 행위, 상태 혹은 정책에 적용 가능한 이론적 기준이다. ‘지폐 줍기 상황과 달리, 파레토 효율성을 만족하는 경제적 상황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파레토 효율성보다는 파레토 개선 가능성이 좀 더 현실에 적용 가능한 기준이다. 파레토 효율성을 만족하지 않는 상황을 좀 더 만족하도록 만들 수단이 있다면, 그 상황은 파레토 개선 가능성 조건을 만족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경제적 문제가 파레토 개선 가능성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파레토 개선 가능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 개선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폐 줍기 상황에서 개펄에 지폐가 그냥 버려진 상태는 파레토 비효율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줍는 행위에 의해 그 상태는 파레토 효율적인 상태로 바뀐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 지폐를 발견했다고 해 보자. 누가 그 지폐를 차지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 지폐에 해당하는 재화 가치를 분배해야 하는가? 아니면 가위바위보나 투표를 통해 지폐를 차지할 사람을 정해야 하는가? 이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파레토 효율성이나 파레토 개선 가능성의 기준을 가지고 결정할 수 없다. 이는 좀 더 실제적인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분명해 진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지역은 디젤 기관을 사용하는 버스들로 인해 심각한 대기 오염을 겪고 있다.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 대기 오염을 계속 방치할 때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간 버스 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상당액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이 경우, 서민들만 고통을 받게 된다. 부자들은 어차피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을뿐더러 인상된 요금에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고 요금 인상안을 놓고 투표를 해보았자, 다수가 반대할 것은 당연하다. 칠레의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 시민은 저소득층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논쟁을 거쳐 두 가지 대안을 내 놓았다. 첫 번째, 부유세를 걷는 것이다. 이 대안을 주장하는 진영은 부유세를 통해 다수가 만족할 수 있고, 또 부자들은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만큼 공동체 에 기여할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더욱이 그들이 누리는 특권과 대기 오염 감소로 얻게 되는 이득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낼 세금은 그들에게 큰 손해가 아니라고 여긴다. 두 번째, 디젤 버스를 천연 가스 버스로 대체하는 버스 회사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다. 이 대안을 주장하는 진영은 그 대안을 정책화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최근 발견된 칠레의 천연가스 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고, 또 천연 가스 사업을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여긴다.

 

위와 같은 상황을 한 번의 정책에 의해 파레토 효율적인 상황으로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대기 오염을 줄이면서도 가급적 다수가 만족하도록 파레토 개선 가능한 상황이라고 하자. 이때 위 상황에서 제시된 두 가지 대안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시장 경제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은 첫 번째 대안을, 반면에 시장 경제에 정부가 가급적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은 두 번째 대안을 선호할 것이다. 물론 여러 대안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가상의 두 대안만을 제시한 이유는 공공 정책이 종종 시장 경제 개입에 대한 찬반 진영의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문제를 발생시킨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그 분석에 근거한 합당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그러한 분석에는 부의 사회적 분포 방식뿐만 아니라 국민 수준도 고려되어야 한다. 내가 만약 칠레 정책가로서 위 두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는다면, 첫 번째 대안을 택하겠다. 시장 경제에 가급적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칠레의 상황을 고려할 때, 첫 번째 대안은 두 번째 대안을 배제하지 않지만, 두 번째 대안은 첫 번째 대안을 현실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 칠레가 처한 상황에서 첫 번째 대안을 정책적으로 실현하면서 두 번째 대안을 보완책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역은 성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2012년 10월 12일에 작성된 글을 수정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