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2009년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 <셜록 홈즈>는 색다른 홈즈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소문으로 인해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실제 영화를 보면 상당히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산업혁명과 함께 종교적 지배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 런던 브릿지
영국을 상징하는 런던 브릿지의 오늘날 모습은 19세기의 탄생물이다. 런던 브릿지는 1831년에 완성되었다. 따라서 공사 중에 있는 런던 브릿지의 장면을 통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아마도 1820년대 말아나 1830년 정도가 될 것이다. 새로운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홈즈의 언급에서 볼 수 있듯이, 런던 브릿지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발전과 부를 상징한다.
(2) 도박장, 술주정뱅이들, 왓슨
세계의 중심축이 된 영국이었지만, 런던 거리는 술주정뱅이들로 넘쳐난다. 사방에 도박장이 널렸으며, 왓슨도 도박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도박장’, ‘술주정뱅이들’, ‘왓슨의 도박병’ 등은 종교적 교리로 교화된 사회상과는 거리가 먼 상징들이다. 더 이상 일반 대중을 종교적 교리로 통합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의대 졸업생이자, 전쟁에서 훈장도 받은 왓슨이라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왓슨의 언행에서 신앙심에 비견될만한 ‘대영 제국에 대한 애국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종교가 사회 통합의 기반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 까닭에,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력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도박장’, ‘술주정뱅이들’, ‘왓슨의 도박병’ 등은 종교의 지배력에서 벗어난, 즉 세속화된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당시에 교회를 나간 영국 사람들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런던의 경우, 그 퍼센티지는 훨씬 낮았을 것이다.
(3) 블랙우드의 부활
블랙우드는 고대 주술을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영국 의회를 장악하려는 인물이다. 블랙우드의 부활은 얼핏 보면 힘을 잃어버린 종교적 권위의 복권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블랙우드의 부활은 애국심을 상징한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강해졌지만 주변 국가 및 미국과 경쟁해야 한다. 영국이 그러한 경쟁에서 주도권을 계속 잡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애국심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기존의 종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무기력하다.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며, 사람들에게 ‘매직’을 보여줘야 한다.
(4) 블랙우드와 홈즈
블랙우드와 홈즈는 서로에게는 적이지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공통점은 다음이다.
• 과학 없이는 ‘매직(magic)’은 불가능하다.
블랙우드와 홈즈 둘 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매직을 믿지 않는다. 다만 블랙우드는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한 새로운 종교의 위력을 보여줄 목적으로 매직을 사용한다. 이러한 까닭에, 블랙우드는 매직을 가능하게 만든 과학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가장하여 숨겨 버린다.
(5) 실험실
셜록 홈즈는 단서를 추정하여 가설을 생성하는 데 천재적이다. 이러한 홈즈는 수학이나, 수학을 바탕으로 한 이론물리학에는 관심조차 없다. 격투 장면에서 보듯이, 홈즈는 생리학과 해부학에 해박하다. 적을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학과 해부학의 지식에 근거하여 치밀한 계산 하에 공격한다. 종종 왓슨의 불독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홈즈는 독극물과 화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사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과학은 실험과학이었다. 해부된 상태의 개구리, 전기 장치, 화학실험 장치 등으로 어지러운 실험실은 이를 상징한다.
(6) 홈즈의 승리
블랙우드를 곤경에 몰아넣고 사건을 해결한 홈즈의 승리는 단순히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상징하지 않는다. 홈즈의 승리는 ‘매직을 가장하여 사람들을 통합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한 부정’을 상징한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치꾼들과 이들의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은 일등 국가가 될 것이라면서 민족주의의 부활을 시도한다. 민족주의가 어떤 위기 속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경우, 민족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긍정적 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선동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는 아니다. 민족주의로 일등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며, 선동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는 단지 권력 집단의 배만 불려주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부활을 시도하는 정치꾼들과 이들의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은 블랙우드에 비유될 수 있을까? 이를 긍정하는 것은 드라큘라의 고귀함마저 풍귀는 블랙우드에게 실례를 범하는 짓이다. 적어도 블랙우드는 과학 없이는 매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민족주의의 부활을 시도하는 정치꾼들과 이들의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은 과학이 곧 경제 대국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매직이라고 주장한다. 미천한 자들이라 할 수밖에 없다.
영화 전체평: Very Smart!
'과학과 철학 에세이 > 잡세상 잡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들의 개수는? (0) | 2010.03.03 |
---|---|
씁쓸한 Dr. 하우스의 종말 ... (0) | 2010.03.01 |
[아인슈타인 구출 작전 2-2] 벌거숭이 아인슈타인 2 (0) | 2010.01.17 |
[아인슈타인 구출 작전 2-1] 벌거숭이 아인슈타인 1 (0) | 2010.01.17 |
[아인슈타인 구출 작전 1] 착한왕의 지하실 (0) | 2010.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