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한국 개신교 전파 역사에 대한 짧은 고찰

착한왕 이상하 2010. 1. 27. 05:53

한국 개신교 전파 역사에 대한 짧은 고찰

 

 

1. 한국에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시기는?

 

1882년 미국과 친교가 이루어진 이후이다. 18세기 중엽 이후의 선교사는 예수회의 마테오리치가 북경에 입성하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유럽이 세계 역사의 중심축이 되면서 계몽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백색 도덕 제국주의’가 서구의 식민지 개척 역사 속에 반영되어 있다. ‘백색’은 피부색이 아니라 인종주의 관점에서 다른 문명권을 평가하는 규범과 같이 작동했다. 지적 우월성과 도덕성을 상징하는 백색 규범에 따라 다른 지역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관습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선교의 목적은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선교 활동은 유럽 각국의 경제적 이권에 따라 토지 개발 회사, 무역 회사 등과 끈끈한 연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Beidelman, T.O.(1982), Colonial Evangelism, Indiana University.)

 

 

 

2. 개신교의 어느 교파가 구한말 이후 선교 활동을 주도했는가?

 

가톨릭의 예수회가 경제적 파탄을 맞은 이후, 예수회의 대외 선교 활동은 축소되었다. 예수회의 선교 활동이 부활한 시기는 1870년대 이후로 평가된다.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이 땅에 먼저 상륙한 것은 맞지만, 민중의 깊숙이 파고든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힘이 약해지면서 미국과의 친교가 맺어지고, 이 덕에 선교 활동을 조선 곳곳에 확장시킬 수 있었던 세력은 장로교였다. 알렌(H. N. Allen), 언더우드(H. G. Allen) 등이 캐나다와 호주의 장로교파와 합세했고, 1907년 대한장로교가 설립되었다.

 

장로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1884년 감리교, 1890년 영국 성공회, 1895년 침례교가 연이어 상륙했다. 성령 강령 운동에서 파생된 펜테코스타(pentecostalism) 교파의 목사 범제이(M. Bumsey)가 1926년 일본을 경유해 이 땅에 들어왔다. 펜타코스타 교파는 6.25 사변 이후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성령이 개인에게 강림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성령 강령 운동은 펜테코스트의 여러 작은 교단을 파생시켰다. 그러한 교단 중 하나인 ‘신의 예배회(assemblies of God)’에 속한 조용기는 1958년 신도 모임을 결성했고, 기독교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탄생시켰다.

 

구한말 이후, 이 땅에 상륙한 개신교 교파는 장로교에서 펜타코스타 교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기독교인 다수를 차지하는 교파는 역시 장로교파이다. 이 땅의 장로교파는 기독교 내에서도 극단적 근본주의로 평가되는 펜타코스타 교파와 그 성격을 달리하는가? 그렇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3. 한국 교회 세력의 일반 성격은?

 

장로교의 극단적인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청교도파는 미국에 건너가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뒀지만, 또 한편 미국의 건국이념을 마련한 지식인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정교 분리의 원리가 헌법에 명시된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교도 세력의 영향이 미국에서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장로교파 내에서 청교도 세력은 선교 활동을 통해 그들의 입지를 확장할 수 있었고, 미국 내에서도 청교도를 둘러싼 18세기 갈등의 역사는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정치 세력과 민중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의 장로교 교단들은 복음주의에 물들어 있었고, 이러한 배후에는 16세기 말 영국에서 쫓겨나 네덜란드를 경유해 신대륙에 상륙했던 청교도 세력의 꿈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대한 장로교가 일제 강점기 후 공식적으로 재건된 때는 1949년이었다. 그러나 10년 후 대한 장로교는 두 파로 분리된다. 그 하나는 합동파이며, 다른 하나는 통합파이다. 현재 대세를 이루는 합동파는 과거 청교도 세력이 꿈꿨던 복음주의 이념에 물들어 있다. 좀 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통합파는 합동파에 비해 상대적인 소수에 속한다. 한국 장로교를 대표하는 합동파는 미국의 근본주의자 장로교 목사 매킨타이어(C. McIntire)가 설립한 ‘국제기독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안다면 한국 장로교 다수의 목사가 친미주의자인 이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

 

기독교 내에서도 근본주의로 취급받는 복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장로교의 합동파 외에도 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북미주 개혁 장로교파도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소망교회는 북미주 개혁 장로교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로교의 합동파가 제아무리 순복음 교회와 거리를 두려고 할지라도, 그 둘은 성서에 근거한 전 세계의 기독교화라는 목적을 공유한다. 국제 선교 활동은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공격적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따라서 장로교 교리를 논하는 경우에도, 합동파 중심의 대한 장로교는 유럽 장로교 역사가 아닌 청교도 이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 교회사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역사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 통합파가 현재의 개신교 세력을 대표하게 되었다면, 개신교의 사회적 활동 방식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한국 교회 세력을 상징하는 네 자는 ‘복음주의’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찾기는 각 교파가 속한 국제기구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족하다. 지나친 복음주의를 기독교의 극단적 근본주의로 분류하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에 속한 교단은 장로교의 통합파, 감리교, 그리고 영국 성공회이다. 장로교의 대세인 합동파는 국제기독협의회 소속이며, 한때 펜테코스타 교도였던 조용기는 세례명을 폴(Paul)에서 데이비드(David)로 개명한 이후 성령 강령 운동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려고 하고 있다. 여러 한국 교회들은 세계교회협의회가 아닌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에 속해있다.

 

 

 

4. 세계 교회사에서 현 한국 개신교의 특징은?

 

기독교의 극단적 근본주의가 대성공을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 성공은 가히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Bauswein, J.J. & Visher, L.(eds.)(1999), The Reformed Family Worldwide: A Survey of Reformed Churches, Theological School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William B. Eerdmans.) 세계 교회사에서 현 한국 개신교의 특징을 규정해본다면, ‘백색 도덕 제국의 토착화’라 할 수 있다. (백색 제국주의의 토착화에 대한 규정은 생략) 그 토착화는 문화 갈등 속에서 기독교가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일종의 탄력성을 뜻하지 않는다.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지성인들과 민중의 공동의 적은 일제였기 때문에, 개신교를 둘러싼 문화 갈등은 크게 벌어진 적이 없었다. 또 해방 후 개신교 세력 다수가 정권과 학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급속한 개발 독재 과정 속에서 공동의 적은 독재자였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둘러싼 집단 간 갈등과 이에 따른 합의의 역사가 제대로 전개된 적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백색 도덕 제국의 토착화는 이 땅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집단 간 갈등이 종교가 사회적 순기능을 하기 위한 일종의 ‘필요 악’이라면, 일제 강점기, 6.25사변, 독재의 시기가 그러한 갈등이 생길 틈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야 종교 자체가 아닌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둘러싼 집단 간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그 갈등은 교회 세력 내에도 확장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 정권에 'Thank you!'라고 말해야 할까? 왜냐하면 그러한 갈등을 통해 개신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 땅에 토착화될 운 좋은 시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