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의 고대적 의미
1.
우리가 무신론을 이해하는 방식은 지극히 서구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이해 방식은 기독교가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정착한 이후 전지전능한 창조주를 부정하는 관점으로 굳어진 무신론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세력이 이교도(pagan)들과 더불어 살면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던 시절만 해도, 무신론 관점을 지금처럼 이해하는 방식은 없었다. 그렇다고 ‘무신론’이라는 용어가 오로지 근대적 산물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리스 어원을 따진다면, ‘a’는 ‘무엇 없이’를 뜻한다. 무신론자에 해당하는 ‘atheist’는 어원적으로 ‘신앙심이 없는 사람’을 뜻했다. 다신교가 근동 아시아와 유럽을 지배했던 시대에는 ‘무신론자’라는 개념은 ‘무종교인’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종교 개혁 이후 기독교의 교리가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된 후에야,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의 ‘무신론’ 개념이 탄생했다. 교회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독교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의 적극적인 무신론의 이해 방식이 정치적으로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2.
용어 ‘무신론’이 명확히 드러나는 중세 이전의 문헌 중 하나를 꼽으라면,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의 ?미신에 관하여(De Superstitione)?를 들 수 있다. 고대 로마가 다신교 사회였던 만큼 플루타르코스가 무신론자를 언급할 때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들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혹은 신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을 뜻했다. 신 존재를 부정하는 ‘적극적 무신론’은 미신의 종착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자들, 신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 미신에 빠진 자들 모두가 플루타르코스에게는 사회 설계에 불필요한 사람들로 비춰졌다. 이를 보기 위해 [플루타르코스 도식]을 분석해 보자.
고대 로마 사회는 다신교가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자. 사회에서 공인된 어떤 신에 대한 공경 혹은 신앙은 개인의 믿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유지를 위해 사람들의 행위를 격식화시키는 ‘관습 체계’이자 사회에 대한 개인의 소명 의식을 강화시키는 ‘제의적 장치(ceremonial instrument)’이기도 했다. 전쟁을 떠나는 장군은 특정 신에게 자신의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했고, 부부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또 다른 신을 찾기도 했다. 다신교가 지배한 사회에서 각각의 신은 개인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사회적 책임 의식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플루타르코스의 도식에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비종교적인 인물로서 무신론자의 첫 유형은 신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 곧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무신론자의 둘째 유형은 신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로서 기존의 사회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미신에 빠진 사람은 신들에 대한 책임 의식, 곧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져버리고 모든 행운과 불행을 철저히 신들에게 돌리는 유형의 인물이다.
미신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이미 신들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에 몰입하거나 자신의 불행을 신의 탓으로 돌린다. 신앙심이 없는 무신론자도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결여할 수 있지만,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반드시 미신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가 좌절감에 빠질 때 그의 ‘개인 중심적 성향’은 강화될 수 있다. 반면에 미신에 빠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사회에 공유된 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뿐만 아니라 키케로 또한 미신이 죽음과 불운에 대한 개인의 공포심을 신에게 전가시킨 형태의 반종교적인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반종교적인 인물은 공동체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결여한 반사회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이제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신에 빠진 어떤 이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신에게 행운을 빌고 재물을 바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불운밖에 없었다. 신을 증오하게 된 그가 무신론자가 될 경우, 그는 신앙심이 없는 인물과 신을 부정하는 인물 중 어느 쪽이 될까? 그가 신을 부정하게 될 가망성이 높다는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결론이다. 불운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탓으로 돌리는 이는 신을 증오할 수밖에 없고, 결국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이다. 신을 부정하는 이는 사회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플루타르코스에게 미신에 빠진 이는 신앙심을 결여한 자보다 더욱 위험한 인물인 것이다.
3.
[플루타르코스 도식]에 따르면, 무신론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신앙심이 없는, 혹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는 지금의 무종교인에 가깝다. 신들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기족과 사회에 무책임한 사람에이다. 고대 로마 사회를 지배한 각각의 신에 종교를 대응시키는 경우, 신앙심 없는 사람은 그 어떤 종교 교리의 진실성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원적으로만 따진다면, ‘atheist’의 원래 의미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무종교인’도 함축하고 있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과 달리 신들을 부정하는 사람은 플루타르코스에게 미신에 빠지기 쉬운 인물로 비춰졌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만나게 된다.
• 신앙심이 없는 무종교인은 정말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인가?
• 신 존재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무신론자는 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인가?
물론 아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렇다고 본 이유는 여러 종교의 가치 체계가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무신론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신교가 지배했던 시대의 산물이 아니다.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가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된 이후, 새로운 사회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독교의 신을 부정하는 입장이 나타났다. 지금 우리가 무신론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러한 입장에 근거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 에세이 > 역사의 단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 정신 (0) | 2010.02.12 |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0) | 2010.02.11 |
청교도를 둘러싼 갈등과 미국 공교육 정착의 역사 (0) | 2010.01.27 |
한국 개신교 전파 역사에 대한 짧은 고찰 (0) | 2010.01.27 |
랑케(Leopold von Lanke, 1795~1886) (0) | 2010.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