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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범죄의 연관성?

착한왕 이상하 2018. 10. 21. 19:55

사회 유지에 방해가 되는 심신미약자나 정신 질환자를 격리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타당한가? 범죄 행위를 저지른 심신미약자나 정신 질환자는 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을 가하지 않거나 감형해 주는 것이 정당한가? 서로 상이해 보이는 이 두 질문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논증적으로 처리 가능한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1. 정치적으로 허용 가능한 사회는 시민 사회이다.

2. 시민 사회의 구성원 시민은 스스로 법적 책임성을 가질 수 있는 개인이다.

3. 그러한 개인은 선택과 행위에서 합리적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4. 그러한 발휘가 조화로운 시민 사회 유지에 방해물로 작동한다면, 해당 개인은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위와 같은 관점은 서양의 경우 이미 17세기에 나타난다. 실례로 로크는 기억을 합리적 판단 능력의 발휘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기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성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3에 대한 필요조건으로 로크는 기억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정체성 및 법적 책임성을 기억에 집중시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유 생략) 이후 충동 및 동기를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여부가 3의 필요조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정신질환과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논의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4의 관점은 과거에는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실례로 아이들과 여자들은 성장한 남자만큼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렇다면서 식민지 옹호론에 사용되기도 했다. 1-4는 이후 계층 간, 지역 간 평등을 전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개인들이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를 논할 수 있게 된 현 시점에서 과연 1-4의 관점은 그 자유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까? 


위 물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모두 1-4의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현 세태를 진단한다. 개인적으로 위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이유는 생략한다. 여기서 명백히 하고 싶은 것은 1-4의 관점이 글 시작부에서 언급한 두 질문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심신미약자나 정신질환자는 합리적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면 사회적으로 격리시켜야 한다. 19세기, 20세기 초만하더라도 심신미약자나 정신질환자를 겪리 수용하는 시설들이 흔했다. 왜? 그들이 시민 사회 구성원이 되는데 필요한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들에게 법적 책임성을 묻기 힘들기 때문에사전에 겪리시키여 한다는 것이다. 심신미약자나 정신질환자를 겪리하는 방법의 잔인성,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정도를 규정하기 힘든 것에서 기인한 남용 등을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그들을 별도로 다루는 수용소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또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보다는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이 득세했다. 그러나 심신미약자나 정신질환자의 범죄 행위 처벌 수위는 약해야 한다는 입장은 관점 1-4에 의해 그대로 유지된다.


사회 유지에 방해가 되는 심신미약자나 정신 질환자를 격리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타당한가? 범죄 행위를 저지른 심신미약자나 정신 질환자는 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을 가하지 않거나 감형해 주는 것이 정당한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위 두 질문은 서로 상이해 보여도 동일관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의학과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행한다.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은 범죄 행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위 질문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입장이 경쟁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과거에도 마찬가지다. 그 두입장은 다음과 같다.


A. 우울증, ADHD, 암네지아 등 특정 정신 질환은 범죄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B. 범죄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들은 심리적 요인들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요인들이다.


 A와 B의 극단적 두 입장은 범죄 동기를 그저 합리적 계산능력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적 측면을 포함하려는 학풍 변화를 보여 준다. A 입장의 원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범죄 행위의 주 원인은 소위 '이드', '에고', '슈퍼 에고' 사이의 불균형이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범죄 행위 구성에 대한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범죄 행위 구성 분석을 통해 이드, 에고, 슈퍼 에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없다. 이후 A를 옹호하는 극단적 심리학자나 정신병리학자들은 범죄 행위를 낮은 IQ나 우울증과 갖는 질환과 연관시키기 시작했고, 이 세태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약회사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학자들이 대거 그 세태를 강화시켰다.


ADHD의 경우, 그 원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ADHD의 치료가 약물로만 가능한 것첨 보도되는 것을 누구나 목격했을 것이다. 그 결과, 'ADHD'는 단순히 증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아동'이라는 상표(label)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우을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도 단순히 증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자살자', '잠재적 범죄자'라는 상표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극단적 입장 B는 사회구성론자, 후기 사회구조주의자, 그리고 환경적 요인을 더욱 중시하는 심리학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실례로 그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은 1920-30년대 대 공황 시기 범죄가 증가한 것은 사회, 정치, 경제 등 요인들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들 수 있다. B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A의 연구 방법이 타당하지 않거나, 타당하더라도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의 인과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제약회사와 특정 연구 집단의 결탁을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최근 우울증이 범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원인임을 밝혔다고 주목받은 논문이 있다. 


Fazel S, Wolf A, Chang Z, Larsson H, Goodwin GM, Lichtenstein P. (2015) Depression and violence: a Swedish population study. The Lancet Psychiatry, Volume 2, Issue 3, March 2015, Pages 224-232.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은 스웨덴 국가등록부를 사용하여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남성 3.7%, 여성 0.5%가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 수치는 일반인에 비해 3배이다. 따라서 우울증이 범죄 행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논문이 나오자마자 많은 비판 논문들이 쏟아졌다. 연구 결과가 스웨된에 국한되엇다는 것, 범죄 행위 시점에서 관련 인물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증가가 없다는 점, 범죄 행위를 유발시킨 라이프사이클 요인들을 무시했다는 점들을 들어 위 논문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실례로 다음 비판적 리뷰를 참조하라.


Depression to blame for violent crime?

https://www.nationalelfservice.net/mental-health/depression/depression-to-blame-for-violent-crime-the-curse-of-the-headline-writers/


우울증은 잔인함 범죄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위 물음을 놓고 대립하는 두 입장이 있지만, 어느 입장이 맞는지를 정확히 규명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당신이 법 제도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면, 두 입장을 고려한 입장을 낼 수밖에 없다. 


(*) 범죄 행위와 연관시킬 수 있는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증세가 뚜렷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증세를 사법적 판단에서 고려할 수 없다.


(*)은 심신미약자나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감면해 주는 현행 국내법 조항의 기준이다. (*)은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을 다룰 때 법적 판단이 심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판단을 고려하되 그 판단과 동일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만 가지고는 법의 '처벌적 정의' 기능을 실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은 남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잔인한 범죄자를 보호하려고 가족이나 변호사는 그의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경력을 법원에 제출한다. 판사나 검사가 그 증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특정 의사의 의견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이 반문은 스웨덴 <밀레니엄 1-3>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 1-3> 해석 생략)


최근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다. 그 공분의 원인은 우울증과 범죄의 연관성을 놓고 벌어지는 학적 분쟁과는 거의 무관하다. (*)의 남용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경력을 들어 범죄자를 풀어주거나 감형시켜 준 사례가 많은데, 대중은 그 범죄자의 행위와 그러한 경력을 연관시키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중의 공분에 맞서 법리 해석이나 의료 윤리를 들어 판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컬럼이 뒤따르곤 한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그러한 컬럼에 설득당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이 범죄의 잔인성에만 주목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의 남용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법의 처벌적 정의 기능도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식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의 구체적 실행 장치들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한 실행 장치로 다음을 들 수 있다.


(**) 누가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한 행위를 신고받은 경우, 경찰관은 그 행위의 심각성을 고려해 그를 최소 24시간 격리시킨다. 그를 풀어 주는 경우, 이후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경고해야 한다. 만약 그를 즉시 풀어주는 경우에도 이후 가중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경고해야 한다.


우울증과 범죄 행위의 연관성은 현대 과학으로 아직 규명할 수 없는 상태이다. 더욱이 법제가 도입부에서 언급한 관점 (1)-(4)에 일반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한,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둘러싼 논란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없다. 이 점은 이 글의 전반부를 정확히 이해한 사람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와 같은 실행 장치도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1)-(4)의 관점에 근거한 법 제도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 그렇게 바꿀 수 있는 이론도 부재한 상태이다. (1)-(4)의 관점을 유지한 상태에서 (*)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실행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강서구 PC방 사건의 범죄자는 바로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하지 않았다. 경찰이 와 범죄자 형제를 PC방에서 끌고 나와 바로 풀어주었고, 이후 형제는 PC방 바깥에서 기다렸다고 일종의 복수극을 벌인 것이다. 당연히 그 복수극은 계산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범죄자 측에서는 그의 우울증을 살인 행위와 연관시키려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이 현 상태에서 바로 검찰로 넘어가게 되면, 이후 그의 우울증 증세 심각성 정도가 판결의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판결에서 특정 의사 의견서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 결과, 범죄에 영향을 미쳤던 다른 요인들은 평가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 따라서 (**)와 같은 구체적 실행 장치가 덧붙여져도 (*)은 개선되어야 한다.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가? 여러가지 답이 가능할 텐데, 지금 당장 생간한 것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 범죄 행위와 연관시킬 수 있는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증세가 뚜렷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증세를 사법적 판단에서 고려할 수 없다. 특히 범죄 행위에 사전 경고나 복수 등 사전 계획이 개입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증세를 범죄 행위의 직접적 원인으로 간주할 수 없다. 또한 아동이나 심신미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범죄자가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경력을 갖고 있더라도 범죄의 심각성 정도를 고려해 그 경력을 양형 판단에서 배제한다.


(*)'담긴 나의 동기는 단순하다. 우울증과 범죄의 연관성은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법의 처벌적 정의 기능을 수호하려면, 불확실한 요인들을 양형에 너무 많이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허용하는 경우, 관련 규정이 남용될 소지가 커져 법의 처벌적 정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분배적 정의로만 정의사회(?)가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정의는 분배적 정의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멍청한 인간, 실례로 존 롤스 같은 인간도 있지만,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법의 기능은 처벌적 정의을 우선시해야 한다. 분배적 정의가 약한 상태에서도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되고 싶은 마음'으로 집단 결속력이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처벌적 정의가 깨진 자본주의 사회는 그러한 결속력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누구나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

왜 우리나라는 사기죄에 대한 평균 양형이 다른 OECD 국가보다 턱없이 약할까?


답할 때 고려해야 할 점: 경제사범, 금융마피아, 후진적 금융시스템, 정치꾼들의 보험, 정경유착,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