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3. 귀납과 임의적 확장 가능성

착한왕 이상하 2019. 1. 25. 16:51

열거적 귀납에 대한 밀의 입장을 좀 더 분석해 보자. 열거적 귀납은 유한개의 관찰 사실들이라는 특수한 것에서 좀 더 많은 양의 특수한 것으로 계속 이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을 함축한다. 밀에게 모든은 그러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을 숨기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의 한계로 무한의 양을 가정할 수 있다. 밀의 시대에는 가산 무한과 불가산 무한을 구분하는 현대적 집합론이 없었기 때문에, 밀은 아마도 그러한 한계로 가정 가능한 무한을 가산 무한, 즉 자연수들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 가능한 무한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인구의 수는 자연수만큼이다. 지금까지 논의에 따를 때, 무한 양의 보편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의 추론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추론도 5명의 사람들 중 3명의 사람은 그 5명 전체의 일부라는 방식의 추론을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다음 그림에 의해 뒷받침 가능해 보인다.

     

 

 

위 그림에서 원을 점선으로 처리한 이유는 그것이 관찰 사실들로부터 임의적으로 확장 가능하다는 밀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한 것이다. 그 확장 가능성의 한계를 무한개로 잡아도 원의 크기 관계만으로도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죽고 a도 사람이다라는 전제들에서 ‘a도 죽는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렇게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은 유한개의 양에서 유한개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이를 인정해도, 밀은 실질적 추론의 본질을 특수한 것에 국한시키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밀의 그 입장을 정당화하려면, 다음이 필요하다.

 

‘P가 참이다’, ‘P를 긍정하자’, ‘P를 주장하자등은 ‘P는 주장하기 위한 경험적 증거를 갖고 있다를 뜻한다. 따라서 ‘P는 참 또는 거짓이다라는 것은 ‘P는 경험적 증거 확보 유무에 의해 참 거짓 결정 가능하다를 뜻한다.

 

위 조건을 밀이 명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질적 추론을 특수한 것에 국한시키려면, 위 조건이 필요하며, 이 점은 이어지는 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제 밀에 따라 인간 경험은 무한의 양을 다룰 수 없다고 하자. 이때 a가 지금가지 관찰된 사람들에 속하는지를 따져야 하며, 이는 다음 그림에 함축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 점선으로 처리되지 않은 원은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을 뜻한다. 그 수는 당연히 유한개이다. ‘a-또는-a’‘a는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에 속하거나 아니다를 뜻한다. a가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에 속하는 경우, a가 죽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당연성을 추론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 경우 1]에 따라 표면적 추론으로 취급할 수 있다. a가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 경우, ‘a도 죽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에서 추론된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a의 관찰을 통해 a가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에 속하지 않음을 안다면, 결론 ‘a도 죽는다는 지금까지 관찰된 사람들에서 일반화된 사람의 반경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귀납적 기반이 된다. 경험의 유한성을 인정한다면, 무한한 양의 보편적인 것을 함축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밀에게는 논증의 전제부에 들어가도 추론에서 실질적 기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모든 사람을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밀에게 모든은 추론에서 실질적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귀납에 의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만약 무한한 양과 관련된 모든의 보편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의 추론을 허용한다면, 밀에게 그것은 실질적 추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결론들의 목차를 늘려 주는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이제 다음 물음을 던져 보자.

 

밀에게 무모순율과 배중률도 열거적 귀납에 근거해 얻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모순율과 배중률에 근거한 연역 체계도 밀에게는 궁극적으로는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참 거짓이라는 진치치가 단순히 진술의 내용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적 증거 확보 유무에 의해 결정되는 것 혹은 수반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진술들의 수가 잠재적으로 무한개로 늘어날 수 있다면, ‘모든 진술 P에 대해, P는 참 아니면 거짓이다라는 배중률은 경험적으로 참 거짓을 따질 수 없다. 경험의 유한성 때문에, 그러한 모든 진술을 조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밀은 배중률을 추론 규칙이라고 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무모순율을 추론 규칙이라고 한 것일까?

 

밀에게 무모순율과 배중률 역시 실질적 추론 규칙이 아니다. 그것들 역시 경험적 판단에 근거해 참 아니면 거짓인 진술들의 수를 임의적으로 늘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추론 규칙으로 허용하는 경우, 그것들의 실질적 역할은 경험적 검증 대상이 되는 결론들의 목차를 늘려 주는 것이다. 현대 형식 논리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의아해 할 것이다. 현대 형식 논리학에서는 연역과 귀납의 구분은 명확하며, 또 추론은 대상들의 양과 무관한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처럼 추론을 무한한 양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경계하는 학파가 있다. 브라우버르-하이팅-콜모고로프 BHK(Brouwer-Heyting-Kolmogorov) 직관주의(intuitionism) 논리 체계에 근거한 구성주의(constructivism) 학파이다. 밀과 구성주의자들 모두 수학의 플라톤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밀에게 수학적 존재들은 경험에 의존하여 구성되는 것인 반면, 구성자들에게 수학적 존재들은 순수한 심적 구성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추론을 무한한 양으로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밀의 동기가 구성주의자들의 동기와 다름을 암시한다. 그러한 동기의 차이와 맞물린 철학적 문제를 분명히 하려고 먼저 직관주의 혹은 구성주의의 일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