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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 비기닝’,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 또는 종말

착한왕 이상하 2009. 11. 24. 08:12

‘스타 트렉, 비기닝’(Star Trek, the Beginning),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 또는 종말

 

‘스타 트렉(Star Trek)’, 이 TV 시리즈의 팬이든 아니든 그 이름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런던 대영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장소로 스타 트렉 박물관이 회자될 정도이다. 스타 트렉에 열광적인 팬, 곧 ‘트렉키’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이 점은 티브이 시리즈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흥행에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티브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강한 만큼, 그 이미지를 한 편의 영화로 녹여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된 ‘스타 트렉, 비기닝’은 영화로 상영된 스타 트렉 시리즈로서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스타 트렉, 비기닝’은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종말’을 뜻할 수 있다. 그것은 스타 트렉 시리즈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파괴는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을 의미할 수 있지만, ‘스타 트렉, 비기닝’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스타 트렉은 미국의 극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진 로던베리(Gene Roddenberry, 1921~1991)에 의해 1964년에 창안되었다. 진 로던베리는 그 스토리 구성의 모델을 걸리버 여행기로 삼았다. 피상적으로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카우보이들의 일대기 같지만, 시리즈의 각 에피소드에는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집단, 그리고 집단 대 집단의 갈등, 그 원인, 해결 방안, 그리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도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스타 트렉 시리즈들은 일종의 ‘집단 차원의 윤리 담론’에 비교될 수 있다.

 

스타 트렉 시리즈는 크게 다음의 족보를 갖고 있다.

 

스타 트렉 ST(Star Trek, 1966~1969): 오리지널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한 캡틴 커크, 불칸 종족의 미스터 스폭, 엔지니어 스코티, 의사 맥코이 등이 등장한다. 각 인물은 특정 성격 유형을 나타내며, 이들의 조합 방식은 문제 해결의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스타 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TNG(Star Trek, the Next Generation, 1987~1994): X-맨에서 교수로 등장한 배우 패트릭 스티워트가 피카 선장 역할을 맞아 전편의 이미지를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스타 트렉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인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전편에 비해 훨씬 더 철학적이다. 실례로 집단 간 도덕 및 법체계의 차이에 기인하는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여러 에피소드는 이후 SF 시리즈나 영화의 소재 구성에 결정적 자극제가 되었다.

 

 

 

 

스타 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 DS9(Star Trek, Deep Space Nine, 1993~1999):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이미지를 이어받고 있지만, 그 활동 무대는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한 광활한 우주가 아니라 우주정거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어떻게 집단 형성과 유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밖에 다른 스타 트렉, 보야져(Star Trek, Voyager, 1995~2001), 스타 트렉, 엔터프라이즈(Star Trek, Enterprise)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전 편을 거의 다 본 시리즈는 ST, TNG, DS9이다. 승무원 간의 갈등을 전쟁 양상으로 비화시킨 보야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엔터프라이즈는 보지 못했다. ST, TNG, DS9만을 교차 비교할 때 스타 트렉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1. 스타 트렉의 화두는 앞서 암시했듯이 갈등과 공조이며, 그 기반은 인간사의 문제와 상황에 합당한 문제 해결 과정(PSP: Problem Solving Process)이다.

 

2. 갈등의 원인과 집단 간 공조 방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스타 트렉은 ‘집단 차원의 윤리 담론’의 거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으며, 그 담론에는 탐정 소설의 양식이 개입되어 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상황적 요인을 찾고, 해결을 위한 단서에 근거하여 문제는 집단적 차원에서 해결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의 상황을 그대로 나두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실례로 TNG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보자. 어느 미개한 종족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다. 독재자를 둘러싼 전쟁에 엔터프라이즈호는 개입을 해야 하는가? 캡틴 피카의 최종 결론은 그들의 역사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결론은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사에 참견하는 신(神)의 이해 방식이 아니라, 지구를 일종의 ‘도덕 훈련장’으로 만든 신에 대한 중세의 이해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구를 도덕 훈련장으로 만든 신은 지구의 역사에 자율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렇듯, 스타 트렉의 에피소드들은 서양 사상사에서 논쟁거리가 된 주제들을 SF라는 장르를 빌려 녹여냈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3. 현대 과학의 이론들은 문제가 집단적 차원에서 해결되어 가는 과정에 드러나게 된다. 물론 빛 속도 이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즉 워프(warp)가 가능한 종족들의 에피소드인 까닭에, 현대 과학 이론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양자 역학의 다세계 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 등이 문제 해결 과정에 등장한다.

 

4. 집단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스타 트렉의 유머’이다. 몸집이나 뒤떨어진 행동으로 시청자를 웃기는 일은 없다. 역시 TNG의 에피소드 하나를 실례로 드는 것이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고 의식을 갖고 있는 안드로인 미스터 데이터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 데이터는 인간의 유머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전자뇌를 수정하였다. 그 결과, 그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사건을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스터 데이터는 보는 사람마다 과거에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 회상되어 웃기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데이터는 인간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를 자신의 뇌에서 제거하게 된다.

 

일명 블록버스터로 분류되는 영화 ‘스타 트렉, 비기닝’에서는 이러한 스타 트렉의 일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제작진들은 새로운 시작을 강조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트렉키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운 스타 트렉의 이미지를 창줄했는가? 아니다.

 

스타 트렉의 교훈인 집단적 차원의 문제 해결 과정은 뛰어난 커크라는 일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단지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인 영웅 창출에 불과하다. 스타 트렉의 집단 간 혹은 종족 간 갈등, 실례로 지구 종족 대 불칸 종족 혹은 불칸 종족 대 라뮬란 종족의 갈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갈등은 그저 자기 종족에 대한 애착감이나 선악의 구도 속에 반영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이 아니다. 더욱이 그러한 갈등 상황에서 고민해볼만한 것도 없다. ‘스타 트렉, 비기닝’을 통해 불과 몇 분 간이라도 도덕 훈련이라는 것을 해볼 기회도 없다. 또 블랙홀을 만들거나 워프 가속 상태에서의 빔이 가능하게 하도록 해주는 상황은 어떤 과학 이론의 해석에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시나리오를 이어가기 위해 짜맞춰진 것에 불과하다. ‘스타 트렉, 비기닝’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타 트렉다운 유머가 없다는 것이다.

 

커크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장면은 왠지 모르게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젊은 커크가 맥코이에게 주사를 맞아 손가락이 부운 상태에서 한 바탕 난리를 치는 장면은 짐 캘리가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또 엔지니어인 미스터 스코티를 따라다니는 털복숭이 외계인이 등장하는 장면은 왠지 스타 워즈를 모방한 느낌을 준다. 각 해당 장면은 언급된 영화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을 보이지만, 스타 트렉의 팬인 나에게는 아니었다. ‘스타 트렉, 비기닝’ 제작진들이 새로운 스토리라고 강조했지만, 그들은 승무원들의 관계 만큼은 스타 트렉 오리지널을 모방했다. 특히 어떤 도덕 원리에 투철하고 감성적인 의사 맥코이와 논리적이면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폭의 관계가 그렇다. 하지만 그 모방도 어색하기만 했다. 아마도 원조 스폭인 레오나드 니오미가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스타 트렉, 비기닝’은 고전을 면치 못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트렉키는 아니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 지역의 사람들 대부분은 누구나 한 번은 스타 트렉을 봤고, 스폭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적이 있다. 결국, ‘스트 트렉, 비기닝’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전략에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양식을 더한 것밖에 없다. 이것이 오히려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이 성공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 트렉의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스타 트렉, 더 비깅’,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인가? 아니면 종말인가? 나의 결론은 종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