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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이구(三眼二口) 기형 돼지: 유전자, 기적과 저주

착한왕 이상하 2009. 11. 24. 08:00

 

 

최근 중국 농가에서 눈 세 개와 입 두 개가 달린 기형 돼지가 태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그것의 원인으로 유전자 조작이나 오염물질의 영향을 떠올릴 수 있다. 대중들의 인식에 유전자와 오염 물질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 답하기 위해 먼저 과학의 ‘부동 개념(浮動槪念 floating concept)’이라는 것을 살펴보자.

 

유전자란 단어는 신체적 특징, 예를 들어 팔 다리의 길이나 눈과 코의 크기나 색깔 또는 갯수와 같은 표현형의 발생과 관련된 염색체의 특정 부분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그 원인이 불분명한 여러 유전적 현상을 설명해주거나 가설을 세우는 데 일종의 은유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팔에 대응되는 염색체의 부분이 정확하게 어느 것인지 그 경계에 대해서 과학자 모두가 100% 동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대신 적어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팔에 대응되는 염색체 부분들로서의 유전자들의 경계는 모호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현상을 설명하고 가설을 세우는 데는 만족스럽게 사용될 수도 있는 개념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부동 개념’이라 부른다.

 

오염 물질 또한 부동 개념으로 분류될 수 있는 측면을 갖고 있다. 특정 화합물이 이러이러한 오염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대한 합의는 쉽지만, 오염의 경계 범위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오염 물질의 분류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염 물질이라는 개념은 그 원인이 불분명한 여러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동개념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전자라는 개념이 대중들에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것의 이 개념의 은유적 역할은 유전적 현상이라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 삼안이구(三眼二口) 기형 돼지의 출산에 대한 대중의 즉각적 반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중의 한 부류는 오염된 사료가 기형의 원인이라면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려하거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강조하면서 오염된 사료가 돌연변이의 원인이라면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려는 입장을 지지한다. 반면에 유전자 돌연변이를 강조하면서 기형돼지 출산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부각시키려는 부류도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유전자나 오염물질 개념이 단순히 자연 현상이나 과학적 설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치 판단의 은유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플로팅 개념이 이렇게 확장된 것을 ‘대중적 은유(popular metaphor)’라 하자.

 

유전자나 오염물질이 대중적 은유로 사용될 때 그 적용 범위는 과학적 현상이 아닌 인간사에 대한 가치 판단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에, 대중적 은유가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방식 자체는 재현과 검증가능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대중적 은유가 사용되는 상황, 즉 대중적 은유를 사용하는 집단의 성격과 목적 등을 먼저 살펴보지 않고 대중적 은유의 기능에 대해 비과학적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대중적 은유가 사용되는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적 지식의 결여에 의한 다수의 유비 오류가 발견된다. 기형 돼지 출산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형의 원인으로 환경오염을 유추하는 것도 일종의 유비 오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 은유가 사용되는 방식에 있어 유비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대중적 은유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분포된 지식의 편차와 심리적 반향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에, 목적 달성의 현명한 수단을 마련함에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선동이라는 전략도 무가치한 것으로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기형 돼지를 둘러싼 상반된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는 따지지 않겠다. 다만, 그 문제가 과학적 잣대, 곧 재현과 검증이 가능한 증거들에 근거한 평가 잣대만으로는 대답될 수 없음을 보이고 싶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것의 대립항으로 종교적인 것을 떠올리기 때문에, 기형 돼지를 둘러싼 대립 양상을 두 종교 혹은 종파 간의 갈등으로 해석해 보자. 이는 종교적인 것을 기독교나 불교의 교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이에게 지나친 논리적 비약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야말로 종교적인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기독교 교리를 중심으로 종교적인 것을 규정한다면, 무에서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신 개념을 포함하지 않은 유교(儒敎)는 결코 종교로 분류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이 답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질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종교적인 것을 규정하기 위해 비어즐리 부부가 만든 질문 목록의 일부이다.

 

•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주요 문제들은 무엇이고, 그 문제들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 인간 생활을 가치 있게 해주기 위해 가정되는 것들로서 인간이 아닌 것, 곧 신이나 우주와 같은 것의 성격은 무엇인가?

 

기형 돼지 출산에 대한 상반된 두 입장의 차이는 환경오염이 현재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임을 반영한다. 종교를 위 두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에 깔려있는 세계 이해방식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의 일종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두 입장의 차이는 두 종교가 어떤 사안을 놓고 서로 갈등하는 양상에 비교될 수 있다. 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 생활이 무가치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신이나 우주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하여 옹호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각 입장은 실제로는 과학의 경계를 넘어 크게 확장된 대중적 은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형 돼지 출산에 대한 상반된 두 입장의 차이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갈등은 아니더라도 종교적 갈등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것을 규정하기 위한 두 번째 질문을 다음과 같이 약화시킨다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 인간 생활을 가치 있는 것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은유의 성격은 무엇인가?

 

여기서 은유의 성격에 대한 세세한 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은유가 여러 이질적인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해주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정도의 답이면 족하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나 환경오염이 대중적 은유로 기능할 때 기형 돼지 출산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결코 과학적 잣대로만 중재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그렇게 과학적 잣대로만 중재 가능하다면, 인간 생활은 과학만으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타당한 것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과학을 또다른 이념으로 만들어 세계 이해의 기준을 획일화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과학 자체는 과학을 이념으로 삼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과학은 현실 속에서 직장을 잃은 이가 점쟁이를 방문하는 것을 만류하지도 않는다. 점괘(占卦)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점보는 관습의 미덕을 하루아침에 사장시킬 수는 없다. 점쟁이의 말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을 과학의 이름을 빌려 타이를 수는 있으나, 이러한 사실이 점보는 관습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결론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사실 기형 출산을 둘러싼 논쟁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경험적 구분에 근거한 것이고, 기형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가치 판단의 차이는 태곳적부터 지구 곳곳에 널리 있어왔다. 기형 돼지는 13세기 유럽에서도 태어난 적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이 인간이 아닌 신(God)을 위해 존재한다는 세계 이해 방식을 바탕으로 기형 출산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신의 충만성(充滿性)을 보여주는 일종의 기적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기형 출산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강조하여 기형 돼지 출산을 자연 현상으로 보는 입장에 비교될 수 있다. 이번에는 종말론이 득세했던 종교 개혁기의 북부 유럽 지역에서 태어났던 기형 돼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자연이 더 이상 신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 기형 돼지 출산은 질서에서 혼란으로 치닫는 종말을 암시하는 신의 저주로 이해되었다. 이는 기형 돼지 출산을 바탕으로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비교될 수 있다.

 

과거에는 기형 돼지 출산을 놓고 어느 한 입장이 지배적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상반된 두 입장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상황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는 가치체계나 세계 이해방식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다. 과학은 인간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특정 종교의 교리가 전제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의 발달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과학만으로 인간 생활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으며 다른 세계 이해방식은 제거해야 한다는 독단적 사고방식은 가치체계의 다원화 과정에 기여한 과학의 핵심기능을 망각한 것인 동시에, 과학을 과거 한 시기를 지배했던 종교의 대체물로 여긴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