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베살리우스의 성지순례 미스테리

착한왕 이상하 2020. 10. 14. 14:32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 Vesalius, 1514-1564)는 갈레노스 해부학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근대 해부학을 연 인물로 회자된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교수 시절 출간한 <파브리카(De humani corpois fabrica libri septem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베살리우스는 <파브리카> 2판에서 본격적으로 갈레노스의 권위에 도전했다. 하지만 갈레노스의 권위는 쉽게 스그러들지 않았다. 온갖 비난과 음모에 시달린 베살리우스는 파도바 대학을 떠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주치의가 되었다. 카를 5세의 아들인 스페인 황제 펠리페 2세의 주치의도 그였다.

 

베살리우스는 1564 3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게 된다. 4월 말 베네치아에 도착한 그는 5월 초 키프로스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공석으로 비어 있던 파도바 대학 해부학과 자리를 맡아달라는 편지를 받고 1564 9월 베네치아로 향했다. 그리고 당시 베네치아에 속했던 그리스의 자킨토스 섬에서 사망했다. 이야기를 이어가지 전에 베살리우스의 사망을 둘러싼 낭설 하나를 지적하자. 그 낭설에 따르면, 베살리우스가 탄 배가 난파하여 자킨토스 섬에 표류했고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원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배가 난파당할 때 베살리우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위키 등에 떠도는 이러한 설은 낭설이다.

 

글 보기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115390071

 

베살리우스의 성지순례 미스테리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 Vesalius, 1514-1564)는 갈레노스 해부학의 권위를 약화...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