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관계 놀이

착한왕 이상하 2010. 3. 19. 21:43

*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때로는 아이들의 지적 능력에 놀라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 교과서 및 교과 과정에 욕이 나올 때도 많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인지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분류 체계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추상화 능력이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기호 조작에 근거한 표상 구성의 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과 과정 및 교재를 보면 한 숨이 나온다. 중학생들은 바로 집합론적 벤다이어그램을 배우고, 조금 있으면 변수 사용법을 배우게 된다. 반면 초등학교 6학년 교재를 보면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고훈련 과정이 완전히 빠져 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 당장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타난다.

 

'유사한 것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보기' 수업에서는 아이들은 놀라운 문제 해결력을 보여주었다. 단계적 훈련을 통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나 어른들도 틀리기 쉬운 문제도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추상화 과정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나도 장애물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반사성, 대칭성, 이행성과 같은 조건을 쉽게 알려주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조건들을 정의해주고 정의에 따라 문제를 풀어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 대한 용어조차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실제 현상을 바탕으로 관계성을 추상화해낼 수 있도록 교수법이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상화 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중학교에서부터 슬슬 등장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부터 중학교 1학년 교과 과정에서 아이들의 추상화 능력을 자극시켜주는 교수법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실제 현상을 바탕으로 관계성을 추상화해내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국어 2를 보면 현 수능의 비문학 문제와 많이 닮아 있다. 단락별 요약, 각 단락의 기능, 그리고 단락들의 유기적 결합에 의한 전체 글의 구성! 그런데 이를 만화라는 기법을 빌려 구체적으로 나타내주고, 아이들이 써보는 방식이 고작이다. 이건 아니올시다! 이미 언어 습득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로 주어진 내용을 시각적 표상으로 전환해보고, 또 그 역의 과정을 스스로 추적해 보는 것이다. 결코 만화를 통해 아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따위가 초등학교 6학년 교재를 구성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현 교과 과정은 아이들의 손을 쉬게 만든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손은 단순히 두뇌의 명령에만 따라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다. 그 어떤 아이디어도 손 동작 없이는 구체적 표상으로 탄생할 수 없다. 따라서 아이들의 추상화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사고 과정에서 끊임 없이 손을 사용하도록 교재가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어린이 추론학교 시즌 1: 생각하는 아이]가 끝나면 [손으로 생각하기]라는 과정을 위한 가교재 하나를 만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볼 예정이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초등학교 2학년에서 4학년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질 가교재이다.)

 

지난 주에 관계를 수업의 일부로 다루었다.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계 부분의 난이도를 약화시키는 대신 새로운 방식의 교수법을 설계해 보았다. 이 방법을 이 번주에 써보고,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다른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관계가 널려 있습니다. 좌우, 위아래, 앞뒤와 같은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나의 몸을 항상 따라다닙니다. 또 사람들 사이에도 많은 관계가 발견됩니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도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아빠와 같은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도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 보기로 자연수들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을 봅시다.

 

 

관계는 대상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형제 관계를 만들어 보려면, 위 그림의 ‘관계 영역’에 ‘형제 관계’를 넣어야 합니다. 이때 ‘대상 X 영역’과 ‘대상 Y 영역’에 아무 것이나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만약 ‘대상 X 영역’과 ‘대상 Y 영역’에 수를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1과 3이 형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형제 관계는 수들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관계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정해지면, ‘대상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져 봐야 합니다.

 

 

[물음 1] 다음 그림에서 ‘대상 X 영역’과 ‘대상 영역 Y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다면?

 

 

<보기> 

 

(가) 영이의 몸무게 30kg과 철이의 몸무게 30kg

(나) 3과 2+1

(다) 수정이의 엄마와 수정이의 아빠

 

 

① (가) ② (나) ③ (다) ④ (가), (나) ⑤ (나), (다)

 

 

[물음 2] ‘3=2+1’을 그림으로 나타내 본다면?

 

 

 

 

 

두 자연수 3과 2+1을 생각해 봅시다. 이 두 자연수 사이에 성립하는 같음의 관계는 ‘등가 관계’로 불립니다. ‘3=2+1’은 참입니다. 이때 그 역인 ‘2+1=3’도 참입니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그림에서 양방향성 화살표 ‘↔’는 왼쪽 관계가 성립하면 오른쪽 관계가 성립하고, 또 이에 대한 역도 성립함을 뜻합니다. 위 그림에서 자연수와 ‘=’를 제거해 봅시다. 이때 다음의 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위 그림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물음 3] <보기> 중 다음 그림을 만족하는 것을 모두 고른다면?

 

 

<보기>

 

대상 X 영역

대상 Y 영역

관계 영역

(가)

영이의 아빠

영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

(나)

5

3

대소 관계 ‘>’

(다)

나의 아빠

나의 엄마

부부 관계

(라)

256

200+56

=

 

① (가), (나) ② (가), (다) ③ (나), (다) ④ (나), (라) ⑤ (다), (라)

 

 

[물음 4]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부자 관계는 [물음 3]의 그림을 만족하지 않는다. 만약 부자 관계가 [물음 3]의 관계를 만족한다고 가정하면,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그 황당한 일’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세 개의 자연수 3, 2+1, 1+1+1을 생각해 봅시다. 3과 2+1 사이에는 ‘3=2+1’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그리고 2+1과 1+1+1 사이에는 ‘2+1=1+1+1’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이때 ‘3=1+1+1’도 성립합니다. 이를 근거를 가진 확실한 주장으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3=2+1

• 2+1=1+1+1

• 3=1+1+1

 

확실한 근거를 가진 주장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예외 없이 참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위 주장을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겠네요.

 

• ‘3=2+1’ 그리고 ‘2+1=1+1+1’

• 3=1+1+1

 

위 주장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그림에서 자연수와 ‘=’를 모두 지워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위 그림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물음 5] <보기> 중 다음 그림을 만족하는 것을 모두 고른다면?

 

 

<보기>

 

대상 X 영역

대상 Y 영역

대상 Z 영역

관계 영역

(가)

수진의 아빠

수진의 엄마

형석의 엄마

부부 관계

(나)

5

4

3

대소 관계 ‘>’

(다)

수완의 아빠

수완

수완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라)

256

200+56

56

크거나 같음의 관계 ‘≥’

 

① (가), (나) ② (가), (다) ③ (나), (다) ④ (나), (라) ⑤ (다), (라)

 

 

[물음 6] <보기>의 상황에서 영이와 수철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보기>

 

영이와 가장 친한 친구는 머털입니다. 둘의 사이는 너무나 좋아, 다른 아이들의 질투를 받을 정도입니다. 어느 날 도시에서 수철이라는 학생이 영이와 머털의 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머털은 수철과 친해졌습니다. 머털과 수철이 친해지자, 영이는 수철에게 질투감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