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세속화와 의무적인 종교 교육

착한왕 이상하 2010. 5. 26. 01:24

세속화와 의무적인 종교 교육

 

 

 

19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세속화 과정의 실제 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가 구조적으로 분화됨으로써 종교도 사회 구성의 기능 단위가 되어버린 양상을 뜻한다.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두 가지 양상을 함축한다.

 

• 그 하나는 사회의 기능적 분화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회의 계층 분화이다.

 

용어 ‘profession’은 19세기에 이르러 종교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전문 직종에 종사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 만큼 삶은 각종 직업과 제도에 의해 분화되게 되었고, 개인의 역할은 더 이상 종교적 규범에 의해 평가되지 않게 되었다. 사회의 기능적 분화는 사회의 계층 분화와 맞물려 진행된다. 유사한 직종, 취미, 역할에 따른 계층 분화는 가치 체계의 다원화를 수반한다. 계층 분화는 관심사의 다양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이며, 특정 관심사는 특정 계층에 적합한 가치 체계와 생활양식(mode of life) 속에서 그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는 단지 특정 계층을 거느린 기능 단위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종교적 교리에 근거한 사회 설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사회 설계에서 종교의 역할도 무시될 수 없다.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 대한 폭력

 

 

세속화 과정의 성격을 파악한다면, 세속화 관점이 사회에서 종교의 긍정적 기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모든 무종교인이 종교적 전통 속에서 살아남은 미덕에 부정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인 것이다. 세속화의 실제 양상을 종교 사장론으로 뒤덮어 현실 문제를 세속화의 부작용으로 진단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만이 사회 기능의 궁극적 토대가 되어야한다는 야심을 감춘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야심은 교회 재단 학교의 의무적인 종교 교육 행태 속에 반영되고 있다.

 

종교 현상에 관심을 갖지만 그 어떤 종교적 교리에도 종속되길 거부하는 무종교인은 의무적인 종교 교육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교회가 사후 세계를 빙자해 사기를 친다는 식의 반응은 종교 사장론을 주장하는 자나 하는 짓이다. 개인의 권리나 그것과 혼합된 정교 분리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생각보다 큰 실속이 없다. 살펴봤듯이, 그렇게 강조하는 것은 역으로 의무적인 종교 교육 옹호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천부 인권에 바탕을 둔 개인의 권리 개념이 서양에서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기 힘들다. 또 인간이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전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관점은 얼마든지 의무적인 종교 교육 옹호론에 사용될 수 있다. 물론 그 관점에 근거한 의무적인 종교 교육 옹호론을 모든 지역으로 확장시킬 수는 없다. 기독교라는 단일 종교가 사회의 도덕적 틀로 기능해온 지역은 ‘서구’라는 것에 한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속화 과정의 성격을 파악할 때 의무적인 종교 교육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반대가 가능해진다.

 

• 의무적인 종교 교육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순기능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사회에서 개인은 직종 및 계층 사이를 넘나들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양식은 하나가 아닌 복수의 가치 체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계층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무종교인 계층도 그 중 하나이다. 무종교인들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시킬 방안을 고려할 때 무시될 수 없는 계층인 것이다. 각 계층들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악으로 평가되지 않는 각 ‘계층의 고유성’은 제도적인 보호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한 보호는 단지 물질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계층이 지닌 고유한 관심을 존중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으며, 사회의 원활한 유지와 화합을 지향한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의무적인 종교 교육에 제동을 거는 것은 정교 분리의 원칙에 기인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계층의 관심사를 종교적 교리로 짓누르는 공격 행위에 제동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종교 교육도 제도적 장치 중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 재단의 어느 대학이 종교 교육을 의무화한다면, 이것은 재단 이사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계층의 관심사를 억누르는 짓이다. 의무적인 종교 교육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소양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는 다양한 가치 체계의 모든 미덕들이 기독교의 교리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진단하려는 동기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다른 기능 단위와 상호 관계를 맺는 기독교’가 아니라 ‘사회의 기독교화’를 외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 대상으로 삼을 때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 한 방향은 ‘다양한 가치 체계의 긍정적 기능 방식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한다면, 다른 방향은 ‘어떤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후자의 방향은 다른 가치 체계의 긍정적 기능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현실 전체에 대한 부정론에 불과하다.

 

사회의 계층 분화는 가치 체계의 다원화를 수반하고, 가치 체계의 다원화는 다양한 생활양식을 제한하는 여러 미덕들을 산출해온 과정의 결과이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의무적인 종교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그러한 미덕들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관점, 곧 유치한 ‘도덕의 종교 기원론’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의무적인 종교 교육 옹호는 결국 기독교가 사회의 유일한 도덕적 토대라는 관점에 근거한 것에 불과하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 관점을 관철하는 행위는 다른 계층의 가치 체계에 대한 폭력에 해당한다.

 

 

 

세속화된 사회의 약점

 

 

유럽과는 다른 과정을 밟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세속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특징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관찰되고, 무종교인 계층도 높은 비중으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 대한 폭력 행위인 의무적인 종교 교육이 버젓이 자행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속화의 과정은 일부 지식인들이 묘사한 것처럼 어떤 목적을 향해 달리는 발달 과정이 아니다. 사회가 세속화되는 방식도 일률적일 수 없다. 세속화된 사회가 갖는 약점은 정치 신학자들이 떠드는 것처럼 ‘사회의 탈도덕화’가 아니다. 그것은 계층 분화가 정치 세력과 특정 계층의 유착을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속력을 과시하는 특정 종교 계층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만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정치 집단에게는 유혹적인 대상이 된다.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된 사회는 이상론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정치권력과 특정 종교 계층의 끈끈한 유착, 곧 정교 유착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오히려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세속화 관점이 만약 정교 분리 원칙을 반드시 전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 세속화된 사회일수록 계층 분화가 일어나는 까닭에, 정치적 세력은 특정 계층, 실례로 결속력이 강한 종교 계층과 결탁하려고 한다. 정교 분리 원칙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세속화 과정의 실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세속화 관점은 정교 분리 원칙을 전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언급된 상황은 역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세속화된 사회가 갖게 될 수도 있는 취약점을 보여줄 뿐이다. 높은 수준으로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정교 유착이 쉽게 형성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된 상태이다. 정교 유착을 가로 막는 장치의 목적은 정교 분리의 원칙이 아니라 계층 간 원활한 소통이다.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계층의 고유성을 지켜줄 때 그러한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정교 유착은 유럽 중세나 근대의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권력 집단은 특정 종교 계층이 아닌 다른 계층과도 거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 계층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동의하는 방식의 정교 유착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성공적일 수 없다. 성공적인 방식은 우회적이며, 간접적이다. 즉, 특정 종교 계층의 세력 확장 시도를 묵인해주는 방식이다. 종교 활동으로 발생한 이득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며, 지하철 잡상인은 내쫓으면서도 승객의 잠을 깨우는 설교 행위는 묵인한다. 의무적인 종교 교육은 성직자의 봉사 활동, 대학의 자율화라는 허울 좋은 구실 아래 묵인되고 있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구체적 권리 행사는 사회적 기능 단위들의 관계 및 계층 보호와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관심사를 특정 계층의 관점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다른 계층에 대한 폭력 행사인 것이다. 그런데 왜 지하철에서 가톨릭 교인의 설교를 들을 기회는 적은 것일까? 왜 가톨릭 재단의 여러 대학에서는 채플이 졸업을 위한 의무 학점으로 채택되어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은 가톨릭이 오래 전에 이 땅에 들어와 토착화(incarnation)되었다는 식으로는 충분히 대답되지 않는다. 앞서 던져진 물음들에 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땅의 개신교 여러 교파가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을 진단해 보고,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 원인을 추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