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
-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 -
리꾀르(P. Ricoeur, 1913~2005)에게 텍스트 해석은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역사적 담론’이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개인은 인격을 완성하고,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 담론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역사적 담론이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hermeneutic arc)’에 갇혀 버린다면, 실제 과거 역사는 ‘망각의 강’에 빠져도 그만이다.
1. 전통에 의한 해석학의 한계
역사 연구의 중요한 대상 중 하나는 과거의 기록들이다. 그러한 기록들로서 전기 및 사건 기록과 같은 텍스트를 들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과거 기록, 유적 등에서 나타나는 비정합적인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문제를 만들어내고, 기록의 재해석과 발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텍스트 해석은 역사학의 전체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 텍스트는 저자가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의 동기를 정확히 파악해낼 수 있을까? 해석학(hermeneutics)은 텍스트의 의미 체계를 다룸으로써 원저자보다 제 3자가 오히려 그 동기를 더 정확히 파악해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해석학은 인문학도 자연과학의 지식 체계만큼이나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야심찬 연구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은 텍스트의 부분이 전체 의미 체계에 의존적이고, 전체가 부분에 의존적이라는 관점을 뜻한다. 해석학적 순환에 따른 텍스트의 분석이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수반하려면, 텍스트의 의미 체계는 근본적으로 닫힌 체계로 취급되어야 한다. 텍스트 외적인 것들이 텍스트의 이해에 도움을 주더라도, 그것들은 텍스트의 의미 체계 자체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는 취급되지 않았다. 그렇게 취급된다면, 의미 해석이 텍스트의 정확한 이해를 수반할 수 있다는 낙천적인 관점은 포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구성되며, 언어는 텍스트의 의미 체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 어떤 텍스트의 의미 체계도 다른 텍스트에 대해 열려 있기 때문에, 해석학적 순환 역시 해석의 배경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해석의 배경 맥락은 문화적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텍스트의 중립적이고 객관적 이해는 불가능하다. 과거 텍스트에 담긴 실재성은 해석자를 지배하는 전통과 겹칠 수밖에 없다. 해석자는 해석의 배경 맥락인 전통과 단절될 수 없다는 것이다. 텍스트의 정확한 이해는 지향해야 할 목적일 뿐, 해석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해석자가 수용한 텍스트의 이해 방식이다. 그런데 그 어떤 해석자도 해석의 배경이 되는 맥락을 정확히 명시할 수 없다. 그 결과, 해석을 통해 얻어진 텍스트의 이해에서 텍스트를 쓴 저자의 의도만 딱 잘라내어 뽑아낼 수 없다. 또 해석에 개입된 문화적, 정치적 전통은 사람의 생활 방식을 규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해석자는 그러한 전통에 깔린 핵심 전제들이 ‘가정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따라서 해석의 맥락에서 텍스트가 수용된 방식만이 해석자가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라고 부르자.
-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 -
해석이 전통에 의존적이라면, 해석학은 현실 비판에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이것은 해석학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석학이 정치학이나 사회학과 협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반대로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입장에 따르면, 해석학은 단지 전통을 정당화해주는 보수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오로지 ‘합리적 비판 능력이 부가된 해석학의 입장’만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리꾀르의 해석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를 인정하는 입장’과 ‘이에 대한 비판’을 중재하려는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리꾀르에게 해석자는 텍스트를 수용만하는 존재가 아니다. 해석자는 ‘텍스트에 귀를 기울이는 충실한 청자’인 동시에 ‘텍스트 해석의 문화적 기반인 전통을 의심할 수 있는 화자’이기도 하다. 해석자의 이러한 두 역할은 해석의 과정에서 번갈아 나타난다. 해석자는 자신이 처한 전통에 근거해 텍스트의 내용을 수용하지만, 또 한편 전통을 텍스트에 투영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가면을 벗겨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례로 마르크스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사를 연구하면서 그 역사가 당대에 미친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종교의 주역할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열악한 노동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리꾀르에게 해석은 전통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전통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해석학적 아크’는 개인과 집단의 측면에서 역사적 의식을 생성한다. 해석자는 텍스트와의 담론을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해석자가 텍스트에 귀를 기울일 때 그는 그 텍스트를 가능하게 만든 과거의 전통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 전통 속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그러한 타자들은 ‘자기화’된다. 해석자가 과거 텍스트에 현실을 투영시킬 때 그는 ‘타자화’된다. 이러한 ‘타자의 자기화’와 ‘자신의 타자화’야말로 역사적 의식의 핵심이며, 역사적 의식은 담론 과정에서 얻어지는 해석자 자신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 -
리꾀르는 해석의 한계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기 전부터 ‘합리적 사고의 주체로서의 자아’ 개념을 부정했다. ‘체화된 자아’, 곧 ‘육체와 분리될 수 없는 자아’는 합리적 사고 속에서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심리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혹은 물리적 시간과 경험적 시간 사이의 긴장 관계’에 주목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자판을 칠 때 나는 분명히 그것에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 속에 자아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은 사건의 발생 순서, 곧 리꾀르가 ‘우주적 시간’이라고 부른 것과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주관적 시간’ 사이의 긴장 관계에 주목할 때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을 매개로 하여 이미 발생한 것들을 보고 있지만, 그것들은 경험의 측면에서는 현재로 파악된다. 경험적 시간은 우주적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만, 우주적 시간에 의해 환원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다. 리꾀르에게 인간 역사는 우주적 시간도 아니며, 경험적 시간에 의해 규정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 인간 역사는 타자와 자아의 상호의존적 관계없이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해석자는 텍스트와의 담론적 관계 속에서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의식하게 된다.
리꾀르가 생각하는 역사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해석이 문화적 전통에 중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텍스트에 담긴 저자의 동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단지 가능성으로만 여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과거 텍스트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한 때 역사학을 공부했지만 철학으로 전환한 리꾀르는 이러한 물음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에게 역사적 담론의 목적은 ‘미래의 희망을 담은 세계 이해’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 담론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리꾀르가 이렇게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
해석학적 아크 속에서 벌어지는 담론의 목적은 개인이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인식함으로써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격은 ‘시공간적 지표(spatio-temporal indexicality)’로 규정되는 ‘개인의 동일성(personal identity)’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인격과 관련된 자아는 텍스트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타자화’, ‘타자의 자기화’를 통해 의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담론 과정에서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결국 인격 완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황금률이 성립한다.
• 텍스트 해석의 담론 과정에서 자아를 알아가는 것은 결국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깨닫는 것이므로, 남을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만 충실한 삶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황금률은 육체와 동떨어진, 곧 충동에서 해방된 상태로 가정된 마음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 의존적인 자신을 인식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문자로 기록된 텍스트와의 대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텍스트는 의미 체계이자 또한 상징성을 갖는 기호 체계이기 때문에 은유적 해석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상징성을 갖는 기호 체계가 문자 기록에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행위마저도 텍스트로 여겨질 수 있는 측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리꾀르에게 텍스트 해석은 세상의 해석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 이해를 산출해내는 기반이기도 하다. 타자의 행위는 그 자체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는 만큼, 나와 너의 배경을 이루는 세계 이해가 그 해석에 개입되며, 해석 과정에서 세계 이해의 수정도 일어날 수 있다. 실례로 공자(孔子)가 민(民)을 논했을 때 그것은 사대부에 국한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국한된 방식으로는 ‘민’에 대한 공자의 말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텍스트에 변화한 전통을 투영함으로써 텍스트의 재구성이 일어나며, 공자의 말은 쓸모 있는 것으로 변통(變通)할 수 있게 된다.
• 해석학적 아크 속에서 벌어지는 담론은 근본적으로 ‘자아와 타자의 관계 맺기’의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이다. 그러한 담론의 목적은 새로운 세계 이해를 산출하는 것이다. 텍스트 해석의 담론 과정에서 타인을 고려하는 인격이 갖춰지기 때문에, 세계 이해의 산출 목적은 도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3. 망각의 강
인류는 어떻게 지금의 ‘여기’에 도달했으며,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친 세계 이해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일명 ‘철학적 인류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리꾀르의 철학적 인류학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그가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 고유의 성격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자아 개념을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체화된 자아’ 개념은 물질과 분리된 마음의 속성으로 간주된 ‘데카르트의 자아’와 다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서는 리꾀르와 데카르트는 너무나 닮아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리꾀르가 데카르트와 거리두기에 성공한 이유는 단지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마음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담론 과정에서 타자 의존적인 자아가 드러나므로, 리꾀르에게 ‘나에 관한 물음’은 나와 너, 우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자아가 텍스트와 해석자의 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므로, 리꾀르는 자아와 개성의 공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자아가 물질과 분리된 마음의 합리적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자아는 개성과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해석과 재구성이 해석자의 배경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자 자신이 얻게 되는 것이다. 텍스트의 해석과 재구성 과정에서 자아가 드러나는 한, 해석자의 특수성 또한 자아와 별개로 다뤄질 수 없다.
‘다른 이를 가정하지 않은 채 나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로부터 ‘우리가 처한 상황’이 ‘자아의 타자 의존성’이라는 은유 아래 ‘나에 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귀결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삶이란 그 의미를 물을 때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삶은 좋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한 전제가 정말 도덕을 논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인지는 철학자의 몫으로 남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에 귀속된 역사적 담론은 인류사에 실질적 기여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니 역사학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사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리꾀르의 해석학은 흥망성쇠의 보편적 구조를 가정하고 그 구조를 하나의 정합적 텍스트 속에 가두려는 역사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으로는 유용하다. 그러나 리꾀르의 해석학은 역사학자의 실천적 방법을 논할 때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먼저 역사학자의 실천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모든 것은 분명히 기호(sign)로 여겨질 수 있는 까닭에 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대상, 현상, 사건, 상황, 행위가 다른 것과 뒤엉켜 우리에게 드러나는 한, 그것들의 생성 과정은 복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복잡성을 탐구하는 방식이 반드시 의미의 해석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과거 텍스트 기록에 반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 유물이 역사가에게 상징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가의 우선적인 작업은 기록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만약 모든 역사가가 해석의 배경 맥락 속에서 ‘의미 체계의 부분과 전체의 순환적 관계’에 매달린다면, 이것은 기록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데 오히려 장벽이 된다. 유물이 증거나 반례가 되는 맥락의 특정 부분들에만 주목하는 것이 역사가에게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역사학자가 역사적 기록의 진위 여부에 대한 증거로 어떤 유물을 선별하는 과정도 해석에 종속된 것이라 할 수 없다. 해석은 오히려 그러한 실천적 과정의 한 측면이 될 뿐이다. 역사적 증거가 해석을 제한하는 작용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역사적 방법’이라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그 어떤 역사적 담론도 증거의 선별 과정과 분리되어 다뤄질 수 없다. 이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증거를 발견하는 행위와 과정에 이미 개념들이 개입하기 때문에, 그것은 해석의 일종이다. 하지만 행위와 과정에 깔린 인과의 복잡성이 ‘텍스트의 부분과 전체의 관계’ 속에 포섭된 것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특정 개념 없이는 사건이 의미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 사건이 텍스트와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오로지 호기심을 유발시킨 사건만이 실재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한 호기심은 개인이 갖고 있는 개념들과 사건 사이의 불일치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해석의 동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개념들과 사건 사이에 일치성이 보장된 경우, 해석학적 아크 속의 해석자는 사건들을 단지 개념들로 구성된 텍스트의 부분으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사건들은 타자의 지위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의 말에 귀룰 기울일 수 없고 우리에게 대화를 걸 수 없는 것들일 뿐이다.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를 인정하는 해석학은 그나마 해석학과 역사학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허락한다. 반면에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고안된 해석학적 아크에 역사적 담론이 갇혀 버리면, 인격의 완성은 역사학자의 도덕적 이상이기도 한 것이다. 유물을 조사하고 역사적 기록을 검증하는 오랜 과정에서 역사학자의 인격도 성숙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숙은 직업적 실천 과정의 결과이지, 결코 자아의 타자 의존성을 의식하게 만드는 해석 과정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이를 가정하지 않고 나의 삶을 논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런데 참다운 삶을 논하기 위해 ‘나와 너’도 아닌 ‘자아와 타자’라는 것을 전제할 필요가 있을까? 신학자로서 리꾀르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암묵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그 긍정은 리꾀르 자신이 기대고 있는 유대, 기독교 전통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그러한 전통에 무의식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의 ‘해석학적 아크’가 ‘전통에 의한 해석의 한계’에 속하는 한 종류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에게 역사적 발견의 현명한 사용이란 무엇인가? 만약 역사적 담론이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에 종속된다면, 역사적 증거가 텍스트의 해석과 재구성을 제한하는 미덕은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용서, 화해, 희망이라는 은유 아래 과거사는 망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사례로서 ‘역사적 예수’와 ‘신학에 근거한 예수’의 차이, 그리고 우리의 과거사 정리 문제를 살펴보자.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에 근거해 여러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꾀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고, 세례 요한의 충실한 후계자로서 당시 유대교 교리에 충실한 인물이었으며, 당시 선지자로 행세한 여러 명 중에 한 명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예수의 부활은 선지자들을 신화화하는 유대 민족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동의는 결코 ‘성서 해석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물과 성서 기록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일치에 근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성서를 재해석하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에 근거해 ‘예수라는 사징성’이 재구성된 방식과 동기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역사학자들이 발견한 ‘역사적 예수’는 ‘신학에 근거한 예수’와는 다르다. ‘신학에 근거한 예수’에서 ‘예수’는 보편적 인권 이념을 인류의 의식 속에 심어준 인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와 ‘신학에 근거한 예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간극은 신학자에게는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가 개종을 하지 않는 한, 그는 ‘신학에 근거한 예수의 역사’를 포기할 수 없다. 그는 ‘신학에 근거한 예수의 역사’라는 텍스트의 창조가 가져온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위상을 사소한 것으로 돌린다. 현실 문제를 진단할 때 역사적 예수를 들먹이는 것은 갈등의 소지만 될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의 발견이 사소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망각의 대상이 되어도 그만이다. 이에 대해 리꾀르가 어떻게 반응하든, 그의 해석학은 ‘역사적 예수’를 ‘망각의 강’에 수정시켜도 된다는 빌미를 제공한다. 리꾀르에게 역사적 담론의 목적은 새로운 세계 이해를 산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에 근거한 예수의 역사’가 그러한 세계 이해를 산출시킨 원동력으로 간주되는 경우, ‘역사적 예수’ 혹은 ‘역사 속 예수의 실제 일대기’는 역사적 담론에서 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과거 유럽인들은 예수와 관련된 기록들을 재구성함으로써 ‘보편적 인권 개념에 근거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담은 세계 이해’를 산출시켰다. 그렇게 산출된 세계 이해가 인류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한, 실제 역사적 예수를 운운하는 것은 텍스트 해석의 역사에서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는 역사적 담론을 해석학적 아크에 종속시킬 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 된다.
역사적 담론이 리꾀르의 해석학적 아크에 종속된다면, 사실 올바른 세계 이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개인들이 참다운 자아를 발견해 인격체가 되고, 새로운 세계 이해나 가치관을 생성해내는 것이 역사적 담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가들의 역할은 여러 세계 이해나 가치관 중 무엇을 지금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드코어 역사가’들, 곧 ‘역사주의라는 미명 아래 과거를 하나의 텍스트 속에 가두거나 어떤 대안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역사가들’의 평가 방식은 근본적으로 미래 지향적이지 않으며, 또한 소박하다. 그들은 집단적 실패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 전쟁 기록을 후세에 남긴 ‘투키디데스의 사례 분석 정신’을 존중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것만은 앞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진정한 역사적 교훈’으로 여긴다.
‘역사적 예수’와 ‘신학에 근거한 예수’ 사이에서 나타나는 간극과는 다른 방식의 간극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대중적으로 칭송되었던 인물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일본의 앞잡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의 이름을 공개하여 공적인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평가 방식은 그들이 여러 긍정적 행적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앞잡이였다는 역사적 증거에 근거해야 한다. 그 증거 자체는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면에 그런 증거마저 해석의 텍스트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 ‘과거 인물의 실제 행적’과 ‘후세에 날조된 기록’ 사이에 나타난 간극은 ‘새로운 세계 이해’의 창조적 원동력으로 여겨져도 그만이다. 따라서 ‘희망적인 미래’라는 이름 아래 역사적 증거는 용서의 분위기 속에 사장될 수 있다. 역사적 증거가 ‘피해야 할 것의 선별’이 아닌 ‘미래를 위한 텍스트의 재구성’에 사용된다면, 남는 것은 과거 역사에 대한 집단적 망각으로 끝날 수 있다.
해석학적 아크 속에 진행되는 담론이 타자에 의존적인 자아를 반영해주고, 그러한 담론이 산출해내는 새로운 세계 이해는 희망적인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적 교훈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성숙한 인격체일지라도, 그는 무엇을 피해야 하는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없다. 그것은 ‘거창한 텍스트의 해석과 재구성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적 실패를 망각하지 않겠다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 대답된다. 리꾀르 옹호자들은 이러한 반박을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의 말기 생각은 온통 ‘용서’와 ‘희망’으로 미화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리꾀르가 정말 ‘체화된 자아’를 강조했다면, 그는 행위와 증거가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역으로 해석을 제한한다는 사실도 인정했어야만 했다.
그 어떤 해석도 ‘행위의 인과적 기반’과 ‘증거를 찾아내는 인간의 실천적 과정’을 완전히 포섭할 수는 없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학문은 고작 해석학의 하부 분과들로 이미 전락했을 것이다. 해석학이 역사학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리꾀르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해석은 문화적, 정치적 전통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증거와 평가 사이의 관계가 해석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어느 누가 해석이 전통에 의존적이라고 주장하는 그를 보수주의자라로 비판한다면, 그는 이렇게 반응하면 그만이다. “나는 인간의 실천이 해석에 종속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해석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해석학이 다른 분과와 거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입니다.”
<덧글>
철학을 살리고 싶어 하는 철학자라면 자신의 이론을 완벽하게, 자율적으로 만들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에 철학이 다른 분야와 거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철학자는 자신의 어깨에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거인이 되기보다는 온갖 분야 사이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지적인 플랑크톤’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거인이 되고자 하는 철학자가 판치면 칠수록, 철학의 현실적 존재감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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