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총 50 장으로 구성된 [사고 훈련]의 <사고 훈련 18>의 한 꼭지이다.
* 다음 사고 훈련 자료를 저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추론학교 031-422-1977)
(4) 함의 ‘→’
논리적 연결사 ‘→’는 ‘함의(implication)’라고 불립니다. ‘P→Q’는 ‘P가 Q를 함의한다’를 뜻합니다. 함의 연결사는 우리말의 표현 ‘... 면, ... 이다’를 모방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우리말의 ‘... 면, ... 이다’를 영어의 ‘if ..., then ...’과 같이 접속사로 간주할 수 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함의 연결사 ‘P→Q’의 기능 방식을 명확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봅시다.
[예제 12~1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1+1’은 ‘+(1, 1)’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때 ‘+’를 연산자(operator)라고 합니다. ‘1+1’은 2를 지칭하는 표현이므로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어의 접속사들은 산수의 연산자와 비슷한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다음의 영어 진술들을 살펴봅시다.
• This flower is yellow and a yellow thing is tangible.
• This flower is yellow or a yellow thing is tangible.
• This flower is not yellow.
• If this flower is yellow, then a yellow thing is tangible.
접속사를 연산자처럼 취급하는 경우, 위 진술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 AND[This flower is yellow, ( )]
• ( )[This flower is yellow, A yellow thing is tangible]
• ( )[( )]
• (IF-Then)[( ), A yellow thing is tangible]
인간의 실제 참 거짓 판단은 내용에 의존적입니다. 접속사의 기능은 그러한 내용 의존적인 판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어의 접속사들을 연산자처럼 다룰 수 있더라도, 그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영어의 접속사들은 형태적 측면에서 연산자와 비슷한 측면을 갖고 있고, 이는 접속사의 기능을 모방할 수 있는 논리적 연결사를 생각해 보도록 해주는 단서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제 12] 위 글의 빈 칸 ( )을 채워 본다면?
[예제 13] P를 ‘This is yellow’, Q를 ‘A yellow thing is tangible’이라고 할 때, 논리적 연결사들을 사용해 위 진술들을 표현해 본다면?
함의 연결사 ‘→’가 ‘... 면, ... 이다’를 모방한다고 할 때, ‘P→Q’가 참인 경우의 가장 직관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i) P가 참이면 Q도 참일 때, ‘P→Q’는 참이다.
그런데 P가 거짓인 경우에 ‘P→Q’는 어떻게 될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i)에 대해 분석해 봅시다.
‘P→Q’에서 P를 ‘전건(antecedent)’, Q를 ‘후건(consequent)’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 면, ... 이다’를 조건문의 형태로 간주하는 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참으로 판단된 조건문은 전건이 참일 때 후건도 참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P→Q’의 의미를 (i)로 규정할 때,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의 내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때 ‘P→Q’의 형식을 만족하는 참인 진술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비가 오면, 땅이 축축해진다.
• ‘1+1=2’이면, 영이는 사람이다.
첫 번째 진술은 일상경험에 비추어 참으로 판단되는 조건문입니다. 이때 그 판단은 비가 온 사건과 땅이 축축해진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상적 조건문에 관한 판단은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와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진술의 내용과 무관하게 진리치 결합 방식의 계산에만 국한된 함의 연결사 ‘→’의 정의 방식으로는 따질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두 번째 조건문 ‘‘1+1=2’이면, 영이는 사람이다.’는 (i)에 따라 참으로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 가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문을 의미 있는 진술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조건문에는 전건과 후건의 내용적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P→Q’에 대한 (i)의 정의 방식에서는 조건문의 내용과 관련된 인과 관계와 같은 것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제 14] 빈 칸 (가)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가)
만약 전건이 거짓인 경우, ‘P→Q’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P→Q’가 거짓으로 판단되는 경우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 (ii) ‘P→Q’는 ‘전건 P가 참이지만 Q는 거짓인 경우’에 거짓으로 판단된다.
참 아니면 거짓인 진술들만 고려할 때, (ii)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참으로 판단됩니다. 이때 ‘P→Q’가 참인 경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P가 참일 때 Q도 참인 경우
• P가 거짓이고 Q는 참인 경우
• P가 거짓일 때 Q도 거짓인 경우
위 경우들과 (ii)를 고려하여 함의 연결사 ‘→’의 기능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P→Q’는 ‘전건 P가 참이지만 Q는 거짓인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들에 대해서 참이다.
[예제 15] 함의 연결사 ‘→’의 기능 방식에 대한 정의를 따를 때, 참이지만 내용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문이 가능합니다. 다음은 그러한 조건문들입니다. 빈 칸 ( )을 채워 본다면?
• (2+1=3)→( )
• (3<1)→( )
• (2=5)→( )
함의 연결사 ‘→’의 기능 방식은 진술들의 내용적 결합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 면, ... 이다’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기능 방식은 인과 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가정되었습니다. 실제 조건문의 전건과 후건의 함의 관계와 논리적 연결사 ‘→’를 구분하기 위해, ‘→’를 ‘material implic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material implication’에 해당하는 적절한 우리말 표현은 없습니다. 그나마 ‘형식 함의’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제 16] 함의 연결사의 기능 방식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다음 조건문들의 참 거짓 유무를 판단해 본다면?
(1) (원주율 π>2)→(3>2) ( )
(2) (착한왕은 666년 6월 6일 새벽 6시에 태어났다.)→(삼각형 내각의 총합은 180도이다.) ( )
(3) (모든 고양이는 죽는다.)→(고양이는 물속에서 숨을 쉰다.) ( )
(4) (반경 2cm의 원 면적은 4πcm2이다.)→(원의 모양은 대칭적이지 않다.) ( )
(5) (-5는 자연수이다.)→(5는 허수이다.) ( )
함의 연결사 ‘→’의 기능 방식에 따라 생각할 때, 다음 형식은 타당합니다.
<전건 긍정 형식>
P
P→Q
Q
두 전제 P와 ‘P→Q’를 참으로 받아들입시다. P가 참일 때 ‘P→Q’도 참이기 위해서는 Q는 반드시 참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전건 긍정 형식>은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에 따를 때 타당한 형식입니다.
[예제 17]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은 진술들이 전제로 주어지는 순서와 무관한 것으로 가정되었습니다. 실례로 ‘P가 먼저 주어지고 ‘P→Q’가 전제로 주어지는 경우’와 ‘‘P→Q’가 먼저 주어지고 P가 주어지는 경우’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때 임의의 두 진술 P와 Q를 사용해 <전건 긍정 형식>에 해당하는 모든 형식들을 써 본다면?
함의 연결사 ‘→’의 기능 방식에 대한 정의를 따를 때, <전건 긍정 형식>이라는 타당한 형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전건 긍정 방식의 주장은 <전건 긍정 형식>에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을 집어넣어 얻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건 긍정 형식>은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진 전건 긍정 방식의 주장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발견 과정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은 진술들의 내용을 무시하고 오로지 진리치의 변환 및 결합 방식만 고려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시제,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의 양상은 <전건 긍정 형식>을 얻는 과정에서 무시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양상은 진술의 내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상을 다루는 논리 체계도 있습니다. 그런 논리 체계는 양상을 마치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에 적용 가능한 연산자처럼 취급하는데, 여기서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상을 다루는 논리 체계도 내용 의존적인 인간의 참 거짓 판단을 완벽히 모방할 수 없음은 언급하고 싶습니다.
전건 긍정 방식의 두 주장을 비교해 봅시다.
<피칸투 1>
• 피칸투는 파랑새이다.
• 피칸투가 일찍 일어난다면, 다른 파랑새보다 먼저 벌레를 잡아먹는다.
• 피칸투는 일찍 일어난다.
• 피칸투는 다른 파랑새보다 먼저 벌레를 잡아먹는다.
<피칸투 2>
• 피칸투가 지금까지 일찍 일어났다면, 다른 파랑새보다 먼저 벌레를 잡아먹었다.
• 피칸투는 오늘 일찍 일어났다.
• 피칸투는 오늘도 다른 파랑새보다 먼저 벌레를 잡아먹을 것이다.
<피칸투 1>은 시제가 참 거짓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피칸투 1>의 전제들을 참으로 받아들이면, 결론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피칸투 1>은 내용적으로 타당한 전건 긍정 방식의 주장으로 분류 가능합니다.
<피칸투 2>는 시제가 참 거짓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경우에 해당합니다. 두 전제들을 받아들여도, 결론에 대한 예외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칸투 2>의 첫 번째 전제는 오늘을 기준으로 지금까지만 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칸투 2>가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단정짓기 힘듭니다.
그러나 시제,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의 양상을 무시하는 경우, <피칸투 1>과 <피칸투 2> 모두는 <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칸투 1>과 <피칸투 2>의 비교를 통해, 내용적으로 타당한 전건 긍정 방식의 주장이 <전건 긍정 형식>에 임의의 진술들을 집어넣어 얻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제 18] 양상을 고려하여 <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지만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단정짓기 힘든 주장을 만들어 본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봅시다.
• <전건 긍정 형식>을 어긴 방식의 주장은 항상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일까?
<전건 긍정 형식>을 어긴 대표적인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후건 긍정 형식>
Q
P→Q
P
[예제 19] <후건 긍정 형식>은 타당한 형식이 아님을 설명해 본다면?
<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고 있는 많은 주장은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실례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 수 있습니다.
• 비가 오면, 땅이 축축해진다.
• 땅이 축축하다.
• 비가 온다.
그러나 <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고 있는 모든 주장이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단정짓기는 힘듭니다. 왜 그런지 알아봅시다.
[예제 20] <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고 있는 주장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례를 만들어 본다면?
‘원인을 미리 알고 결과를 추정하는 판단 방식’의 주장 중에는 <후건 긍정 형식>을 반영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단정짓기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다음 주장을 살펴봅시다.
<움푹 파인 땅>
• 땅이 움푹 파였다면,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 폭우가 쏟아졌다.
• 땅이 움푹 파였다.
과연 <움푹 파인 땅>은 전제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결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 즉 타당하지 않은 주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움푹 파인 땅>은 ‘원인을 미리 알고 결과를 추정하는 판단 방식’의 주장에 해당합니다. 그러한 주장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 즉 인과 관계를 조건문으로 표현할 때, 반드시 원인이 전건에, 그리고 결과가 후건에 위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사후에 추정하는 방식의 조건문이 그러합니다. 실례로 ‘땅이 움푹 파였다면,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와 같은 조건문을 들 수 있습니다. 일상 경험에 비추어 참으로 판단되는 그 조건문에서 원인은 후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때 폭우가 쏟아졌다는 원인을 알면, 땅이 움푹 파였다는 결과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에 따라 타당한 형식들을 구성할 때, 다음을 기억합시다.
• 논리적 연결사는 참 거짓 판단 가능한 진술들의 진리치를 결합하거나 변화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 진술들이 주어지는 순서는 타당한 형식을 구성할 때 무시된다. 또 연접 및 이접 연결사를 사용해 진술들을 결합할 때, 그 순서도 무시된다.
•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을 고려하여 타당한 형식을 구성할 때, 진술에 함축된 시제,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의 양상도 무시된다.
타당한 형식들은 내용적으로 타당한 주장들을 형태의 측면에서 분류하고,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성립하는 추상화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것입니다. 이를 안다면, 다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내용적으로 타당한 모든 주장이 타당한 형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내용적으로 타당한 주장이 타당한 형식에 진술들을 집어넣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타당한 형식에 대한 지식은 아무 쓸모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진리치와 논리적 동치 관계’, ‘동어 반복과 추론 형식’을 살펴 본 다음 다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에 따르면, 다음 형식도 타당합니다.
<가언 삼단 논법 형식>
P→Q
Q→R
P→R
<가언 삼단 논법 형식>이 타당한 형식임을 보이기 위해 ‘귀류법’을 사용해 봅시다.
[예제 21] 귀류법이란 무엇인가요?
<가언 삼단 논법 형식>이 타당한 형식이 아니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두 전제 ‘P→Q’, ‘Q→R’은 참이지만 결론 ‘P→R’은 거짓인 경우가 있습니다. ‘P→R’이 거짓이라면, P는 참이고 R은 거짓이어야 합니다. 이때 ‘P→Q’와 P 모두 참이므로, Q도 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Q는 참이지만 R은 거짓이므로, ‘Q→R’은 거짓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Q→R’이 참이라고 한 것과 모순 관계를 맺습니다. 즉, <가언 삼단 논법 형식>이 타당한 형식이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 ‘Q→R’는 참이고, 또한 거짓이라는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가언 삼단 논법 형식>이 타당하지 않다는 가정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적 연결사들의 기능 방식에 대한 정의를 따를 때, 다음 형식들도 타당합니다.
<단순 양도 형식> <복합 양도 형식>
P∨Q P∨Q
P→R P→R
Q→R Q→S
R R∨S
[예제 22] <단순 양도 형식>이 타당한 형식임을 설명해 본다면?
[예제 23] 복합 양도 형식이 타당한 형식임을 설명해 본다면?
[예제 24] 다음 도표에서 <보기>를 채워 본다면? (<보기>에는 내용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주장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논증 형식> |
<보기> |
전건 긍정 형식 P P→Q Q |
|
후건 부정 형식 ¬Q P→Q ¬P |
|
선언지 제거 형식 P∨Q ¬P Q |
|
가언 삼단 논법 형식 P→Q Q→R P→R |
|
단순 양도 형식 P∨Q P→R Q→R R |
|
복합 양도 형식 P∨Q P→R Q→S R∨S |
|
선언지 첨가 형식 P P∨Q |
|
연언화 형식 P Q P∧Q |
|
단순화 형식 P∧Q P |
|
'과학과 철학 에세이 > 인지와 경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리적 동치 (0) | 2011.08.14 |
---|---|
논리적 의미에서의 필요충분조건 (0) | 2011.07.22 |
논리적 연결사 '이접(Disjunction)'과 '부정(Negation)' (0) | 2011.07.15 |
논리적 연결사 '연접(Conjunction)'과 접속사 '그리고' (0) | 2011.07.12 |
벤 다이어그램 기법과 시각적 혼선 (0) | 2011.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