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논술 훈련 자료를 개발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GK 비판적 사고 031-318-2282) 이 자료는 일종의 샘플이다. 학교별로 개발되는 논술 훈련 자료를 여기에 다 올릴 수는 없다. 내년부터는 논술 보다는 심층면접 등이 수시나 입학사정관제에서 더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논술 제시문은 고등학교 과정과 연계에 더욱 쉬운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나치게 난해한 과거 기출 자료로 논술을 대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향후 논술 훈련 과정은 반드시 고등학교 과정과 연계하여 별도로 제작된 제시문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작된 논술 훈련 자료도 여기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올해 서울대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다음 자료를 한 번 풀어 보는 것도 좋다. (다음 자료는 고 3 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훈련된 고 2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경우, 중 3 학생도 풀어 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 2011학년도 서울대 정시 논술 문제에서 사용된 제시문들을 분석하고, 글 속에 숨겨진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훈련을 해 보자. 그런 다음 실제 논술 문제에 대해 답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제시문 1】
(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과학적 사고를 통한 탐구가 필요하다. 과학 탐구 과정의 구성 요소는 (1) 문제를 인식하여 연구 대상을 정하고, (2) 가설을 세운 후, (3)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과 관찰을 수행하고, (4)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를 해석하여, (5)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모든 탐구 활동의 출발점으로서,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문제 인식은 논리적이거나 분석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현상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설이란 예상되는 잠정적 결론으로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 실험과 관찰은 문제 및 가설에 부합해야 한다.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에서 어떤 규칙성이나 경향을 찾아내어 명제화하는 것이 자료 해석이다.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은 실험 및 관찰 자료를 비교하거나 관련성을 조사하고, 반례 여부를 검증하여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탐구 과정이 이 구성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는 않다. 어떤 요소는 생략되거나 중복되기도 하고, 또한 시간에 따라 진행 순서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 과학 탐구 과정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나)
과학적 주제를 탐구하려면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과학적 사고의 첫째 요소는 기존 지식에 대한 반성이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기존 지식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이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적 사고의 둘째 요소는 지식의 정량화이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면 막연히 ‘더 빨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몇 배 더 빠른지 정량화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벼운 물체와 무거운 물체를 같이 붙여서 떨어뜨리면 전체 무게는 더 무거워지므로 무거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질 수도 있고, 무거운 물체의 속도보다 가벼운 물체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더 늦게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정량화해 보면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는 생각의 문제점을 알게 된다. 지식을 정량화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측정이 필요하다. 과학적 사고의 셋째 요소는 지식에 대한 실증적 검토이다. 지식은 검증되어야 하며, 실험은 그 검증 과정이다.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실제로 떨어뜨려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검증이란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실제 상황에서는 다양한 변인(變因)이 존재한다. 실험은 이 변인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실험은 관찰과 차이가 있다. 과학적 사고의 넷째 요소는 지식(가설)의 반증 가능성이다. 과학적 명제는 반증이 가능하도록 명료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과학적 사고의 다섯째 요소는 개별지식을 모아 합리적 체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1. 글 (가)에 근거한 판단으로 적절한 것은?
① 탐구 과정 (1)~(5)는 오로지 과학에 국한된 것이다.
②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왜’그럴까라는 질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계는 (2)이다.
③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성된 가설은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④ 모든 과학적 탐구 과정은 (1)~(5)의 진행 순서를 따른다.
⑤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중요한 문제를 연구 주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영국의 병리학자 섀턱(Samuel Shattock, 1852~1924)은 1899년 천식환자에서 채취한 혈청이 다른 환자의 적혈구를 응고시킨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는 그 원인이 질병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여겼다. 반면에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는 적혈구와 혈청의 반응이 항원과 항체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항원이 반드시 병원균과 같은 것일 필연적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적혈구 응고 현상이 항원과 항체 반응에서의 개인차를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자신과 연구소 동료들인 에르드하임(Jakob Erdheim, 1874~1937), 플레취니히(Pletschnig), 스퇴르커(Oscar Stoerk, 1870~1926), 스툴리(Adriano Sturli, 1873~1963)의 피를 뽑았다. 란트슈타이너는 각 피에서 적혈구와 혈청을 분리한 다음 서로 섞어 보았다. 각자 자신의 피에 대해서는 적혈구와 혈청의 응고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플레취니히의 혈청은 스툴리의 적혈구에 대해서 응고반응을, 그리고 스툴리의 혈청은 플레취니히의 적혈구에 대해서 응고반응을 나타냈다. 항원과 항체의 관계에서 접근할 때 스툴리 적혈구의 항원에 대해 플레취니히 혈청의 항체가 공격 혹은 반응했다고 봐야 한다. 역으로 플레취니히 적혈구의 항원에 대해 스툴리 혈청의 항체가 공격 혹은 반응했다고 봐야 한다. 란트슈타이너는 각각의 항원을 A와 B로 명명했다. 적혈구 항원 A를 갖는 피의 혈청에는 안티-B(anti-B)의 항체가, 역으로 적혈구 항원 B를 갖는 피의 혈청에는 안티-A(anti-A)의 항체가 있다.
그러나 란트슈타이너 자신과 스퇴르커의 피는 A와 B 항원 모두를 결여한 채 안티-A와 안티-B 항체 둘 다 가지고 있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러한 종류의 피를 C로 명명했는데 후에 O로 수정되었다. A형은 항원 A와 안티-B 항체를 갖는 개체군을, B형은 항원 B와 안티-A 항체를 갖는 개체군을, 그리고 O형은 A와 B 항원 모두를 결여했지만 안티-A와 안티-B 항체 둘 다 갖고 있는 개체군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적혈구 항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란트슈타이너는 1902년 당성분의 물질과 항원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항원 A와 B는 적혈구 세포막에 붙어 있는 당성분의 화학적 구조물이다. 란트슈타이너의 실험에 참가했던 스툴리는 1902년 데카스텔로(Alfred von Decastello, 1872~1960)와 함께 155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또 다른 혈액형인 AB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A, B, O, AB로 구성된 ABO 혈액형 구분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 이상하(2008) ?생각의 기차: 과학적 발견의 연결 1? 중에서- |
2. 위 글에서 제시문 (가)의 과학적 탐구 과정 단계 (1)에 해당하는 것은?
3. 과학적 탐구 과정 단계 (1)에서 얻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란트슈타이너가 세운 잠정적 가설은?
4. 란트슈타이너가 연구실 동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론은 무엇인가?
5. 다음 도표에서 ‘+’는 적혈구와 혈청 사이에 응고반응이 있었음을, ‘-’는 그러한 응고반응이 없었음을 나타낸다. 다음 도표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5-1. 위 도표의 (1)과 (2) 각각에는 적혈구와 혈청 중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5-2. 위 도표는 제시문 (가)의 과학적 탐구 과정 (1)~(5) 중 무엇에 해당하는가?
5-3. 도표에서 대각선상이 전부 ‘-’로 표기된 이유는 무엇일까?
5-4.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은 무엇인가?
6. 갈릴레이는 피사의 탑에 올라가 벽돌 한 장과 두 벽돌을 묶은 것을 동시에 낙하시켰다. 이러한 실험에 대한 갈릴레이의 동기를 제시문 (나)를 가지고 설명해 본다면?
7. 제시문 (나)에는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그렇지 않은 사고방식, 실례로 종교적인 사고방식을 구분해 보라는 출제 의도가 암시되어 있다. 제시문 (나)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비된 종교적 사고방식을 규정해 본다면?
제시문 2】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론(천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놓여있고, 가장 바깥에는 우주의 끝인 천구(天球)가 있다. 천구의 안쪽에는 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이 차례로 위치하며, 이것들은 행성의 천구를 따라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 반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지배하던 16세기 초 코페르니쿠스는 관측 자료를 수집하여 하늘에 많은 주전원(周轉圓)이 그려져야 하는 복잡한 우주 구조가 신의 섭리와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전원, 이심원(離心圓)과 같은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행성들이 완벽한 등속 운동을 하는 우주 구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나서,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따라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여전히 행성들의 원운동을 강력히 고수하면서 주전원과 이심원의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우주가 천체들이 동심원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그의 우주론은 이후 과학혁명기의 다른 과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을까. 그것은 자연에서 단순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신플라톤주의적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혁명기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믿으려 하지는 않았다. 지구의 회전이 물리적으로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성서적 믿음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코의 우주 구조는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회전하고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지구 중심이면서 동시에 태양 중심인 과도기적 우주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천문대를 세우고 20년에 걸쳐 매일 밤 행성을 관측하여 그 결과를 축적했다. 그의 사명은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자연에 대해 관측하고 실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론적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 주전원(epicycle): 천구상에서 각 행성이 돌고 있는 일정한 크기의 원(圓) 궤도
* 이심원(eccentric cycle): 주전원의 중심이 돌고 있는 원 궤도
* 이심점: 이심원의 중심으로 태양계의 기하학적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 점
이처럼 케플러 이전까지 원은 우주 질서의 기초였으며, 사물은 원주 위를 영원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케플러는 어떻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상상력과 정확한 관찰 자료, 질서와 조화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바탕으로 태양계를 수학적 기초 위에 올려놓은 그의 탐구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케플러의 초기 탐구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적인 우주 체계를 재검토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물리학적이기보다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주는 바로 그 창조자인 신의 형상을 반영한 것이며, 따라서 가장 빛나는 존재인 태양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행성들에게 빛과 열을 흩뿌려서 행성들로 하여금 운동하게 한다고 믿었다. 행성의 공전 주기와 그 거리 역시 코페르니쿠스의 설명을 따라야 이치에 맞다. 태양 중심 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행성들의 궤도가 모두 조화롭고 수학적으로 균형 있게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지구와 각 행성들 사이의 거리뿐만 아니라, 태양과 각 행성들 사이의 거리가 상대적인 비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성은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3분의 1, 금성은 3분의 2, 화성은 1.5배, 목성은 5배, 토성은 10배 지점에 위치한다. 그러나 태양 중심 체계를 더욱 자세히 연구하면서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 불분명한 점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행성들이 무엇 때문에 그처럼 특정한 거리에 위치하는지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케플러는 궁금했다. 왜 행성들은 그렇게 특정 거리로 떨어져 있는가? 왜 행성은 반드시 6개인가? 그리고 왜 신은 태양계를 하필 그런 식으로 설계했을까?
1595년 케플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했다. 일 년 전부터 그라츠 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친 그는 수업 시간에 원에 내접하는 정삼각형을 작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정삼각형에 내접하는 원을 그리던 순간 깨달았다. 큰 원과 작은 원의 크기 비례가 토성 궤도와 목성 궤도의 크기 비례와 일치한 것이다. 다시 작은 원에 내접하는 정사각형을 작도한 다음 그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을 그린다면, 그 원들 사이의 비례는 토성과 목성 궤도에 대한 화성 궤도의 상대적인 비례와 일치할 것이다. 그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와 같은 기하학적 원리가 모든 행성 궤도 사이의 크기에 대해서도 성립하지는 않을까? 신은 기하학을 원형으로 삼아 우주를 창조하지는 않았을까? 평면 기하학으로는 불충분했다. 입체 기하학을 동원해야 했다. 무엇보다 우주는 3차원이었다. 3차원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그는 원 대신 구를, 다각형 대신 정다면체를 가지고 연구에 매진했다. 예로부터 수학자들에게 알려진 정다면체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5개뿐이었다. 이전부터 줄곧 케플러는 행성이 태양에 가까울수록 더 빨리 공전하는 이유가 행성과 태양 사이의 근접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식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태양은 행성들을 공전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행성의 공전 주기가 태양과 행성의 거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물리학적 직관에 근거해 수학 공식화를 시도했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해야 했다. 하나는 바로 기하학과 관련된 사항이었다. 태양에서 거리가 멀면 멀수록 공전 궤도는 커지고 공전 주기는 길어진다. 그리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행성의 공전 속도가 느려진다. 케플러는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여 태양에서 먼 순서대로 행성의 공전 주기는 태양에서 행성까지 거리의 곱절만큼 길어진다는 원리를 이끌어 냈다. 태양까지의 거리 차이에 따른 행성의 속도 변화는 행성 운동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이나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에서도 다루고 있었던 내용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행성의 속도 변화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하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그의 초기 생각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5개의 다면체가 태양계의 수학적 골격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수성의 궤도는 정팔면체에 내접해 있고, 그것에 금성의 궤도가 외접해 있는데, 그 궤도는 또 정이십면체에 내접해 있다. 그리고 그것에 지구 궤도가 외접하며 나머지 궤도들도 정십이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에 내접 또는 외접해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1596)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의 짜임새에 관한 견해이며, 나아가서 기독교와 피타고라스적 종교성의 융합이었다. 케플러는 자신의 상상과 추론이 기존에 알려진 관측 자료와 다르고 이론적으로도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공식을 통해 얻은 행성 사이의 거리는 그가 다면체 가설에서 설정한 거리와 비슷했다. 즉 우주의 구조에 대한 결론은 타당하지 않았지만 그는 실패를 통해 나중에 행성 운동의 법칙으로 귀결될 과학적 단서를 얻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성의 움직임에서 조화롭고 기하학적인 비율을 찾는 것이 신을 아는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이 설계한 모형을 사실과 부합시키고 입증할 만한 관측 자료가 없었다. 그 자료는 티코 브라헤가 보유하고 있었으며, 케플러는 1600년에 드디어 티코와 만났다. 케플러는 행성이 정말로 태양에서 유래하는 힘에 의해 운동하는 것이라면 그 같은 사실은 행성 운동에 대한 기하학 이론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티코의 연구에 참가했다. 티코는 케플러에게 고도의 이론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의 귀중한 관측 결과를 사용하여 티코 학설을 수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1601년에 티코는 사망했고, 케플러는 법정 상속인으로부터 티코의 관측 자료를 인수받았다.
티코가 죽기 전부터 케플러는 화성의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 별은 다른 별보다도 원에서 이지러지는 정도가 컸으므로 가장 다루기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에 관한 티코의 관측 자료는 매우 충실했다. 화성이 지구 바깥의 별 중에서 지구와 가장 가깝고, 아침과 저녁에만 나타나는 금성이나 수성과 달리 태양 빛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화성에 대한 관측 결과를 통해 지구 궤도 이론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는 편지에서 “부족하지만, 나는 화성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면서 태양을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화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를 나머지 모든 행성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화성을 표본 삼아 나머지 행성 전부를 다루고자 합니다”라고 썼다. 케플러는 두 가지 조건을 가정했으며, 이 가정 덕택에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를 뛰어넘어 뉴턴적 사고에 접근했다.
케플러의 첫 번째 가정은 기하학적인 조건으로서, 지구 공전 궤도면과 화성 공전 궤도면이 태양의 중심에서 교차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리학적인 조건으로서 태양에 행성 운동의 원인이 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케플러는 태양의 힘과 평형을 이루는 다른 힘을 각 행성에 주고, 태양과 행성이 동등한 상태에서 무한히 투쟁하여 행성의 궤도가 결정되게 했다. 이를 통해 태양의 힘은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감소하며, 행성의 속도와 힘의 근원으로부터의 거리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고 가정했다. 즉,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힘을 얻어 운동하는 것이라면 지구의 공전 운동 역시 다른 행성과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구 역시 태양과 가까워질수록 빨리 움직이고 멀어질수록 느려질 것이다. 행성 궤도를 유추하려는 물리학적 시도는 드디어 상상을 넘어 확신으로 발전했고, 그의 가설은 적중했다.
<우주의 신비>에서 이미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 가설을 밝힌 바 있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공식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행성의 운동 속도는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이용했다. 그러나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행성의 공전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다른 문제였다. 행성은 이심에 중심을 두고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따라서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의 거리는 미세하게 변한다. 케플러는 티코의 수치에 구체적인 몸체를 부여했다. 케플러는 몇 년 동안 이 수치들과 씨름하면서 화성의 비밀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케플러는 궤도의 기하학적 서술과 물리학적 서술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맨 처음 케플러가 사용한 방법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는 이심원 궤도 둘레를 1도 단위로 쪼개 매 각도마다 화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를 계산한 다음, 그 거리의 총합을 이용해 두 지점 간 이동 시간을 측정했다. 태양 반대편의 화성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케플러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이 수치들을 사용해서 장축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는 항성의 움직임, 장축 위에 있는 태양의 이심적 위치, 반지름 등을 산출했다. 면적의 근사값을 구하는 방법에서도, 산술적인 계산에서도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만족할만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케플러는 말한다. “만약 당신들이 이 지루한 계산법에 진저리가 났다면, 그 계산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면서 적어도 일흔 번 이상 해야만 했던 나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내가 화성과 마주치고 나서 순식간에 5년이 흘러버렸다.” 수없이 이어진 계산의 결과 화성이 자신의 공전 궤도면을 쓸고 지나간 면적은 거리의 총합과 그 값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비록 평균적인 근사값이지만, 케플러는 같은 단위시간 동안 행성 궤도가 그리는 면적은 동일하다는 원리를 발견했다. 바로 훗날 케플러의 제 2법칙(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또는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의 법칙)으로 알려진 원리였다. 발견 순서를 따지면 제 2법칙이 다른 법칙들보다 먼저였다. 이 법칙으로 그는 궤도를 통해 행성이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관측된 위치와 이론적으로 예상된 위치 사이에 8분(1도=60분) 정도의 각도가 어긋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차이였다. 티코 이전이라면 그것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8분의 각도를 가지고 6년을 힘들게 연구했다는 사실은 케플러가 얼마나 과학적 사고에 투철했는지를 말해 준다. 그런데 바로 이 8분의 오차를 규명하기 위해 케플러는 화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법칙을 행성 궤도에 적용했다. 행성 궤도의 중심은 태양계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즉 태양 역시 행성 공전 궤도의 회전축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했다. 따라서 새 운동 법칙을 이용해 화성과 태양 사이의 최단거리 지점과 최장거리 지점을 확인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두 지점을 통과하는 데 화성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즉 이심원 궤도의 양 끝 지점을 통과하는 화성의 운동 속도가 예상보다 느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행성 궤도를 찌그러뜨려 양 옆으로 더 튀어나오게 해야 했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면적과 시간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양 끝 지점에서 달라진 속도와 시간 값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물리학적 직관을 발휘했다. 행성 궤도는 완벽한 원이 아니라 달걀 모양이어야 했다. 이제 케플러에게 남은 목표는 분명해졌다. 티코가 정확하고 정밀하게 관측한 행성 위치 자료와 일치하는 수학적인 궤도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모양의 달걀형 궤도가 적당할 것인가? 그런 달걀형 궤도는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그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케플러는 1604년 한 해를 모두 바쳐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공인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류의 연속이었다. 스무 가지에 이르는 많은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고, 잘못된 계산 방법과 결과도 무수히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발견에 도달했다. 달걀형과 원 사이에 생긴 초승달 모양의 최대 폭은 반지름의 0.00429배였다. 그는 또 이 측정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화성에서 태양과 궤도 중심에 그은 선분이 이루는 최대각이 5도 18분이라는 것을 측정했다. 이 각의 시컨트(코사인의 역수) 값이 1.00429라는 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이 값은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 관계가 타원을 정의하는 조건의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계산을 반복했으며, 그 과정에서 타원의 두 초점 중 하나가 태양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그 타원 궤도는 화성이 자신의 원형 공전 궤도에서 4분의 1 되는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순간적으로 그는 그 거리를 계산할 정밀한 삼각측량법(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두 개의 끼인 각을 알면 그 삼각형의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알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측량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거리를 계산해 본 결과, 화성 궤도는 정말로 타원을 그리고 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화성이 타원 궤도를 도는 동안 태양과 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정확히 알아냈다. 그 타원 궤도는 케플러의 오래된 고민, 즉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에서 근사값의 정밀도를 높이는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순간 생각의 물줄기가 솟구쳤다. 그는 그 순간을 “마치 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빛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썼다. 행성 운동의 제 1법칙이 탄생했던 것이다. 행성의 운동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였던 것이다.
• 제 1법칙(타원 궤도의 법칙) : 행성은 타원의 한 초점에 놓여 있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
• 제 2법칙(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쓸고 지나간다.
앞의 그림처럼 행성은 타원 궤도를 그리며, 타원의 한 초점에 태양(S)이 있다. 타원의 크기는 통상 장축(긴 반지름)의 길이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장축 PA
케플러의 제 2법칙에 따르면, 단위 시간당 행성이 자신의 공전 궤도면을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동일하다. 같은 시간 동안 P1
케플러에게 이 두 법칙은 교향악의 멜로디 조각들이었으며,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는 아직도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에게 타원이란 결국 원의 대용품이었다. 평면 기하학은 2차원의 물질적 세계를 다룬다. 구의 3차원적 완전성은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구의 평면적 단면도는 인간의 이원적 양상(육체와 정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주론에서 케플러는 타원보다 더 깊이 내재한 사물의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조화는 어디에 있을까?
케플러는 행성 사이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두 법칙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 한 가지가 행성의 이심률 크기, 즉 ‘행성 궤도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였다. 이심률은 행성이 태양과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 근일점,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원일점으로 결정된다. 다른 한 가지는 행성의 이심률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화성은 이심률이 꽤 큰 반면, 금성은 거의 없다. 그는 <우주의 신비>를 썼던 20여 년 전부터 무엇 때문에 행성의 이심률이 다른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케플러는 두 번째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이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태양과 행성 간의 평균 거리와 그 궤도 주기(궤도를 따라 행성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사이에 놓인 수학적 관계를 알고 싶어 했다.
케플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모두 조화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일점과 중간 지점, 그리고 원일점을 정확하게 비교해 보아도 조화로운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케플러는 태양에서 바라보는 각 행성의 속도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있는지 조사해 보았다. 이는 원일점에서 최저 속도, 그리고 근일점에서 최고 속도를 갖는 행성 궤도 운동에서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면 행성이 이심률을 갖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두 행성 사이에, 다시 말해 한 행성의 원일점 속도와 다른 행성의 근일점 속도 사이에 있으며, 서로 간에 영향을 받는 행성 간 공간에서 비롯될 것이었다. 이것은 까다로운 문제였다.
케플러는 눈을 가리고 조각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수많은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행성 주기에서는 조화급수에 따른 규칙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태양으로부터 여러 행성까지의 거리에 어떤 비율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거기에도 답은 없었다. 최대 속력과 최소 속력 사이에, 혹은 평균 속도 사이에 무언가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그는 비밀에 조금 접근한 것처럼 느꼈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태양을 도는 각 행성의 주기와 거리를 비교했다. 그러자 비로소 그가 평생을 두고 입증하려고 했던 가설이 진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케플러는 마침내 화성(和聲) 모두를 구체화시키는 배열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관찰된 행성의 거리와 이심률의 관계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각 행성별로 주기와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20여 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 이것이 케플러가 그의 제 3법칙(조화의 법칙)에 도달한 과정이다. 이 법칙은 마침내 그가 찾고 있던 행성의 운동과 거리의 관계, 태양계의 물리적 운동과 기하학적 구조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 평균 거리의 세제곱이 행성 공전 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은 의외의 상관관계였다. 되풀이해서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결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행성 궤도의 중심 가까이에 태양을 놓는 것에 그쳤다면,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모형을 만들고, 길고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 비로소 태양이야말로 행성 운동의 동력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에게 신이 창조한 우주는 조화였다.
8. [제시문 2]에 근거한 판단으로 적절한 것에 대해서는 ‘O’를, 적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X’를 표기하시오.
(1) 케플러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현대적 규정 방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 )
(2) 과학혁명기의 과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인 이유는 지동설이 프톨레마이우스의 지구 중심론보다 실제 관측 결과를 더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 )
(3) 티코브라헤가 살았던 시절, 종교적인 믿음이 가설의 선별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
(4)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빛을 신성(神聖)과 연관시켰다. ( )
(5) 케플러는 태양의 중력 때문에 태양에 근접한 행성일수록 더 빨리 공전한다고 믿었다. ( )
(6) 케플러가 태양계의 구조와 행성 운동 방식을 밝히는 작업을 구체적 연구 주제로 삼게 된 데에는 화성 궤도 운동에 대한 티코브라헤의 관측 자료에 빚지고 있다. ( )
(7) 케플러의 제 1법칙은 각 행성이 타원의 한 초점에 놓여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는 것이고, 제 2법칙은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이 동일 시간에 동일 면적을 쓸고 지나간다는 것이며, 제 3법칙은 태양에서 각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의 세제곱이 각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 )
(8)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 중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제 1법칙이다. ( )
(9) 케플러가 언급한 태양의 힘을 중력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밝힌 것은 행성 운동의 물리적 원인이라고 보기보다는 행성 운동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
(10) 케플러는 우주의 구조가 신에 의해 조화롭게 설계되었다는 종교적 신념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
9. 다음 글의 빈 칸을 채워 본다면?
케플러는 태양계의 ( )와 행성 ( ) 운동 방식을 규명한 근대의 ( )로 잘 알려져 있다. 케플러에 따르면, 행성들은 타원의 한 초점에 놓인 태양을 중심으로 ( ) 궤도를 그리며 운동하며,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은 동일 시간에 동일 ( )을 쓸고 지나간다. 또한 태양에서 각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의 ( )은 각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러한 일반 ( )들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연구 대상을 정하는 단계’, ‘잠정적인 초기 가설을 세우는 단계’, ‘가설을 세우기 위한 실험과 관찰을 수행하는 단계’,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를 해석하는 단계’, ‘그러한 해석의 결론으로서 법칙들을 이끌어 내는 단계’로 구성된 ( ) 탐구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케플러는 꽤나 ( ) 과정을 거쳐 태양계의 구조와 행성 운동 방식을 밝히겠다는 것을 ( ) 대상으로 삼았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 )만으로는 행성들이 태양으로부터 특정 ( )를 두고 위치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화로운 천구에 대한 ( ) 신념을 바탕으로 케플러는 정다면체 형태의 태양계 구조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태양계의 실제 ( )와는 거리가 멀었다. 티코브라헤의 ( ) 자료를 인수받은 케플러는 특히 ( ) 궤도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그 행성은 항상 관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화성 궤도 운동을 설명해 주는 법칙이 다른 ( )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렇게 하여 ( )의 구조의 ( ) 운동 방식을 밝히겠다는 것은 케플러 일생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화성 궤도에 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케플러는 ( ) 가지 잠정적인 가설을 세웠다. 그 하나는 ( )적 가설로서 행성들의 공전 궤도가 태양의 중심에서 서로 ( )한다는 것이다. 이는 ( )이 태양계의 중심임을 함축한다. 다른 하나는 ( )적 가설로서 태양에 ( )한 행성일수록 더 큰 힘을 받아 ( )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가설로는 실제 태양계의 모습을 규명할 수 없었다.
케플러에게 ( )의 관측 자료는 가설을 얻는 동시에 ( )을 검증하고 일반 법칙을 이끌어 내는 ( )을 한다. 많은 과학적 발견은 ( )적 노력의 산물이다. 잠정적인 어떤 가설을 세운 사람이 반드시 가설을 ( )하기 위한 실험과 ( )을 할 필요는 없다. 케플러가 티코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넘겨받은 것은 케플러에게는 크나큰 ( )이었다. 아니, 케플러에게 그 ( ) 자료가 넘어 간 것은 인류에게 크나큰 행운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케플러는 그의 잠정적인 ( ) 가설과 물리적 가설에 따른 태양계 구조와 행성 운동에 대한 설명이 서로 일치하기를 원했다. 그는 1도 단위로 화성과 ( ) 사이의 거리를 계산 했고, 또 화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쓸고 지나간 면적의 ( )을 계산했다. 많은 ( ) 끝에 어떤 규칙성을 발견했다. 단위 시간 동안 행성 궤도가 그리는 ( )은 ( )하다는 규칙성이었다. 이에 근거해 케플러는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 )이 동일 ( )에 동일 면적을 쓸고 지나간다는 일반 ( )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반 법칙을 적용해 화성 궤도의 진짜 ( )을 추정하려면, 화성과 태양 사이의 ( ) 거리와 최장 거리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확인된 두 지점을 통과하는 ( )은 ( )을 가정한 경우보다 더 길었다. 케플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화성 궤도가 ( ) 모양일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티코브라헤가 남긴 화성 관측 자료에 ( )을 적용해, 태양이 타원의 한 ( )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하여 각 행성은 타원의 한 초점에 놓인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따라 ( )한다는 제 1법칙이 탄생했다. 하지만 행성별로 ( )와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 )관계는 제 1법칙과 제 2법칙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각 행성의 주기와 거리를 20여 년 간 비교한 결과,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 ) 거리 세제곱은 행성 ( ) 주기의 제곱에 ( )한다는 제 3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태양계의 구조와 행성 운동 방식에 대한 케플러의 ( ) 탐구 과정에는 ( )이 창조한 우주는 조화롭다는 ( ) 신념이 배어 있다. 하지만 ( )로서 그가 증명한 것은 그의 세 가지 일반 ( )이 태양계의 구조와 행성 운동에 대한 관측 자료와 ( )한다는 것이다.
* 이제 2011학년도 서울대 논술 문제를 풀어 보자.
논제 1.【제시문 2】는 행성의 운행 법칙이 밝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행성의 운행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과정을【제시문 1】 (가)에서 기술된 ‘과학 탐구 과정’에 따라 재구성해 보시오.
논제 2. 【제시문 1】 (나)에서 기술된 ‘과학적 사고의 다섯 요소’를 【제시문 2】에서 찾아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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