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역사의 단편들

산테 데 상티스(Sante de Sanctis): 꿈 현상의 과학화를 시도한 심리학자

착한왕 이상하 2012. 11. 5. 02:55

* 이 글은 트위터에 올린 단상들을 간단히 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을 말하는 '트윗 단상‘으로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 여기에 올린다. 이 글은 단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고, 이해에 필요한 많은 정보가 누락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산테 데 상티스(Sante de Sanctis)

- 꿈 현상의 과학화를 시도한 심리학자 -

 

학생들 글 구성 훈련하는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틈틈이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니 ‘프로이트와 꿈’에 대한 얘기가 올라왔다. 타임라인을 보다 보니, 데 상티스의 대한 논문을 쓰려고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는 프로이트보다 먼저 꿈을 심리학의 분과가 될 수 있다고 여겼던 인물이다. 왜 그에 대한 논문을 쓰려고 했을까?

 

정말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서문에 쓴 것처럼 꿈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다루고 심리학의 분야로 만들려고 시도한 사람은 그가 최초였을까? 서문을 보면, 그가 책을 쓰는 동안에도 꿈은 단지 신경 병리학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었다고 나온다. 즉, 정상에서 벗어난 심리적 상태에 특정 꿈을 대응시키는 방식의 연구가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1909년 증보판을 보면, 프로이트는 상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정신분석 치료법을 적용하기로 결심한 의사들과 그 밖의 의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많은 꿈의 사례를 발표하면서 내 조언에 따라 해석했다. 나는 이러한 연구들이 내 주장을 확인하는 것 이상이면, 그 결과를 이 글에서 관련된 곳에 추가하였다. 책 말미의 두 번째 목록은 이 책의 초판 이후 발표된 중요한 문헌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출판된 즉시 독일어로 번역된 산테 데 상티스의 방대한 꿈 문헌은 <꿈의 해석>과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책에 거의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그 점은 그 이탈리아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열성적 연구가 사상 면에서 너무 빈약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다룬 문제들의 가능성조차 예상 못했을 정도로 빈약하다.(<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열린 책들, 1997년)”

 

이러한 문구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의심이 들었다. 프로이트라는 인물의 권위와 같은 것은 나처럼 냉소적인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당시 심리학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문헌들을 뒤져 보았다. 이탈리어로 써진 상티스의 글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어와 독어로 된 당시 책들을 보면 그의 이름이 꽤 자주 등장한다. 당시 책들을 보면 꿈을 상징적 기호 체계처럼 간주하고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연구 진영이 있었는가 하면, 꿈을 활동성으로 간주하고 생리학적으로 다루려는 연구 진영이 있었다. 상티스는 양 진영의 이론과 방법들을 자신의 연구에 적합하도록 끌고 들어와 활용했던 학자였다. 상티스의 꿈 현상에 대한 첫 논문은 1896년에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논문은 1936년에 나왔다. 산티스는 자그마치 40년 넘게 꿈 현상 연구에 매달렸던 사람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날리고 이탈리아에 실험 심리학을 정초시킨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40년 동안에 걸쳐 꿈을 고작 신경 병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의심스러웠다. 오늘날 생물학처럼 당시 심리학은 몇 년 주기로 대학 교재를 바꿔야 할 정도로 발전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티스는 프로아트보다 먼저 꿈 현상을 심리적 용어로 해석 가능하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더욱이 프로이트가 상티스를 묘사한 방식과 달리, 그는 꿈 현상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 혹은 신경 병리학적 증상과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단지 정상인과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생리적 차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더 나아가 나이 별, 성 별로 꿈의 차이를 규명하려고 했다. 산티스는 이러한 차이 심리학적 연구 방식을 측정 심리학의 토대위에 올려놓았다. 산티스는 꿈 내용을 특정 경험과 연관시키는 데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티스는 꿈의 내용을 발생시키는 생리적, 신경학적 원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극과 감정, 감정과 꿈, 자극과 생리적 반응, 생리적 반응과 꿈의 내용 사이의 관계를 생리학과 뇌신경학을 바탕으로 규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일련의 실험을 거쳐 부분적으로나마 꿈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로이트가 비아냥거린 그러한 결론에는 표층의식 혹은 깨어 있는 동안의 의식과 심층의식 혹은 자는 동안의 의식은 한 방향성이 아닌 쌍 방향성으로 작용한다는 상티스의 확신이 깔려 있다. 프로이트와 달리 그에게 두 의식은 항상 중첩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예상할 수 없거나 해석하기 힘든 꿈 현상도 배제되지 않는다. 당시 진화론에 관심을 가진 상티스는 두 의식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나타날 것이라 믿고, 동물의 꿈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상티스가 꿈의 내용을 벗어나 그 활동 방식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티스의 실험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표층의식은 주로 두뇌 피질 활동에 기반을 둔다면 심층의식은 두뇌 피질 하부의 활동에 기반을 둔다. 그 두 뇌 부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을 한다. 따라서 두뇌 기능에 대응된 마음 현상도 두뇌 부분들의 차이와 상호 연결로 인해 동질적인 전체로 취급될 수 없다. 그에게 꿈은 두뇌 구조와 그 기능에 대응된 마음의 복잡성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통로였던 것이다.

 

오늘 날 꿈을 심리학적으로 다루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하면 그것의 출발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거론한다. 프로이트로부터 꿈 현상을 심리학 안에서 경험적으로 다루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프로이트를 극도로 미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증오하는 사람도 있다. 이 양 진영은 둘 다 심리학 역사에 대한 무지를 보여 주는데, 아무튼 후자의 사람들 중에는 과학자가 많다. 사실 과학을 무조건 경험적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현상을 조작 대상으로 삼는 실험 과학자인 경우, 수동적 관찰이나 진술을 청취하는 것과 같은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과학으로 무장한 꿈 연구 결과를 가지고 <꿈의 해석>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거대한 상징기호 체계이다. 또 유비에 근거한 결론이 지나친 경우가 많아 리비도와 같은 가설로 꿈 현상 대부분을 설명하려는 프로이트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또 꿈이라는 활동과 환경 사이를 매개하는 생리학적, 신경학적 연구가 결여되어 있다. 그런 연구를 중요시한 상티스는 결코 꿈을 ‘욕망 만족 현상’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 가두려 하지 않았으며, 리비도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꿈 해석의 일반 토대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상티스야말로 꿈을 심리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고, 거기서 더 나아가 꿈 현상의 과학화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는 제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잊혀 진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제 2차 대전은 어떤 의미에서 서양 학풍의 연속성을 잘라 버렸다는 점에서 문명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비극은 우리 쪽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심은 주변에서 더 잘 보일 수 있다. 또 진짜 중요한 문제들, 즉 학풍들을 산출할 수 있는 문제들도 주변이 오히려 선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땅은 어찌 된 곳인지 이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어도 발 필 구석이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학계 안이든 바깥이든 어느 곳에서나 주류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유명한 누구’에 솔깃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를 한때는 행운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저 나의 시각이 주류라는 것에 휩쓸려 있었다면 상티스를 비롯한 19세기 말 대가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탐정이 된 기분으로 그 주변을 찾아보고 평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짧은 기간이나마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중에는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성적 오르가즘보다 더 지속적인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 듣는 19세기 과학자들, 철학자들의 글을 발굴해 읽고 토론하면서 ‘이런 인물도 있었구나’를 남발하도록 만든 희열이었다. 그런 희열을 갖고 자신의 삶과 연구 분야에 정진한다면, 반드시 열매를 맺으리라 기대한다. 갑자기 말이 딴 데로 새긴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더 이상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나의 무기력함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내용적 연결성에서 구멍투성이인 이 짧은 글의 동기는 프로이트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종 ‘자신을 메시아화’하는 프로이트 저술의 문구들도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자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달한다는 그의 생각은 발달 심리학의 형성 과정에 기여했다. 다만 그의 유명세로 인해 상티스와 같은 인물이 묻히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그를 심리학사에서 다시 복권시키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대중적 유명세는 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방대한 저술은 단지 연구 과정에서 튀어 나온 복잡한 문제들, 고민들, 그리고 현상의 원인을 밝히려는 집요함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