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연역(Deduction)

착한왕 이상하 2010. 1. 12. 14:49

연역(Deduction)

 

 

1.

연역(deduction)은 전제들에 근거하여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에서 발견되는 추론 패턴을 뜻한다.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일정한 맥락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모든 동물은 죽고,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도 죽게 마련이다.’라는 연역 논증에는 사람과 동물에 관한 배경 지식이 추론의 맥락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배경 지식의 맥락 속에서 모든 동물은 죽고 사람도 동물이라는 전제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사람도 죽는다’는 결론은 확실한 것, 즉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연역 추론에 바탕을 둔 논증을 ‘연역 논증(deductive argument)’라 할 때 연역 논증은 전제부(presupposition)와 결론(conclusion)의 구조를 갖게 된다. 따라서 논증을 하고 논증을 평가는 사람들이 공유한 배경 지식의 맥락 속에서 연역에 근거한 결론은 전제부에 이미 함축된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이를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전제부에 해당하는 원을 전제들의 내용 범위라고, 결론에 해당하는 원을 결론의 내용 범위라고 한다면 결론은 내용적으로 전제부에 함축되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어떤 이들은 연역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없다거나, 심지어 논증이 구성되는 맥락을 무시한 채 연역의 결론은 필연적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뉴턴(I. Newton) 등 근대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연역했다’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렇다면 위대한 과학자들도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무관한 연역추론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무시할 수 있겠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떤 이들은 연역과 귀납의 엄격한 구분이 19세기 중엽 이후의 산물이므로 그 전 시대의 학자들이 ‘연역’과 ‘귀납’을 자의적으로 사용했다고 변호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까?

 

 

 

2.

글 [1]에서 내린 연역의 정의는 논증 과정이 아니라 논증 결과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 정의는 마치 탐정이 범인을 잡은 이후 작성한 보고서와 같은 것이지, 결코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의 기록과 같은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실제 논증(substantial argument)’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누구도 필요한 모든 전제들을 가정한 후 추론하지는 않는다. 모든 전제들이 아니라 추론에 필요한 것들이 주어지거나 추론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수집한 상태에서 추론 활동이 시작된다. 추론을 하기 위해 주어진 초기 전제들을 ‘데이터(data)’라고 할 때 데이터에서 결론을 매개해주는 기능을 하는 전제가 있게 마련이다. 후자의 전제들을 ‘보증 장치’라고 하자. 보증 장치에 속하는 진술의 역할에 따라, 결론이 데이터에 근거하는 방식, 즉 결론과 데이터가 연결되는 방식이 확실한 경우도 있고, 그럴듯한 경우도 있다. 연결방식이 확실한 경우가 연역에 해당하며, 그럴듯한 경우가 귀납에 해당하는 것이다. 연역 과정을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제 ‘새로운 사실을 연역했다’는 뉴턴의 표현을 다시 살펴보자. 데이터에 들어갈 진술로 자동차의 평균 속도 변화가 주어졌다고 하자. 자동차 운동 경로나 표면 마찰 등을 무시해도 된다는 배경지식의 맥락 속에서 뉴턴은 운동 법칙을 적용하여 자동차에 가해진 힘을 예측해낼 수 있었다. 이때 그러한 법칙을 함축한 진술은 보증 장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운동 경로나 표면 마찰 등을 무시해도 된다는 맥락 속에서 얻어진 예측, 곧 자동차에 가해진 힘은 보증 장치에 속하는 법칙을 받아들인다면 확실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뉴턴이 ‘새로운 사실을 연역했다’고 주장할 때 그는 데이터에 법칙을 적용하여 새로운, 그러나 확실한 예측 사실을 결론으로 얻어 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가설 연역추리abduction)

 

뉴턴의 사례는 ‘논증 결과’가 아니라 ‘논증 과정’ 측면에서 연역 추론의 성격을 보여준다. 논증 과정의 측면에서 연역을 정의하는 것은 새로운 예측 사실을 허락한다는 이유로 결과 측면에서 정의된 연역의 정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뉴턴의 사례에서 데이터뿐만 아니라 보증 장치에 속하는 운동 법칙도 함께 전제부에 포함시켜 보자. 이 경우, 다음의 논증 결과가 얻어진다.

 

• 자동차 평균 속도의 변화는 이러이러하다.

• 자동차에 가해진 힘은 속도 변화에 자동차 질량을 곱한 것이다

• 자동차에 가해진 힘은 이러이러하다.

 

이렇게 논증 결과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뉴턴이 예측한 새로운 사실, 즉 논증 결론의 내용은 이미 전제부에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논증 결론은 운동 경로나 표면 마찰 등을 무시하는 맥락 속에서만 확실한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논증 과정의 측면에서 연역을 이해하는 방식과 논증 결과의 측면에서 연역을 이해하는 방식은 동전의 양 측면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3.

과정이 아니라 논증 결과에 초점을 맞출 때 이상적인 연역은 그 결론이 전제부에 내용적으로 함축된 경우임을 알아보았다. 연역 논증의 형식은 이상적인 실제 연역들에서 진술의 내용을 제거하여 얻어진 까닭에 논증을 평가하는 도구는 될 수 있지만, 실제 연역 논증이 내용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로 논증 형식에 진술을 무분별하게 대입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 연역 논증을 살펴보자.

 

•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면, 사과는 붉다.

• 따라서 사과는 붉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역 논증들을 분류하여 살펴보면 어떤 형식들이 발견되는데, 위 논증에는 다음의 전건긍정 형식(modus ponens)이 발견된다.

 

• P

• P이면 Q

• Q

 

이러한 전건긍정 형식은 결론과 전제들의 맥락이나 내용적 관계를 무시하고 얻어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논증들 중 상당수가 전건긍정 형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전건긍정 형식을 알고 있는 것은 해당 논증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형식을 만족한다고 하여, 해당 논증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서 그 논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전제들과 결론 사이의 내용적 연관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논증의 평가는 이렇듯 논증을 구성하는 전제들과 결론 사이의 내용적 연관성에 의존하며, 형식은 다만 논증 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쓰여야한다.

 

연역 추론에 근거한 실제 논증이 형식에 진술을 집어넣어 얻어진 결과라는 착각이 있다. 이러한 착각에는 전건긍정 형식을 위반한 논증은 자동적으로 오류가 된다는, 즉 전제들에 근거하여 결론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는데도 마치 그러한 것처럼 주장한 오류를 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를 보기 위하여 다음 논증을 살펴보자.

 

•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신이 어떤 것을 알고 있다면,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따라서 신은 어떤 것을 알고 있다.

 

위의 연역 논증은 후건을 긍정하고 전건을 결론으로 이끌어낸 형태를 띠고 있는 까닭에 전건긍정 형식을 위반했다. 그렇다고 위의 논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실제 연역 논증의 구성에서 결론의 확실성은 데이터 및 보증 장치에 들어갈 진술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지, 또 논증 상황 및 맥락에 의존적이다. 데이터와 결론을 연결해 주는 보증 장치에 들어갈 진술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반 지식이나 특정 공동체가 합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신에 전지전능함을 부여하는 문화 공동체에게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믿음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신이 어떤 것을 알고 있다면,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진술을 데이터에 속하는 것으로 잡는 경우, 그 진술은 보증 장치에 속하는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 의해 ‘신은 어떤 것을 알고 있다’는 결론과 내용적으로 연결되게 된다. 신이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모든’의 부분에 해당하는 ‘어떤’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신의 전지전능함을 의심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위 논증이 전건긍정 형식을 어겼다는 이유로 부정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실제 연역 논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내용적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 물음을 다뤄보자.

 

 

 

 

4.

실제 연역 논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내용적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당신이 논증자라고 하자. 당신은 확실한 결론, 즉 전제들을 참으로 가정한다면 결론도 항상 참인 진술을 얻기를 원한다. 이때 당신이 거짓 진술을 데이터나 보증 장치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참으로 가정한 전제들에 근거하여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 냈을지라도,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당신이 참으로 가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제3자가 당신이 확실하다고 가정한 전제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남아 있다. 연역 논증에 대한 이러한 일반 사례는 다음을 암시한다.

 

• 실제 연역 논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내용적 평가에는 ‘약한 의미에서의 평가’와 ‘강한 의미에서의 평가’가 있다. 약한 의미에서의 평가는 데이터나 보증 장치에 속한 전제들을 참이라고 가정할 때 결론도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따진다. ‘강한 의미에서의 평가’는 데이터나 보증 장치에 속한 진술들이 논증자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고려하여 결론도 참인지를 따진다.

 

• 약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연역 논증을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valid argument)’이라고 말한다. 즉,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은 데이터 및 보증 장치에 속한 전제들을 참으로 받아들일 때 결론도 논증 맥락 속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강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연역 논증은 내용적으로 ‘건전한 논증(sound argument)’이라고 말한다. 즉, 건전한 논증은 타당한 동시에 전제들을 상호주관적 입장에서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논증을 반박하는 두 가지 방식은, 전제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거를 펼치거나 전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론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주어진 연역 논증이 타당하다면(valid argument) 결론이 전제들에 근거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까닭에, 전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거를 펼치게 된다. 이는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도 논쟁에 대해 열려 있음을, 즉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논증자가 참으로 가정한 전제를 제3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용적으로 건전한 논증(sound argument)은 상대적으로 논쟁에 대해 닫혀 있음을, 즉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적음을 의미한다. 결론이 전제에 근거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고, 또 전제들이 상호주관적 의미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논쟁의 불씨가 될 만한 것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5.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닌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와 전제들로부터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역추론의 관계를 논해보자. 개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은 개의 특징뿐만 아니라 개와 다른 대상 사이의 관계도 알고 있다. 이렇듯 개념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대상들의 특징 및 관계의 유기적인 관계망, 즉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상황의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실제 논증은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어느 개인이 연역 추론을 한다고 할 때, 연역은 그러한 구조화된 지식 체계에 큰 변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왜냐면 과정의 관점에서 연역논증을 접근할 때 이상적인 연역은 이미 확보된 법칙, 원리 등에 근거하여 새로운 예측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또한 결과의 관점에서 연역논증을 접근할 때 결론이 전제부에 내용적으로 함축되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 구조화된 지식 체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완만하든 아니면 급격하든 반드시 변화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행위가 연역추론에만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연역추론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예측하는 사고행위의 일부일 뿐이며, 인간이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형성된 ‘세계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의 바탕 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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