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유추(Analogy)

착한왕 이상하 2010. 1. 16. 15:01

유추(Analogy)

 

 

1.

유추(analogical reasoning)는 ‘유비에 근거한 추론’을 뜻한다. ‘유비 논증’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추론에 근거한 논증을 뜻하며, 이때 유추는 유비 논증 속에서 발견되는 일반 추론 패턴을 뜻하게 된다. ‘유비(analogy)’는 대상들 사이의 형태적, 관계적, 구조적 유사성을 찾아내는 인지 과정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대상’이라는 용어의 사용법은 광범위하다. ‘사고의 대상’이라는 표현에서 ‘대상’은 생각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하지만 유사성을 논할 때 대상은 주로 지각 경험에서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인지되는 것들, 곧 ‘지각 대상’들을 뜻한다. 그러한 지각 대상들 사이에 형태적 유사성이 발견될 수도 있다. 지각 대상들은 주로 시공간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한 관계들 사이에 유사성이 발견될 수 있다. 구조는 대상들이 맺는 관계들로 형성된 어떤 것을 뜻한다. 이때 구조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는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조 형성에 결정적인 관계들이 대상의 특징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상의 기능은 대상의 형태에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규정 가능한 경우가 많다. 각 대상의 고유성이 구조 속에서 유지되지만, 구조의 성격은 결코 대상의 특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적, 관계적, 구조적 유사성에 근거한 단순한 형태의 유비로 ‘사항 유비(four-term analogy)’를 들 수 있다. 사항 유비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는다.

 

• A : B = C : D (A와 B의 유사성 관계에 C와 D의 유사성 관계가 대응한다.)

 

이제 다음의 사항 유비들을 살펴보자.

 

 

 

 

 

(1)을 보면, ‘=’의 왼쪽에 크기에서만 차이가 날 뿐 형태는 동일한 두 원이 있다. 이러한 형태적 유사성에 ‘=’의 오른쪽이 대응하려면, ‘?’에 더 큰 사각형이 들어가면 될 것이다. 이때 작은 원, 큰 원으로 구성된 왼쪽과 작은 사각형, 큰 사각형으로 구성된 오른쪽 사이에는 크기 비교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2)에서 나뭇가지는 나무라는 전체 구조에 의존적이며, 나뭇가지는 나무의 부분으로 이해된다. ‘?’에는 작은 원을 포함한 원의 그림이 들어가면 된다. 이때 나뭇가지, 나무의 관계와 원, 그 원을 부분으로 포함한 원 사이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적 유사성이 발견된다. (3)을 보면, 작은 원은 레고 자동차의 바퀴로 여겨질 수 있다. 이때 (3)이 (2)와 다른 점은 대부분 사람들이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작은 원에 어떤 기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 기능은 물론 바퀴의 기능이다. 이러한 바퀴의 기능은 원형이라는 형태에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과의 관계들로 형성된 전체 구조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에는 메뚜기 다리를 포함한 메뚜기 한 마리의 그림이 들어가면 될 것이다. 바퀴가 있어야 레고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듯이, 다리가 있어야 메뚜기가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바퀴, 레고 자동차의 관계와 메뚜기의 다리, 메뚜기 전체 사이에는 기능의 측면에서의 구조적 유사성이 발견된다.

 

유사성의 관계을 맺는 대상들이 꼭 지각 대상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대상들, 관계 및 구조들은 언어적으로 표현 가능하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본 (1)~(3)의 사항 유비는 언어적으로도 표현 가능하다. 그러한 표현 가능성은 해당 대상들, 관계, 구조에 대한 용어 사용법을 통달한 사람에게 해당한다. 여가서 흥미로운 점은 (1)~(3)의 사항 유비가 반드시 언어적 능력을 전제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상들 사이의 형태적, 관계적, 구조적 유사성을 찾아내는 유비 능력은 언어 능력을 결여한 영장류 동물에게서도 나타난다. 그 만큼 유사성과 유비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 적응에 필수적인 인지 능력으로 여겨져야 한다. 비언어적 능력과 언어적 능력이 일반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기능하지 않는 까닭에, 또 학습 과정에서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이 유사성에 근거한 유비의 배경으로 작동하는 까닭에, 살펴본 사항 유비만으로는 유비에 함축된 인지 과정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유비에 근거한 추론, 곧 유추로 넘어가기 전에 유비에 함축된 인지 과정의 메커니즘을 좀 더 복잡한 사례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유비 표적(analogy target)’과 ‘유비 자료(analogy source)’라는 두 대상 영역을 가정하는 것이 유비의 인지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때 유비는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 사이의 어떤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일종의 문제 해결 과정(problem solving process)이기도 하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의 관계는 인터넷 검색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례로 실연을 당한 어떤 남자가 이성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모니터 화면에 뜨는 이성들의 모습을 보고 헤어진 애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결국 그가 이메일을 보내기로 한 이성의 얼굴도 과거의 애인과 닮아 있었다. 그가 이성 파트너를 선택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 해결해야 할 문제: 이성 파트너 찾기

• 유비 표적: 모니터 화면에 뜬 사진들

• 회상: 과거 애인의 모습을 기억해 내는 것

• 유비 자료: 과거 애인의 모습

• 사상: 유비 표적에 유비 자료를 대응시키는 것

 

그가 인터넷 검색만으로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선택하였다고 하여 파트너 찾기에 성공했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유비가 일반적으로 문제 해결 과정의 일부로 사용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유비 표적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억을 자극한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비교 기준이 될 수 있는 자료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회상이라 하며, 회상에 의해 떠올리게 되는 것이 유비 자료가 된다. 무엇을 회상하게 되는 가는 해결하려는 문제의 성격과 목적에 의존적이다. 또 문제의 상황에 따라서는 유비 자료가 유비 표적보다 먼저 주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회상의 역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추론인 ‘기억에 근거한 추론’이 유비에서 아주 중요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회상을 통해 유비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유비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문제 해결자가 표상 능력 및 배경 지식 등에 근거하여 유비 표적에 대응 가능한 자료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라는 두 대상 영역이 마련되면, 유비의 성공 유무는 사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사상(mapping)은 유비 자료에서 발견되는 형태적 특징, 관계 및 구조를 유비 표적에 대응시켜보는 과정을 뜻한다. 만약 문제 해결자가 사상에 의해 유비 자료와 유비 표적 사이의 대응 관계를 얻지 못한다면 유비 자료를 찾는 단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아니면 문제 해결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유비 메커니즘의 핵심은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 사이의 사상 관계이며, 이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유비 표적과 자료 중 무엇이 먼저 마련되거나 주어지는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성격 및 목적에 의존적이다. 사항 유비 문제의 경우, ‘=’를 기준으로 왼쪽을 유비 자료로 여기면 오른쪽이 유비 표적이 되고, 이 역도 성립한다. 이렇게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가 교차 가능한 유비를 대칭적(symmetrical)이라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대다수 유비는 비대칭적이다. 유사한 것, 특히 하나의 범주로 분류 가능한 것 사이의 비교가 유비라는 생각은 유비를 둘러싼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이다. 형태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대상도 유비 맥락에 따라서는 유사성의 관계를 맺게 된다. 유비 자료에 유비 표적을 사상시킬 때 그러한 사상은 일반적으로 특정 목적이나 관점에 의존적이다. 유비 자료와 유비 표적을 구성하는 대상들은 특정 목적이나 관점에 따라 형태적, 관계적, 구조적 유사성을 띠게 된다. 특히 형태적으로 전혀 다른 대상들 사이에 관계적, 구조적 유사성이 발견될 수 있다.

 

유비를 둘러싼 또 다른 오해는 유비 표적이나 유비 자료를 구성하는 대상 및 대상들의 관계가 정적이라는 생각이다. 유비 표적은 대상의 형태 변화, 대상들의 유기적 관계로 구성된 구조 자체의 변화 등도 포함한다. 이러한 경우,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정보의 단순화 및 추상화 능력을 발휘하여 유비 표적과 자료를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표상으로 재구성해낼 수 있어야 한다. 실례로 경제 성장으로 인해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 중산층이 늘어난 과정을 유비 표적으로 잡아보자. 이때 부의 재분배로 인한 중산층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질까? 문제 해결자가 프로그래머라면, 해당 유비 표적을 다음과 같이 표상할지도 모른다.

 

• 원인1(경제 성장, 부의 재분배)

• 원인2(부의 재분배, 중산층의 확대)

 

 

 

 

 

문제 해결자는 마라톤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마라톤 인구수가 늘어났고 그들의 평균 완주 속도도 향상했다는 배경 지식을 갖고 있다. 문제 해결자는 마라톤 인구수가 어느 선에 다다르면 더 이상 늘지 않고, 또 인간의 육체적 한계로 인해 평균 완주 속도의 향상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비 자료를 구성해냈다.

 

• 원인1(마라톤이 건강에 좋다는 소식, 마라톤 인구수 확대)

• 원인2(마라톤 인구수 확대, 평균 완주 속도의 일시적 향상)

 

문제 해결자는 유비 자료에 유비 표적을 사상시켜 경제 성장에 의한 부의 재분배가 가져올 중산층 확대는 계속 지속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지금 살펴본 것은 ‘유비에 근거한 추론’, 곧 유추의 한 사례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유추 전체를 대표하기보다는 ‘부분 정보의 전이’라는 유추의 한 종류에 속할 뿐이다. 이 점은 이어지는 글에서 분명해질 것이다.

 

 

 

3.

유추는 유비에 근거한 추론을 뜻한다. 유추에 유비가 내재하는 까닭에, 유추의 핵심은 ‘유비 자료에 유비 표적’을 사상시킨 것에 근거한다. 유비 표적과 자료가 미리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실제 문제 해결 과정과 맞물린 대부분의 유비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비 표적과 자료가 미리 주어지지 않은 경우, 즉 유비가 문제 해결과 맞물린 경우만을 고려할 것이다. 유추에 필요한 유비와 맞물린 문제는 직접적으로 가설 생성을 유발시키는 종류의 문제와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다음 두 물음을 살펴보자.

 

• 암영대(暗影帶)에서는 지진파가 발견되지 말아야 하는데 미세한 지진파가 관측되었다. 왜 그럴까?

 

• 크로커다일은 앨리게이터와 겉모양뿐만 아니라 해부학적으로도 비슷하다. 크로커다일도 앨리게이터처럼 알을 낳을까?

 

암영대와 관련된 첫째 물음을 살펴보자. 암영대에서 미세한 지진파가 관측되었다는 것은 관측자가 고의적으로 거짓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암영대에서는 지진파가 발견되지 말아야 한다는 기존 믿음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암영대에서 미세한 지진파가 관측되었다는 사실은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은 그러한 설명을 찾기 위해 던져진 것이고, 그러한 설명을 찾는 과정에서 지구내핵(地球內核) 가설이 얻어졌다. 이때 암영대와 관련된 물음은 설명을 요구하는 사실 자체의 성격에 기인한다.

 

크로커다일과 관련된 둘째 질문을 살펴보자. ‘크로커다일도 앨리게이터처럼 알을 낳을까?’라는 물음은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가 겉모양뿐만 아니라 해부학적으로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즉, 그 사실은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렇듯, 유비를 둘러싼 문제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사실들과 관련된다. 데이터가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추론 및 추리의 경우는 ‘단일 가설 생성 추리’를 다룰 때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는 추론을 하기 위한 데이터가 된다. 이때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된 데이터, 곧 유추의 데이터는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로 국한하자. 이는 그러한 데이터를 얻는 과정인 유비와 맞물린 문제가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된 데이터에 결론이 내용적으로 함축된 경우, 해당 결론은 추론 맥락 내에서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추가 항상 그럴듯한 결론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에 결론이 함축된 경우의 유추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해당 유추에 내재된 유비도 일상적 혹은 전문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여지도 거의 없다. 그러한 유추의 결론은 대부분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된 데이터를 서술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이 주어진 맥락에서 그럴듯하게 귀결되는 경우로 유추 및 유비 논증을 국한하자. 데이터에 근거하여 이끌어낸 결론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유추는 귀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추론 및 논증 맥락에 따른 결론의 확실함 혹은 그럴듯함 여부가 아닌 추론 패턴에 주목하는 경우, 유추, 곧 유비 논증 속에서 발견되는 추론의 일반 패턴은 다음과 같다.

 

 

 

 

 

유추의 일반 패턴을 나타낸 위 도식에서 데이터는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에 매개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주는 보증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보증 장치에는 일반 믿음이나 통념, 특정 가설, 은유를 함축한 진술들이 들어가게 된다. 데이터에 보증 장치가 매개하여 얻어진 결론은 논증 및 추론의 맥락 속에서 받아들이기에 확실한 것 혹은 그럴듯한 것으로 평가된다.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하는 진술들 모두를 전제부로 올리고 전제들과 결론의 관계를 따지는 관점, 곧 결과의 관점이 아니라 과정의 관점에서 논증 및 추론을 접근할 때 논증 및 추론이 데이터, 보증 장치, 결론으로 구성된 맥락을 형성하며, 그러한 형성은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에 의존적이다. 이 점은 귀납, 연역, 유추 모두에 해당한다. 그러나 귀납이나 연역의 데이터는 논증 및 추론을 시작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유추의 데이터는 특정 문제와 맞물린 유비 과정을 통해 조직화된 성격을 갖고 있다. 유추의 데이터는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유추가 귀납이나 연역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그 추론 패턴이 일방향성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유추의 결과로 얻어진 결론은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된 데이터에 영향을 끼친다. 데이터에서 결론으로 향하는 추론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과 관련된다. 반면에 그렇게 얻어진 결론은 내용적으로 데이터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 방식은 크게 ‘부분 정보의 전이(partial information transfer)’, ‘구조 규정의 전이(structure regulating rule transfer)’, 그리고 ‘통합(integration)’으로 크게 나뉜다.

 

• 부분 정보의 전이: ‘부분 정보’는 유비 자료에 속한 대상의 특정 속성 혹은 대상들의 관계를 뜻한다. 유비 자료가 유비 표적보다 더욱 풍부한 정보를 함축한 경우, 유추에 의해 얻어진 결론은 그러한 정보 중 일부를 유비 표적에 대응된 대상이나 대상들의 관계에 부여하는 기능을 갖는다. 유비 표적으로 크로커다일의 겉모습과 해부학적 자료가 주어졌다고 하자. 크로커다일도 난생 동물일까? 문제 해결자가 앨리게이터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하자. 앨리게이터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비 자료가 구성되고, 이러한 유비 자료에 유비 표적이 사상된다. 문제 해결자는 유사한 겉모양과 해부학적 구조를 띠는 동물들은 생식 및 번식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보증 장치로 하여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로 구성된 데이터는 ‘크로커다일도 난생 동물이다’라는 결론과 연결된다. 이때 유비 자료의 부분 정보인 난생 동물이라는 속성은 유비 표적으로 전이된 것이다.

 

• 구조 규정의 전이: ‘구조 규정’은 유비 자료의 관계들로 구성된 구조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유비 자료에 유비 표적이 사상된 방식에서 둘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자. 이때 유비 자료의 구조를 규정하는 방식이 유비 표적에도 해당한다는 식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한 결론이 얻어진 경우, 유비 자료의 구조를 규정하는 방식은 유비 표적에 전이된 것이다. 여러 과학적 발견이 유추에 근거한다고 할 때 해당 유추는 ‘구조 규정 전이의 기예’라 할 수 있다. 과학사에서 이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18세기 유체역학은 당시 물체(body)에 적용되었던 에너지보존법칙, 곧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가 보존된다는 법칙을 유체 영역에 확대시킨 결과로 얻어졌다. 그러한 에너지보존법칙은 물체의 운동 현상을 규정해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체의 운동 현상을 유비 자료라 할 때 유체의 현상이 유비 표적이 되는 것이다. 정압은 정지된 상태의 유체 전체의 압력이다. 정압 중 일부가 동압으로 전환되면, 그 만큼의 압력 차는 유체의 흐름으로 변환된다. 정압을 위치에너지에, 동압을 운동에너지에 대응시킨 경우, 정압과 동압의 합은 일정하게 보존되는 것으로 가정된다. 즉,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합이 일정하게 보존된다는 물체 영역의 보존법칙이 유체 영역으로 전이된 것이다.

 

• 통합: 부분 정보의 전이나 구조 규정의 전이에 의해 유비 자료와 유비 표적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체 역학은 유체의 운동에만 적용된다.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이 보존된다는 법칙은 물체의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성공적일 수도 있고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통합하려는 시도에는 은유가 종종 사용된다. 실례로 ‘하나의 기원’이라는 은유를 들 수 있다. 물체와 유체 모두 하나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유체 또한 작은 물체, 곧 입자들의 덩어리라는 가정을 결론으로 얻어낼 수 있다. 아니면 둘 다 에너지라 불리는 것의 서로 다른 상태라는 가정을 결론으로 얻어낼 수 있다. 그러한 가정에 의해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는 통합된다. 이러한 통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유추 자체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다.

 

유추에 유비가 내재적인 까닭에, 혹은 유비 없는 유추는 불가능한 까닭에, 유추의 잘못된 결론은 잘못된 유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유비가 오류를 함축한 것인지를 결정해주는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한 결정은 유비 맥락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유비가 정합적으로 얻어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유비 표적과 유비 자료의 구조적 유사성을 논할 때 구조를 형성하는 대상들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비는 자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또 유비 자료의 대상의 성질 및 성향이나 관계는 유비 자료 영역 외부와 단절된 것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성질 및 성향이나 관계가 마치 유비 자료의 고유한 속성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 유추에 의한 부분 정보나 구조 규정의 전이는 유비 표적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사례는 이어지는 예제에서 살펴볼 것이다.

 

 

 

4.

과정이 아닌 결과의 관점에서 유추를 접근할 때, 곧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하는 것 모두를 전제부에 위치시킬 때 유추는 귀납의 일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유추의 결론은 전제들에 근거하여 그럴듯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의 관점에서 논증 및 추론을 접근할 때 유추의 데이터는 귀납이나 연역과 달리 주어진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유추의 데이터는 특정 문제와 맞물린 유비를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또 유추의 일반 패턴은 귀납이나 연역의 추론 패턴과도 다르다. 귀납과 연역은 데이터에서 시작하여 결론으로 종결되는 일방향성 추론 패턴을 보여준다. 반면에 유추의 결론은 데이터 자체를 설명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 데이터에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를 구성하는 유비 자료의 정보는 유추에 의해 유비 표적으로 전이 되거나, 유비 자료 구조 전체의 규정 방식이 유비 표적으로 전이된다. 또 은유 등의 도움을 받아 얻어진 결론은 유비 자료와 유비 표적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유비는 부분 정보 전이의 기예, 구조 규정 전이의 기예 혹은 통합의 기예로 여겨질 수 있다. 모든 실제 추론이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특정 지식 체계에 의존하는 까닭에, 유비가 그러한 지식 체계의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귀납이나 연역보다 훨씬 강하다. 대상을 분류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지식 체계의 수정과 역동적 변화를 귀납과 연역에 국한하여 다루겠다는 발상은 스스로의 무지를 자랑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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