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귀납(Induction)

착한왕 이상하 2010. 1. 15. 15:57

귀납(Induction)

 

 

 

1.

논증은 전제들에 근거하여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논증 상황 및 맥락에 따라 결론이 확실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고,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경우를 연역 논증, 후자의 경우를 귀납 논증이라 한다. 그러나 결론이 그럴듯하게 끝나는 모든 논증이 항상 귀납 논증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알기 위해 먼저 연역과 귀납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논증 결과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연역과 귀납의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논증 결과는 전제부와 결론으로 구성되는데, 전제부의 내용 범위와 결론의 내용 범위를 각각 원으로 처리해 보자. 이때 이상적인 연역은 논증 맥락 속에서 결론이 내용적으로 전제부에 함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에 귀납은 그 결론이 전제들을 증거로 하여 그럴듯한 것으로 끝나는 까닭에 전제부에 내용적으로 함축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를 도식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식에서 왼쪽은 연역을, 오른쪽은 귀납을 나타낸다. 귀납 논증의 경우, 전제들은 결론에 대한 증거나 근거가 될지라도 결론을 확실한 주장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 따라서 귀납 추론의 결론은 전제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 전제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귀납 추론은 ‘확장적 추리(ampliative reasoning)’을 대표한다. 도식의 오른쪽은 이를 표상한다.

 

전제들에 근거한 결론이 그럴듯하게 끝나는 맥락이 항상 귀납 논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확장적 추론이 개입된 논증이라고 하여 자동적으로 귀납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이 점은 결론이 그럴듯하다는 점에서 귀납과 유사하면서도 구분될 필요가 있는 다른 종류의 추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추리로 유추와 가설 생성 추리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추리와 귀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연역과 귀납의 공통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공통점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측면에서 논증을 접근할 때 잘 드러난다.

 

논증에 필요한 모든 전제를 알고 논증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알고 논증을 시작한다는 것은 화가의 초기 구상이 마지막 결과물로서의 그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논증을 시작하기 위한 초기 전제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전제들은 논증을 시작하기 위한 초기 조건과 같기 때문에 ‘데이터’라 불린다. 데이터가 합당한 결론으로 이어지려면, 데이터에서 결론을 매개해 주는 진술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진술들은 ‘보증 장치’라 부른다. 이제 다음과 같은 하나의 내용적 추론 패턴이 얻어진다.

 

 

논증 결과가 아닌 과정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연역과 귀납의 차이는 ‘?’이 담당하는 기능, 즉 데이터들에서 결론을 매개해 주는 보증 장치의 기능으로 나타난다. 연역에서 그 기능은 데이터에 근거하여 결론을 확실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면, 귀납에서 그 기능은 그럴듯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데이터에 속하는 진술들과 보증 장치에 속하는 진술들 모두를 전제부에 위치시키는 논증 결과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나타나는 연역과 귀납의 차이에 대응한다. 하지만 논증 과정의 측면에서 연역과 귀납은 다음의 공통점을 갖는다.

 

• 연역이든 귀납이든, 데이터에 들어가는 것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어진 것’으로 취급된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데이터에서 보증 장치를 매개로 결론에 이르는 내용적 추론 패턴은 기본적으로 일방향성이다. 즉, 추론 패턴의 방향은 데이터에서 결론으로 향할 뿐 결론이 데이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공통점에 주목하는 경우, 연역과 귀납의 차이는 생각보다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실제 논증은 항상 논증 맥락 및 상황에 의존적인 까닭에, 딱히 연역과 귀납 중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특히 실제 논증이 항상 내용적으로 일방향성 추론이나 추리 패턴을 갖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결과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모든 논증은 전제부와 결론의 구조를 보이지만, 과정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일방향성 추론 패턴보다는 순환성 추론 패턴을 띠는 ‘유추(analogical reasoning)’나 ‘가설 생성 추리(hypothesis generating reasoning)’가 일상생활에서 더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역과 귀납의 내용적 추론 패턴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먼저 다룰 것이다. 그러한 미묘한 차이는 추론 과정의 바탕인 지식 체계(데이터)에 역으로 연역과 귀납이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관련된다.

 

 

 

2.

대상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만 개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연역과 귀납을 포함한 모든 추론 및 추리 활동은 그러한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논증 과정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연역과 귀납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고 활동에서 연역과 귀납이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와 맞물려 기능하는 방식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다음 두 논증을 비교해 보자.

 

<엑스몬드 논증>

• 데이터: 엑스몬드는 실험실에서 새로 합성된 원소 ‘엑스(X)’의 결정체다.

• 보증 장치: 원소 엑스는 불에 잘 타는 성질을 갖고 있다.

• 결론: 엑스몬드는 불에 잘 탄다.

 

<엑스프레이 논증>

• 데이터: 몸싸움과 민첩성이 요구되는 농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관절 통증을 자주 호소한다.

새로 나온 스프레이제 ‘엑스프레이’는 선수들의 관절 통증을 감소시켜 준다.

농구 선수들의 관절 통증은 관절염 증세와 비슷하다.

• 보증 장치: 어떤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약품은 유사한 증상에도 효과가 있게 마련이다.

• 결론: 엑스프레이는 어머니의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엑스몬드 논증>은 전형적인 연역에, <엑스프레이 논증>은 진단 논증의 일종으로서 귀납에 속한다. 무엇이 논증을 시작하기 위한 데이터로 주어지는지, 혹은 데이터에서 결론을 매개해주는 보증 장치에 속하게 되는지는 논증 맥락 및 상황에 의존적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위한 일반 지식, 공동체 유지를 위한 사회적 지식, 그리고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 지식 등이 보증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엑스몬드 논증>에서 논증자는 원소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데이터에서 확실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때 원소에 관한 지식 체계는 예측에 사용된 것이다. 반면에 <엑스프레이 논증>에서 보증 장치의 진술은 일상생활에 유용한 격언과 같은 것 혹은 일반 지식에 해당한다. 논증자는 그러한 일반 지식을 바탕으로 데이터에서 그럴듯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여기서 다음 두 질문을 던져보자.

 

• 데이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엑스몬드가 불에 타지 않는다는 반례(counter example)가 발견된 경우, 보증 장치와 관련된 지식 체계는 어떻게 되는가?

 

• 데이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엑스프레이가 어머니의 관절염에 효과가 없다는 반례가 발견된 경우, 보증 장치와 관련된 지식 체계는 어떻게 되는가?

 

<엑스몬드 논증>에서 보증 장치와 관련된 지식 체계는 확실한 예측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 결론에 반하는 사례의 발견으로 인해 해당 지식 체계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결론에 대한 반례는 논증자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그의 지식 체계의 부분인 화학 지식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수정하도록 하는 압력으로는 작용할 수 있지만 지식 체계를 대체하거나 수정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을 주기 어렵다. 왜냐 하면, 주로 예측 활동과 관련된 연역 추론의 성공과 실패를 바탕으로 논증자가 전제로 사용했던 지식 체계의 안정도는 평가할 수 있지만, 주어진 사실에 함축된 결론은 이끌어내는 연역 추론을 통해 주어진 지식체계 자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연역만으로는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의 변화를 다룰 수는 없다.

 

연역과 달리 귀납은 부분적으로나마 지식 체계의 수정 과정과 관련된 추론 방식이다. <엑스프레이> 논증에서 보증 장치와 관련된 일반 지식 체계는 데이터에 근거하여 그럴듯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 결론에 반하는 사례의 발견은 연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증 장치와 관련된 지식 체계를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으나, 많은 양의 반례가 축적되지 않는 한 그 지식 체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즉, 결론이 단 몇몇 반례에 의해 반증되더라도, 논증자는 해당 지식 체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당신이 신선하고 연한 고기가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는 일반 지식에 따라 백화점의 고기를 샀다고 하자. 하지만 때로는 숙성되어 빛깔이 짙어진 된 고기보다 바로 제공된 신선한 빛깔의 고기가 건강에 더 해로울 수도 있다. 이러한 반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신선하고 연한 고기가 건강에 좋다는 일반 지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이 삶에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엑스프레이 논증> 결론에 대한 반례가 어떤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약품이 유사한 증상에도 효과를 보이게 마련이라는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결론에 대한 반례의 발견이나 발생은 논증에 개입된 지식 체계의 일반 믿음 등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역의 경우, 그러한 반례의 발견이나 발생은 논증에 개입된 지식 체계의 결함을 보여줄 뿐 새로운 가설의 생성 및 지식 체계의 수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귀납에서 그러한 반례의 발견이나 발생은 논증에 개입된 지식 체계의 일반 믿음의 신빙성을 약화시키며, 이것은 귀납의 내재적 특징으로 여겨진다. 또 결론에 일치하는 사례의 발견이나 결론을 확신하는 것은 그러한 신빙성을 강화시켜 준다. 이는 연역과 달리 귀납에서는 결론과 보증 장치가 상호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논증 결과가 아니라 논증 과정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귀납은 연역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에서 결론으로 향하는 일방향성 추론 패턴을 갖는다. 하지만 결론의 반증 여부에 따라 결론은 보증 장치로 사용된 것의 신빙성 정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엑스프레이 논증>에서 엑스프레이가 정말 관절염 치료에 효과를 보인다면, 어떤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약품이 유사한 증상에도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보증장치에 대한 논증자의 믿음은 강화될 것이고, 반면에 엑스프레이가 관절염 치료에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면, 보증장치에 대한 논증자의 그 믿음은 약화될 것이다.

   

 

 

3.

연역이든 귀납이든, 데이터의 진술들은 새로운 설명이나 추측을 촉발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연역과 귀납의 데이터가 기존의 지식 체계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귀납도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의 변화를 다루는 데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귀납의 결론은 기껏해야 데이터에 매개하여 결론을 이끌어내 주는 보증 장치의 신빙성에 영향을 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납만으로 지식 체계의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에 대한 강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낼 것이다. 그는 귀납에 대한 다음의 편협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 귀납은 기본적으로 관찰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

곧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 과정’이다.

 

• 모든 일반 지식은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 과정의 산물이다.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 과정으로서의 귀납은 열거적 귀납에 해당한다. 까마귀의 관찰을 통해 모든 까마귀는 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열거적 귀납(enumerative induction)을 대표한다. 열거적 귀납이 귀납 추론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착각이다. 귀납에는 열거적 귀납, 제거적 귀납(eliminative induction), 진단 논증, 권위에 호소한 논증, 인과 논증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또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의 변화가 오로지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 과정의 산물로만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것은 더더욱 큰 착각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중요한 과학적 가설이 관찰에 근거한 일반화의 산물이라 여긴다. 당신이 조류학자라고 해보자. 당신은 동종에 속한 새들이 유사한 표현형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관찰을 통하여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결론은 당신에게 그리 중요한 발견이 될 수 없다. 또 흰 까마귀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동종에 속한 새들이 유사한 표현형을 갖고 있다는 믿음에 대한 그의 신빙성이 약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똑같은 표현형이 아니라 유사한 표현형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이미 반례의 경험 속에 굳어진 것이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조류학자로서 그는 차라리 색, 꼬리 모양, 발가락 수와 형태와 같은 여러 표현형 중 무엇이 분류에 효과적인가라는 물음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는 각 표현형과 관련된 관찰과 시행착오를 통해 종 분류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게 되는데, 이러한 종류의 귀납을 제거적 귀납이라 부른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귀납을 강조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귀납은 열거적 귀납이 아니라 제거적 귀납에 가까웠다.

 

열거적 귀납이 귀납을 대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을 예측하는 추론 활동으로 단순화시킨 연역의 정의에 가장 잘 대비되는 것이 열거적 귀납인 까닭에 지난 세기 동안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나 과학적 발견에서나 여러 종류의 귀납 중 열거적 귀납의 사용 빈도가 가장 낮을 것이다. 따라서 귀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납의 종류가 다양함을 인정해야 한다. 귀납의 종류 다양성을 인정할 때 다음과 같은 귀납의 성격을 파악하게 된다.

 

• 귀납을 통해 얻는 새로운 지식이란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된 지식,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방법들 중 하나를 골라낸 것, 경험에 근거한 진단 및 원인 추정 등이며, 결론의 반증 유무에 따라 논증에 개입된 일반 지식이나 믿음의 신빙성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귀납의 종류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의 역동적 변화를 귀납만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귀납에 의한 결론의 반증 유무에 따른 특정한 일반 믿음이나 지식의 신빙성 정도의 변화만 가지고 지식 체계의 역동적인 성장 및 변화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설명은 정보의 분류, 조직화, 재배열, 특정 영역에 잘 적용되는 이론을 다른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것, 여러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해 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가설로 인한 지식 체계의 재조직화 등을 다뤄야 한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논증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반면에 유추나 가설 생성 추리에서 전제로 간주되는 데이터는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보의 이동이나 재배열 및 설명을 요구한다. 이는 유추나 가설 생성 추리라는 사고 활동이야 말로 세상에 대해 구조화된 지식 체계의 역동적인 변화 가능성과 밀접히 맞물려 있음을 반영한다. 따라서 유추와 가설 생성 추리 모두 자세히 분석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연역이나 귀납과는 다른 추론 패턴을 갖는 가설 생성 추리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기 위해 하나의 사례만을 분석한다.

 

<베게너의 사례>

과거에 대륙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도를 살펴보면 여러 대륙의 경계면이 서로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 사실은 설명을 요구한다. 왜 대륙의 경계면은 서로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독일의 기상학자 베게너(A.I. Wegener)는 여러 대륙에서 나타나는 화석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모든 대륙이 하나의 거대한 대륙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대륙 이동설’을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 가설을 믿지 않았다. 베게너는 사람들의 선입관을 뒤로 한 채 남극 탐험을 떠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려다 얼어 죽었다. 해저 대류 현상에 의해 대륙이 움직인다는 사실은 그가 죽은 뒤 100년이 지나서야 검증되었다.

 

위 사례에서 여러 대륙의 경계면이 서로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은 주어진 사실이지만 당시 지식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주어진 그 사실을 데이터로 잡자. 이때 그 사실은 설명을 요구한다. 베게너는 여러 대륙에서 나타나는 화석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대륙 이동설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을 세웠다. 그러한 가설은 일단 왜 여러 대륙의 경계면이 서로 잘 맞아 떨어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러한 단일 가설 생성 추리는 다음과 같은 순환적 추론 패턴을 보여준다. 

 

 

가설 생성 추리의 결론도 그럴듯한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데이터의 성격은 귀납과 다르다. 데이터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요구한다. 화석의 유사성과 같은 단서를 바탕으로 생성된 가설은 그냥 결론을 끝나지 않는다. 가설은 일단 데이터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그럴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가설 생성 추리는 연역이나 귀납과 달리 데이터에서 결론으로 향하고, 다시 결론에서 데이터로 귀환하는 ‘순환성 추론 패턴’을 보여준다.

 

 

  

4.

논증 평가의 기본은 데이터와 보증 장치로 사용된 전제들을 받아들일 때 결론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를 ‘약한 의미의 평가’라 한다. 논증이 약한 의미를 평가를 통과하더라도, 그 전제들이 논쟁자뿐만 아니라 제3자가 합의 가능한 것인지가 논란의 여지로 남게 된다. 약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논증을 대상으로 상호주관적 차원에서 그 전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강한 의미의 평가이다. 연역의 경우, 약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논증을 내용적으로 ‘타당한 연역 논증’이라 하며, 강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논증을 ‘건전한 연역 논증’이라 한다. 귀납의 경우, 약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논증을 내용적으로 ‘강한 귀납 논증(strong inductive argument)’이라 하며, 강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논증을 ‘설득력을 갖춘 귀납 논증(cogent inductive argument)’이라 한다.

 

내용적으로 타당한 연역 논증의 경우, 일단 논증자의 전제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결론도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전제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는 그 결론에 대한 예외적 사례나 반례를 허락하기 힘들다. 이는 결론이 전제들에 근거한 방식, 곧 전제들과 결론의 내용적 연결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반면에 내용적으로 강한 귀납 논증이라는 것은 결론의 그럴듯함을 주장하기 위한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전제들을 일단 받아들인 상태에서도 결론에 대한 직접적인 반례를 제시할 수 있다.

 

건전한 연역 논증은 상호주관적 차원에서 합의 가능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결론에 대한 예외적 사례나 반례를 허락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안정화되어 있다. 반면에 설득력을 갖춘 귀납 논증의 경우, 전제들에 대해 서로 합의하였다고 하더라도 반증의 여지는 남아있게 된다. 왜냐 하면, 귀납의 결론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것이기 때문이다.

 

• 약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강한 귀납에서 ‘강하다는 것’은 특히 데이터의 전제들이 결론의 그럴듯함에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강한 귀납에는 증거의 충분성에 따른 정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많은 증거를 확보한 귀납일수록 더욱 강한 귀납이 된다.

 

• 강한 의미의 평가를 통과한 귀납은 결론에 대한 증거로 여겨지는 데이터의 진술뿐만 아니라, 데이터에 매개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된 보증 장치의 진술이 논증자와 제3자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해당 귀납 논증은 설득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연역과 달리, 강한 귀납이나 설득력을 갖춘 귀납 모두 그 ‘결론이 단 하나의 반례 제시만으로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귀납의 결론은 내용적으로 데이터 및 보증 장치의 진술들로 구성된 전제부에 함축된 것으로, 즉 확실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반례에 의해 결론이 직접적으로 반증될 수 있다는 ‘귀납의 반증 가능성’이라는 성격을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단 하나의 반례에 의해 귀납의 ‘결론’이 부정되는 경우에도, 데이터에 매개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한 보증 장치의 일반 지식이나 믿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으며, 결론에 대한 반증이 귀납논증 과정 자체를 부정하도록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5.

연역 논증과 관련하여 ‘연역 논리’라는 것이 있듯이, 귀납 논증과 관련하여 ‘귀납 논리’ 혹은 ‘확률 논리’라는 것이 있다. 엄격히 말하면, ‘형식 연역 논리’, ‘형식 귀납 논리’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살펴본 추론 패턴은 어디까지나 실제 논증의 맥락에서 발견되는 것인 반면, 형식 연역 논리나 형식 귀납 논리는 논증 맥락의 구성 방식이나 내용을 제거하고 얻어진 형식 추론이나 확률 계산 절차를 다룬다.

 

형식 추론이나 확률 계산 절차는 내용을 제거하기 위한 조건들, 실례로 진술에서 가능성, 당위성, 시제 등을 제거하거나 진술의 그럴듯함을 오로지 주관적 믿음의 정도로 간주하는 조건들 아래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에, 실제 논증이 그러한 절차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형식 추론이나 확률 계산 절차는 그런 조건들을 만족하게끔 만들어진 ‘수학적 모델(mathematical model)’처럼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조건들을 택하는가에 따라 형식 추론 및 확률 계산 절차가 달라진다. 따라서 그러한 절차가 인간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들거나 어떤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추론 및 추리가 형식 연역 논리나 확률 계산 절차에 따른 결과는 아닌 것이다. 실례로 강한 귀납을 확률 계산 절차에 따라 해석하는 경우, 다음의 기준이 가능하다.

 

P(c/e) > P(c) (‘c’는 귀납의 결론을 뜻하며, ‘P(c)’는 그 결론에 부여된 확률값이다, 반면에 ‘P(c/e)’는 ‘데이터의 증거 e를 바탕으로 한 결론 c’의 확률값이다.)

 

실제 논증의 전제들과 결론의 내용 및 그 내용적 관계를 무시한 이러한 형식 기준만으로는 주어진 귀납이 강한 것인지 혹은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없다. 우선 데이터가 결론에 대한 증거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단순히 확률값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매개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주는 보증 장치의 역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해당 논증의 설득력 평가에서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한 전제들에 대한 상호주관적 의미에서의 합의 가능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확률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P(c/e)’나 ‘P(c)’가 믿음의 정도와 관련된 주관적 확률과 자연 빈도수와 관련된 객관적 확률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를 위의 기준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어떤 확률 개념을 택하는가에 따라 해당 수학적 모델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훌륭한 논증을 펼치고 싶은 사람은 실제 논증과 실제 논증 맥락에서 추상화된 수학적 모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연역은 형식 연역 논리의 절차에 진술을 무분별하게 대입한 것, 귀납은 확률 계산식에 따른 논리의 일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실제 논증다운 논증도 펼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식 연역 및 형식 귀납 논리의 절차들도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훌륭한 논증을 펼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연역과 귀납의 구분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근거나 증거를 결여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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