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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 원래 인터뷰 내용(386 운동권과 사교육 시장)

착한왕 이상하 2013. 4. 5. 00:04

 

갑자기 한겨레 소속 ‘나들’에서 인터뷰 하자는 요청을 받았다. 누구 소개로 나를 추천받았다고 했다. 그 사람을 봐서 응하기로 했지만, 막상 인터뷰 주제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386 운동권과 사교육 시장’ 뭐 이런 주제라는데, 나는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또 입시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인터뷰 관련 질문을 미리 알았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인터뷰 질문들을 보니, 이미 쓸 내용이 정해져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 시장을 장악한 386 운동권 출신들 추적하고, 그 출신들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후, 과거 사교육 시장에서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교육 평론가로 변신한 누구의 증언을 들려주고 나서, 치마 바람에 바지 바람까지 가세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사교육 시장을 파헤치다.’ 이런 ‘개쓰레기 내용’의 기사를 기획하고 있음은 질문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아무리 이 땅에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자일지라도 그런 기획성 전략에 넘어갈 바보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말할 것은 어차피 기사화되지 않을 테니, 당시 그것을 대충 적어 놓았다. ‘나들’이라는 잡지와 나왔다니, 당시 내가 말한 것을 여기에 공개한다. 대충 쓴 것이라 가독력을 높이기 위한 글 수정은 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 386 운동권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했다는 말이 7~8 전부터 나왔습니다. 맞는 얘기인가요?

글쎄요, 7~8년 전이라면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문 및 방송을 보면 ‘사교육 시장을 점령한 운동권’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저는 대학에 비전임 연구 교수직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뭘 할까 고민했던 시기입니다. 지금은 이미 포기한 꿈이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 정말 연구소다운 연구소를 만들어보자, 뭐 이런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자’, 이런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 때였던 지라 아동, 성인 교육 시장 동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재원을 마련할 곳이 제 능력으로는 그 시장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육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았는데, 아무리 사교육 시장이 입시 위주로 흘러간다고 해도 콘텐츠다운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곳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교육 환경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대부분 대형 사교육 업체나 대형 학원은 향후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었죠. 그리고 그 예측이 지금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386 운동권이 사교육 시장을 지금도 장악하고 있는가? 그 시장을 메뉴판에 비유한다면, 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 업체의 CEO나 대형 학원 원장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운동권 출신이 여전히 많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사교육 시장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업체 몸집을 줄이거나 역으로 외형을 확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7~8년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작년 사교육 시장 규모는 32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장 비율은 하향 추세이며, 또 늘어난 업체와 학원 수를 감안한다면 사교육 업체나 대형 학원의 매출은 더욱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CEO나 학원 원장들의 수입원은 중고등학교 입시 시장이었습니다. 그 시장이 쉬운 수능, 수시 전형 확대, 다양한 입시 전형 이외에 ‘저출산 및 사회 양극화’로 대변되는 사회 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축소되고 있는 판국입니다. 쉽게 말해, EBS라는 또 다른 괴물이 그들의 몫 일부를 채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2011년의 경우,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약 84%로 중고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을 압도합니다. 또 취업난으로 인해 20대 성인 교육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초등학교 및 성인 시장을 386 운동권이 장악하지 못한다면, ‘사교육 시장을 장악한 386 운동권’과 같은 기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사가 사라지게 되는 경우,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386 운동권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제 의견이나 교육 정책 및 현 사교육 시장의 문제점은 이어지는 얘기에서 할 기회가 있겠죠.

 

 

- 386 운동권 중에 사교육 시장에서 활약 중인 이들은 누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는 메가스터티 손주은 대표? 대표적인 인물과 학원을 꼽으라면요?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손주은, 요새 고민이 많을 겁니다. 한때 아시아나항공 주가보다 비쌌던 메가 스터디 주가가 요즘은 6만 원대에서 더욱 하락 조짐을 보이니까요. 박학천, 조동기 등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두 분은 사업 망했다고 봐야 하구요. 기타 유레카, 초암 논술 학원 등 여러 대형 논술 학원들 원장들 중에 상당수가 사교육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전부 요즘 벌이가 옛날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 사교육 시장 전면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대치동 등 학원가에서 여전히 잘 나가는 학원 원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부러 규모를 크게 확대하지 않고 적정 수준을 유지하며 교육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한 이들입니다. 온라인 인강 시장 스타 강사들 중 일부도 386 운동권 출신입니다. 물론 인강 시장 특성상 운동권 출신의 스타 강사 수는 다른 영역보다 급감할 것입니다. 또 생계형 작은 교습소를 운영하거나 여러 학원 소속 무명 강사들로 뛰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분들은 우리 얘기에서 논외로 하고 싶습니다. 이 분들 중 상당수는 생계유지를 위해 사교육 시장에 들어와 생계를 위해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로서 현 사교육 시장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 386 운동권이 시장을 장악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조직력과 친화력?

그들만의 조직력, 친화력 필요했겠죠. 그러나 386 운동권이 시장을 장악한 배경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경쟁 시장인 사교육 시장에 들어온 386 운동권 출신 인물들도 서로 견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동일 조직 내에서도 그들 간의 경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386 운동권 출신들 중 학원을 기업화하여 속칭 ‘교육 업체’로 변신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기업화 과정에서 붕괴됩니다. 강사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원장 변했어, 그는 돈만 밝히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했어’, 이런 말과 함께 돈을 벌어다준 강사들이 나가면서 학원이 흔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입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한몫을 하구요.

 

운동권 출신 인물들이 ‘후세에도 남을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낼 역량을 가져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현재 사교육 성공 신화를 이룩한 인물 들 중 386 운동권 출신을 거론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는 운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변변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 생계를 위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분들이었으니까요. 한편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학벌 지상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학천 등 논술 학원이 성공한 때는 학력고사 대신 수능이 도입되고, 이후 논술이 입시에 도입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논술 전형이 약화되자, 몇몇 대형 학원은 과거처럼 호황기를 누리지는 못해도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메가스터디의 경우, 초창기에는 어려웠던 것으로 압니다. 사탐과 과탐이 입시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여기에 인터넷 보급률의 가속화에 힘입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경영인으로서 입시제도 변화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변화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해 성공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메가스터디의 현 위상이나 잘 나가가다 망해 가는 대형 학원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386 운동권 출신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교육 시장의 변화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입시 제도가 너무나 자주 바뀌니, 그렇게 여겼던 것은 어찌 보면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 정책, 특히 입시 제도와 관련된 정책의 결과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런저런 제도가 도입되면, 물량 공세에 들어가 대대적 마케팅을 합니다. 전단지 뿌리기에서부터 각종 설명회, 그리고 신문 방송사와 결탁해 대대적 마케팅을 합니다. 진보를 표방하든 보수를 표방하든 모든 신문사는 현재 사교육 시장 문제를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요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예 신문사들이 사교육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드는 판국이며, 여기서 김 기자가 속한 신문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신문사들이 기사로 흘리는 교육 콘텐츠를 보면 한심합니다. 그것들은 교육 콘텐츠로 불릴 자격이 없는 것들입니다.

 

각종 선동 문구로 치장한 선동성 선전에 휘둘리는 부모들, 일명 이 학원 저 학원 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선동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회 뒤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며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일명 ‘팔랑귀 학부모’들도 현 사교육 시장의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비판받아야 할 세력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흘리는 신문사들을 보면, 마치 ‘이중인격자’를 대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일 교육 팔아먹다, 소재가 떨어지면 핀란드 교육 팔아먹고, 급기야 덴마크 교육이 어쩌네 하며 사교육 시장을 까대면서도, 뒤편으로는 고등학생도 아닌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논술 캠프를 진행하고, 또 조잡한 내용의 칼럼 등을 통해 특정 업체를 간접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진보 혹은 보수를 내세우는 모든 신문사에 공통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응해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공연 중 횡설수설로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처럼 전화로 횡설수설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김 기자도 당황스러웠을 텐데, 아무튼 ‘나들’은 뭔가 다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 386 운동권은 어떻게 기존 시장을 잠식하고 시장에 진출했나요? 대치동 -> 중계동 신규시장 진출 전략 ?

글쎄요, 기존 시장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있었나요.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앞에서 답한 것으로 대신하죠. 다만 386 운동권들이 사교육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는 입시 제도가 달랐습니다. 학력고사 세대는 노량진, 용산 등지에 밀집해 있던 종합학원들이 대세였습니다. 오프라인 중심의 학원가는 ‘정책 발표 결과에 맞춰 뒤늦게 행동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그런 보수적 전략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입시제도가 학제 개편과 함께 급격히 변하는 경우, 사교육 시장의 판세가 확 달라집니다. 386 운동권은 분명 그런 판세 변화의 덕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음입니다. 왜 하필이면 사교육 시장 문제를 거론할 때 386 운동권을 물어지느냐? 386 운동권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세력입니다. 성인이면 누구나 한 표를 행하도록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정착한다고 해서, 사회가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고 특정 계층의 계급화를 가로막을 수 있을 정도로 민주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진화’가 거론되는 것이겠죠. 사실 지금 현실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시험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386 운동권에 대해 희망과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 희망과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386 운동권 출신 중에서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교육비 문제만 해결되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따라서 사교육비 증가의 원흉을 찾아 돌팔매질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때 386 운동권 출신의 사교육 업체나 대형 학원 원장들이 쉬운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육 콘텐츠라 불릴만한 것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돌 맞아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교육비 증가 문제는 그들만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없애면, 또 다른 그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들을 비판하더라도, 이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단지 어떻게 하다가 곪아 터진 고름 주위에 모여든 파리 떼일 뿐입니다.

 

 

- 특히 논술학원들이 성공한 같습니다. 학창시절 철학 세미나 등이 배경일까요?

초창기 논술 문제를 보면 철학에서 많이 나왔으니, 그런 세미나가 성공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생적 담론을 산출해 내지 못할뿐더러, 자기 이론으로 승부를 걸 수 없는 곳이 한국 철학계입니다. 저는 이 땅의 대부분 철학자들을 ‘자신이 헷갈려 남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족속’, ‘남의 것 빌려다 권위를 누리려는 족속’ 혹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서양을 까대며 문명 대안론을 내세운 족속’ 중 한 부류에 속한다고 여기는 놈입니다. 한국 대학 철학과 세미나 분위기 잘 압니다. 특히 80년대 분위기요. 그런 분위기로 386 운동권이 논술 시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 원인은 철학 지식이 아니라 세태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에 있었겠지요.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은 스타 강사로 알려지지 않았어도 여전히 논술 시장에서 벌만큼 법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도태되었거나, 줄어든 통장 입금액을 보며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겠죠.

 

논술 문제는 사실 지난 10여년에 걸쳐 생각보다 그 출제 방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최근 문제들을 보면, 386 운동권이 참가했던 철학 세미나 내용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영양가 없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경계, 인문계 등 논술 영역이 세분화되면서, 영역별로, 또 학교별로 출제 방식이 다릅니다. 386 운동권이라 딱히 집어 말할 수 없는 386 끝자락 세대, 즉 지금 30대 말에서 40대 초나, 아니면 더 젊은 충이 논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해의 경우, 특목고, 외고 및 자사고들이 입학사정관제나 특수 전형을 노려 학생들을 지도하기에 논술 시장은 몇몇 군데를 제외하곤 찬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많은 논술 강사들은 학생들 중 입학사정관제 등을 포기할 시점에 이르러야 논술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거처럼 모든 대학이 논술 전형으로 학생을 뽑는 것도 아니고, 또 논술 전형도 점점 종합 방식의 평가제를 도입하고 있는 까닭에, 그 기대가 충족될지는 그때 가보아야 압니다.

 

어쨌든 현행 논술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논술 자체에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들을 보면 글 구성력을 평가하겠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 누구누구의 이름과 고등학교 선생들 이름이 붙은 논술 관련 보고서가 대교협 자료란에 올라옵니다. 보면 욕 나옵니다. 그저 ‘새 시대에 적합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각 대학 예시 답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논제가 제시문과 동떨어지거나, 또 제시문에 나온 내용이 잘못된 것도 많습니다. 그런 것을 지적하고 정말 학생들의 구성력 등을 평가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런 보고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논술 문제들을 보면, 여러 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합의와 검토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힘듭니다. 자기 보존과 관련된 소극적 자유를 제시문에 소개해 놓고 도표 해석에서 제시문에도 없는 ‘최저생계비’를 등장시킨 문제, 쾌락 공리주의가 이타성을 전제해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정의론의 입장이라는 황당한 제시문의 내용, 제시문 내용과는 무관한 퍼즐형 문제를 수리추리로 둔갑시킨 문제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논술 문제들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논술 문제라고 내놓고 수당 챙겨 가다니, 정말 팔자 좋은 인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 현재 사교육 시장의 재편, 학원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박학천 과거 잘나갔던 학원들은 부도를 맞기도 했습니다. 대형학원들은 몸집을 키우고, 기업화 하고 있는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쉽게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 기업화되지 않은 대형 학원이라면, 원장에게 몸집 줄이고 특정 영역을 전문화하라고 충고해 주고 싶습니다. 외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한 가지 방식으로 학생을 뽑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또 사회의 다변화로 인해 그런 방식으로 학생을 뽑는 것은 대세에 어긋납니다. 이런 와중에서 함부로 몸집을 키우는 전략은 매우 위험합니다. 사실 학원을 접고 전문화된 소형 교습소로 운영 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이 학원가에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만 대규모 업체나 대형 학원 중에는 과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시장을 독식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사실은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사업 영역을 다변화하거나 다른 영역으로 이동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몇 년 전에 비해 주가가 반 토막이 난 메가 스터디는 성인 시장을 잠식하려 하고 있으며, 비상교육 등은 학령인구 감소 현상에 대비해 교과서 출판 사업에서 스마트 교육 쪽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고작 교과서 내용을 컬러로 화려하게 편집한 어플리케이션 정도만 개발하고 죽은 영역이 ‘스마트 교육 분야’입니다. 스마트 교육 분야야말로 더욱 정교하고 창의적이며 충실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현행 사교육 업체는 선행 교육 등 내용을 가지고 스마트 교육 선전을 해댈 것이지만 스마트 교육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에는 실패할 것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회는 ‘진정한 콘텐츠’라는 것에 ‘진정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척박한 곳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일부 사교육 업체는 중고등 시장에 집중된 사업 영역을 아동 및 성인 계층으로 확대키는 동시에 스마트 교육 분야 등도 독식해 보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 과거 메가스터티의 성공으로 많은 학원들이 메가스터디를 벤치마킹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타에듀의 외자유치(골드만삭스, 지금은 지지부진), 중앙유웨이 등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 학원가 재편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메가스터디든 어느 곳이든, 전문적 경영이나 진정한 교육 콘텐츠 개발 능력을 가진 곳은 아닙니다. 그저 강사 경쟁시켜 스타 강사 만들기가 전부일 뿐입니다. ‘온라인 인강 사업으로 대기업이 되다!’ 이거 정말 이 사회의 슬픈 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옛날 리트 시장이 열릴 때 메가고시 이사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적이 있지요. 저보고 메가스터디 상표달면 대강사가 될 수 있으니 무슨 연구 소장하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연구소냐, 결국 동영상 강의찍어 매출 올리면서 연구원 데리고 문제 만들라는 얘기 아니냐, 그렇게 돈 많은 집단이 돈을 쓸 줄 모르냐? 지금 방식으로 메가스터디가 계속 승승장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일반 학원도 강사 경쟁시키는 전략을 가지고 운영을 합니다. 대형 학원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골드만삭스가 학원 업체에 투자할리 만무하죠. 사교육 시장이 크니 침은 흐리지만, 조사를 해보니 지속성을 가진 콘텐츠라고는 개뿔 아무것도 없죠. 더욱이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드니, 향후 투자 대비 이익률을 계산해 보면 ‘장기적 투자는 금물’이라는 공식 바로 나옵니다. 지금 학원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학원은 권리금 포기하고 내놓아도 계약이 쉽게 성사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반면에 과외는 늘고 있는 것 같구요.

 

 

- 386 운동권의 변절?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50대의 보수화가 화두였습니다... 386운동권이 사교육 시장에서 얻은 부와 권력도 했을까요?

운동권의 변절이라! 독재 시절에는 독재자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여러 정치적 세력들이 공공의 적인 일제에 대항하여 뭉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세력 간 상호 평가는 일단 나중 일이었죠. 독재 시절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면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도록 절차적으로 민주화된 이후, 세력 간 상호 평가 및 대중의 선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진보의 적이라 불리는 MB도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을 갔다 왔잖아요. 386 운동권은 민주화 투쟁 시절에는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절차적 민주화 이후 그들 중 누가 보수 노선을 옹호한다고 변절자로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다만 학원가에서 성공한 일부 원장들 중에는 마치 현재 자신의 부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더군요.

 

과거 대치동에 큰 학원 원장의 과외 선생을 겸해 그와 일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스타 강사였습니다. 그때 놀랐던 것이 주변에 꽤 유명한 재야 철학자도 있고 그렇더군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술자리 단골 화제가 자신의 화려한 민주화 운동 경력이었습니다. 진정성을 강조하며 보수 세력을 싸잡아 몰아세우지만, 정작 그의 행동 방식은 그 세력과 너무나 닮았더군요. 그와의 인연을 끊고 ‘나보다 돈 많은 놈은 믿지 말자!’ 결심했었죠. 한때 학원가에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마치 시간강사가 정식 교수가 되면 사람이 변하듯, 강사가 얼마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사람이 변한다.’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험을 386 운동권 출신들에게 한 적은 꽤 많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들 모두는 아니죠. 그들 중 다수는 생계유지를 위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매일매일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갈등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 점만은 반드시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50대의 보수화라!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이 없어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통계를 조사해 본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조사 없이 함부로 5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개인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원래 진보와 보수 정치적 이념에 의해 구분되기보다는 개혁의 필요성 여부와 개혁의 속도에 의해 구분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자유 시장 경제의 활성화 정도 여부, 복지 정책의 강도 등과 관련해 진보와 보수를 정치적 측면에서 구분해도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보수는 기득권’이라는 공식이 바로 성립했다면,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서로 색만 다를 뿐 정치 세력 모두를 기득권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로 진보든 보수든 정치 세력의 정치적 무능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 기술 정책이나 교육 정책을 보면, 진보든 보수든 ‘정책 무능력 집단’입니다. 원래 진보는 ‘사회를 주변 환경에 적합하도록 변통(變通)시켜야 한다는 것’을 전통보다 중요시하는 입장입니다. 그만큼 변통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진보 세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금방 식게 마련입니다. 이번 선거의 경우, 진보를 표방한 세력은 경제 민주화 등 자신들이 선점해야 할 정책 주제를 반대 진영에게 선점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를 표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그 세력을 밀어줄 것 같습니까? 또 사람들이 정말 그 세력을 진보로 볼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386 운동권 출신이 사교육 시장에서 얻은 부’를 ‘50대의 보수화’라는 상징어와 연관시킬 수 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 386 운동권들이 사교육 진출, 이로 인한 교육 시장에서의 공과는 무엇을 꼽을 있을까요?

386 운동권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여는 존중하며, 이 점에서는 그들을 존경합니다. 어려운 시절 그저 방황으로만 일관했던 저 같은 사람과는 다른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거둔 성공은 그들만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 성공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단면을 반영하는 것일 뿐입니다. 입시라는 미래의 사소한 목적이 아이들의 현실을 짓누르는 현 교육 시장의 현실은 무능력한 교육 정책, 개혁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대학 문화, 정치권과 교육계의 결탁, 각종 신문사와 교육계의 결탁, 구체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갈팡질팡하는 부모들,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사회 상태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운동권 출신 인물들의 ‘과’도 별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한 교육 시장의 ‘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남긴 콘텐츠 중 양질의 교육 콘텐츠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정치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구체적 정책을 제시할 수 없는 무능력자들이며, 또 그들의 정치적 무기라곤 이념적으로 상대방을 까대는 것밖에 없습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현 사교육 시장 비판가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시장에서 얻은 부로 ‘현실에 적합한 콘텐츠를 만드는 공익 연구소’에 투자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저 독일 교육이 우리가 쫓아가야 할 모델이라 하면서 정치 세력과 결탁하며, 독일 교육 모방론 약발이 다하니 핀란드 교육이라는 약을 팔다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덴마크, 스웨덴 교육 약도 팝니다.

 

핀란드가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한가요? 제가 괴팅겐에서 공부할 때. 한 기숙사에 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핀란드에서 독일로 유학온 학생이 20명이 넘은 적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의학을 전공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지만 대학 수가 너무 적어 괴팅겐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핀란드 교육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그곳도 교육에서만큼은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개인의 투자 대비 미래에 얻는 효과로 측정되는 교육 질과 관련해 대학 교육은 전 세계적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육 문제는 각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너무나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보려는 노력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싶은 사람은 교육 시장에 들어갈 구석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장 바닥은 양질의 콘텐츠 개발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정권이 바뀌어 졸속 교육 정책이 나오면 거기에 맞추어 선동구를 만들고 기출 문제 등을 재포장하는 것밖에 없는 시장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면접이 입시에 중요해지니, 대치동 논술 강사들 중 일부와 신문사 등이 결탁해 ‘유대인 방식의 토론 교육’을 강조하며 사교육 시장에 진입하더군요. 그런데 유대인 교육이 뭔가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유대 민족의 종교 교육입니다. 우리에게 그 이름이 익숙한 유대인들 다수는 프랑스에서 북유럽에 퍼져 살았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쥘 수 없었기 때문에 천대받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전문가로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면 가정교사를 불러와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그 교육 과정에는 체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유명인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받은 가정교육은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이 받는 입시 위주의 선행이나 선행을 빙자한 조잡한 영재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무튼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386 운동권 출신들은 후대에 남을 교육 콘텐츠라는 것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386 운동권이 한때 갖고 있었던 대중적 상징성, 즉 ‘민주화 투사의 진정성’을 감안한다면, 운동권 출신의 대형 업체 CEO 등은 후대에 높이 평가될 인물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성공신화 속에서 그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 교육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시장이 점점 팽창하는 이유?) 복잡한 입시제도도 같은데, 입시제도를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할 있을까요?

저에게는 너무 버거운 질문입니다. 정말 대를 물려줄 연구소를 꿈꾸던 시절 이런 인터뷰 기회가 있었다면, 거시적 차원의 교육 정책뿐만 아니라 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적이고 미시적인 정책들에 대한 구상을 꿈 이야기를 털어 놓듯 했을 텐데요. 지금은 이 사회에 기여할 것이 없다는 것을 넘어 기여할 필요가 없다고 결단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시적인 차원의 교육 정책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겠습니다. 다만 입시 제도가 현 교육 시장의 주원인으로 돌리는 것이 무책임한 이유를 밝히고 싶습니다.

 

그 어떤 학제 개편이나 교육 정책도 그에 부합하는 콘텐츠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콘텐츠 없이 성공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제 손목을 자르라면 자르겠습니다. 먼저 지식 사회에 필요한 문제 해결력을 갖춘 학생들을 선별하겠다며 나온 수능을 살펴봅시다. 글 내용 평가하는 문제와 근거를 찾아내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동일할 수 없습니다. 각 문제에 적합하도록 제시문의 논의 구조가 구성되려면, 별도의 제시문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문학 같은 문제를 보십시오. 대중서 일부를 잘라 억지로 문제를 갖다 붙인 방식입니다. 그렇다 보니, 난이도를 이중 부정형의 헷갈리는 질문이나 비비 꼬인 선택지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문제를 만들려면, 내용 이해 평가에 적합한 중문 제시문, 추리력 평가에 적합한 단문들이 개발되고 난도별로 ‘문제은행’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시문 및 문제 개발을 하는 기관이나 연구소는 없습니다. 대중서 일부를 잘라 억지스러운 문제들을 갖다 붙인 방식으로 구성된 것이 수능 비문학입니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자, EBS 문제집과 연계된 쉬운 수능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EBS 역시 각 문제 성격에 적합한 제시문 개발과 같은 콘텐츠 개발에는 무관심한 곳입니다. 말이 공공 방송이지 사교육 시장 억제 정책으로 탄생한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의 괴물이 EBS입니다. EBS는 저작권을 강조하지만, 제시문이 시중 대중서,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요상한 내용의 대중서 일부를 잘라 문제집을 졸속으로 만드는 곳이 EBS입니다. 자신들이 자체 개발한 제시문이 아닌데, 무슨 저작권 타령을 합니까? 그런 타령을 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것이죠. 현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과 보완 관계를 맺거나 공교육으로 처리하기 힘든 것을 담당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시장은 입시에 매몰된 시장입니다. 그런 시장을 억제하려면, 당연히 제시문을 자체 개발해 저작권을 걸고, 해당 제시문을 사용하는 곳에게 고액의 저작료를 요구해야 합니다. 반면에 학교 등은 무료로 문제 은행을 통해 문제들을 학교 시험 등에 상용하도록 허가해 공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제시문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나 학원이 살아남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교육 시장도 질적으로 진화하도록 유도했어야 마땅합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등급 조정을 전혀 하지 않고 쉬운 수능 정책을 밀고 나가는 정책 당국의 한심함입니다. 두 세 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추락할 수 있는 시험이 현 수능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현 수능은 일종의 자격시험의 성격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9등급제가 아니라 5등급 혹은 3등급제로 등급 조절해야 마땅합니다. 정부는 조금 한가해진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쉬운 수능 정책의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학원 수강생이 줄었다고 실제 수험생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9등급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수능을 쉽게 출제하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오히려 더 증가하게 됩니다. 더욱이 실수 하나로 등급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등급 조정 없이 진행되는 현 쉬운 수능 정책으로 인해 수험생들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더 커진 상태입니다.

 

입시에 매몰된 사교육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방과 후 수업을 강화하는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일명 학생들이 ‘야자’라고 하는 것이 방과 후 수업을 대표합니다. 야자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가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또 각종 교육 업체와 학교가 결탁해 사교육 시장 논술 강사 등이 방과 후 학습 지도를 맡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학교 선생들이 논술 교육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렇다는 것은 이해할만 하지만, 과연 검증된 강사들이 방과 후 논술 지도 수업에 투입이 되는 것일까? 그들의 자료를 보면,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힘듭니다. 학교와 사교육 시장 업차나 학원 사이에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입학사정관 전형이 강화되면서 몇몇 특목고나 자사고는 외부 강사들을 불러와 강의를 시키고 학생들로 하여금 보고서를 쓰도록 합니다. 입시 상담사가 입학사정관으로 채용되어 학생들을 선발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입니다. 각종 경시대회 입상 경력 등은 더 이상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점점 학생들의 에세이나 소논문이 입학사정관 전형의 객관적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는 판국이며, 이는 그나마 입학사정관 전형이 과거보다 나아졌음을 뜻합니다. 아예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제출한 다음 토론을 거쳐 학생을 뽑는 특수 전형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특목고나 자사고가 대학 등 외부에서 강사들을 불러와 강의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입시 제도에 적응하기 힘든 일반고 학생들이 불이익을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명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시간 강사 제도’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런 일입니다. 아무튼 입시의 공평성을 위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간 강사들 중 자원자를 각 지방 자치 단체에서 뽑아 해당 지역 학교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입학사정관제에 도전할 학생들은 전공 탐색 과정 강의를 듣고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아예 학생들 리포트나 에세이에 강사들이 학점을 주고, 이를 비교과 평가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교과 과정 평가 비율을 입시에서 줄이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입시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에 적합한 콘텐츠 부재와 구체적 방안의 결여가 진짜 문제인 것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입시제도롤 변화시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착각입니다. 그런 발상에는 그저 ‘정치적 절차로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신념은 진보와 보수 정치 세력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용 없는 형식이 공허하듯, 학제나 제도에 적합한 콘텐츠나 구체적 방안 없이 그러한 학제나 제도 또한 공허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새로운 입시제도나 학제는 각종 교육 업체나 대형 학원뿐만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를 등에 업은 학계 인물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의 빌미가 될 것입니다. 사실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융합 교육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 & Mathematics)’을 둘러싸고 그러한 밥그릇 싸움의 조짐이 벌써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그 콘텐츠 개발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융합 교육인데, 아무런 콘텐츠 없이 벌써 교육 업체들이 그것을 가지고 선전을 하는 상황입니다. 또 무엇을 중심으로 융합 교육을 진행할 것인가를 두고 쓰레기 내용의 대중서 저자들이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가 지속된다면,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386 운동권이라는 괴물, 그 이후 나타난 EBS라는 괴물에 뒤이어 또 다른 괴물들이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 복잡한 입시는 사실아빠들의 바지바람 일으키는 데도 했을 같은데, 실제 아빠들이 바지바람은 어느 수준인가요? 아빠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관여하는 형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제 경우, 주말만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해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돈을 챙깁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씩 학생들을 데리고 있는데,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는 입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학년부터 고학년 학생들을 다 상대하다 보니, 학년 별 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알게 되더군요. 일단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의 입을 열기가 힘들어 집니다. 또 학생들의 관상이 변합니다. 뭐 밝은 인상에서 어두운 인상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학생들은 다릅니다. 초등학교로 내려가면 수업 분위기가 완전히 시장판처럼 시끄럽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입시라는 목적 없는 공부의 맛’을 탐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리 문제를 풀 때는 그 문제를 푸는 것이 목적이며, 글 구성 훈련을 할 때는 구성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입학을 염두에 둘 무렵부터는 사회가 만든 입시라는 미래가 그들의 두뇌를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객관식 문제 풀기 귀신에 쓰여 에세이 쓰기 과정에서 탈락해 저와 이별하는 경우의 학생들이 생겨납니다. 중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들에게 입시는 그들의 현실을 제한하는 미래입니다. 이러한 세태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각종 학원 설명회를 찾아다니는 팔랑귀 학부모’들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런 팔랑귀 학부모들 대부분은 엄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치마 바람이라는 말이 생겨난 거죠.

 

치마 바람이 불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 기회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빠들은 거의 돈 버는 기계가 되었고, 엄마들은 자신의 열정의 자식 교육에 쏟아 부은 것이죠. 아빠들의 바지 바람이라! 아빠들의 바지 바람을 빌미로 ‘더욱 황폐해진 사교육 시장의 현실’이라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주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입시 설명회 같은 곳에 아빠들의 참여 비율은 여전히 낮습니다. 아빠들의 바지 바람은 차라리 초등학교 등 저학년 교육 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시장에서 아빠들의 바지 바람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해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하기 힘들군요.

 

분명한 것은 ‘자식 교육이 부모의 종교가 되는 것’은 자식에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부모가 사교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해도 성립합니다. 자식 교육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의 종교가 된다면, 자식의 자연스런 지적 발달은 기대하기 힘들어 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 끊겠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뷰 주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학년 교육 시장에 아빠들의 바지 바람이 분다면, 이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평가해야 할까요? 아직 그 누구도 그 바람의 정확한 모습을 모릅니다. 자식 교육에서 엄마가 느끼는 부담을 줄여줄지, 아니면 모두 가세해 자식의 지적 발달을 짓누를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속단하기 힘든 시점입니다.

 

 

 

* 덧글

자칭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자기는 자식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그혹시 그 말 속에 ‘사교육 반대가 진보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면, 사실 어이가 없다. 그 말은 단지 그가 무능력한 진보임을 증명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인터뷰 중에 기자에게 물었다. ‘이범이와도 인터뷰할 것 같은데, 맞는가?’ 기자가 대답을 안 하더라. 보니까 했더구만, 왜 숨겼는지 이해가 안 간다. 교육 내용, 정책 등을 다루는 교육 평론가가 너무나 많은 개한민국이다. 개나 소나 다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나라를 ‘개한민국’이라 불러도 된다.

 

마지막으로 공교육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사교육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입시에 매몰된 사교육’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사교육은 솔직히 입시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수동적인 인간들만 키워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