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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 단상: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활

착한왕 이상하 2013. 5. 31. 22:51

* 다음 트윗 단상은 2012년 2월 25일에 작성한 것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뉴스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글 등록 일자를 오늘로 수정했다.


[트윗 단상]은 트윗에 올린 단상들을 간단히 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글은 단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고, 이해에 필요한 많은 정보가 누락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 이 글에서 이 땅의 보수와 진보의 성격은 논하지 않는다. 하나는 분명하다. 양 진영의 대다수는 서로가 상대방을 제거해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활

 

L씨는 대선을 맞이해 고민에 빠졌다. 어느 정당이나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그들이 선점해야 마땅할 경제 민주화 공약마저도 여당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중도층을 규합한다는 명목 아래 야당과 여당의 실질적 정책 차이도 사소한 것이 되어 버렸다. 더욱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은 그 어떤 당도 제시하지 않는다.

 

L는 이번 대선 투표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대선 날 그는 야당 후보를 찍었다. 왜냐하면 여당 후보가 당선되면 그 목숨이 위태로운 ‘식민지 근대화론’이 과거보다 더 정교한 형태로 부활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L가 투표에 참가한 유일한 이유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다시 설쳐 대는 것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무엇인가? 일제 강점기가 교육이나 경제의 측면에서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그 기반을 발판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제가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자들은 경제 성장률, 문맹률 등의 자료를 가지고 그들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역사에서 한 시기가 다른 시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마치 인과적 관계를 맺는 것처럼 과장한다. 그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이란 현재를 논할 때 불필요한 것이다. 설령 그 가능성이 사실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또한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시키면서 성숙한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으로 경제적 발전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박정희의 독재는 개발 독재이며,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거쳐야 할 단계처럼 옹호한다. 더 이상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일본 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처럼 이 땅에서 이렇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여당 후보는 박정희의 딸이다. 그녀가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지만, 그 사과를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 점은 과거사에 대한 그녀의 일관적이지 않은 발언들만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녀의 정치적 조언자 김종인은 경제 민주화 공약을 선점하면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고 조언했었을 것이다. 그래야 대선을 여당 분위기로 확실히 몰고 갈 수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든 표면적으로 사과하든, 전략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결국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의 이 번 대선 실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침묵하겠다. 대선 실패 원인을 결코 지역 간 대립 등으로 몰아세울 수 없다고 보는 데, 이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하기 싫기 때문이다. 어쨌든 L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다시 부활하는 꼴이 보기 싫어 투표를 했다. 여당 후보가 탈락하면, 새 정부의 정책적 능력과 무관하게 식민지 근대화론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버티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이론적 체계성이나 정합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공 이데올로기 등과 맞물린 보수의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도 그 색이 점점 다양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상징성을 대표하는 여당 후보가 탈락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기댈 든든한 토대 하나가 날라 가는 것이다. 보수의 세력 사이의 갈등 구조를 살펴보면, 대선에서 탈락한 여당 후보가 정치적으로 부활하기 힘든 측면도 크다.

 

L의 희망은 여당 후보의 당선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여당 대통령 당선자는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을 쓰겠다고 한다.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 영조와 정조 시대는 주자의 본연론을 비판하면서 성악설인지 잠재적 선 옹호론인지가 애매모호한 입장을 바탕으로 예학을 옹호한 시대이다. 예학은 근본적으로 약해진 왕권과 전란 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고안된 사상 체계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특정 방향으로 제어 할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이 다수의 힘을 받으려면 탕평책과 같은 것은 효과적 전략임에는 분명하며, 이는 야당이 정권을 잡은 경우에도 유효하다.

 

그런데 여당 후보의 대변인 등 첫 인선을 보면 탕평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다. 정말 탕평책을 쓰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연설 한 번으로 많은 이들이 감동한 윤 모씨와 같은 인물을 섭외했어야 마땅하다. 어차피 그 자도 보수를 대변하는 인물 아닌가. 여당 후보는 대신에 반대편을 무조건 빨갱이로 모는 속칭 ‘수구꼴통’들을 인선했다. 이에 대해 합리적 보수를 가장한 일부 학자들은 ‘여당 대통령 당선자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물 타기를 한다.

 

그러나 권력가의 첫 인선이야말로 그 인간의 심층적 동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이 번 인선을 볼 때, 여당 대통령 당선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갖고 있고, 또 골수 지지층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는 동기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독재를 적어도 ‘필요 악’ 수준에서라도 정당화하려는 계획은 이미 추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 계획을 추진할 세력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학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말이다. 다만 과거 방식의 식민지 근대화론보다는 약간은 세련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적어도 국민 통합까지 아우르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 방식도 여러 가지인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게 될 것이니 함구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세력의 무능함이다. 솔직히 과거 논쟁들을 떠올려 보면, 논리적 정합성 등에서 비판세력이 반대편을 압도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L는 한탄한다.

 

• 저쪽은 이미 준비 중인데, 그들은 그것을 미리 예측해 여러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을까?

 

앞으로 5년은 매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단순히 여당이 다시 집권해서가 아니라, 주변 정세를 보면 그렇다. 물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정책의 구체성 등을 감안해 볼 때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부활해 잡음을 일으킬 것이다. 어쩌란 말이냐. 그냥 구경하면서 즐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대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