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자연철학

쿠자누스의 만유내재론(N. Cusa's Panentheism)

착한왕 이상하 2015. 6. 7. 18:43

 

 

* 쿠자누스의 만유내재론(Panentheism)

 

신은 자연이다(deus siva natrura). 이 문구를 철학적 탐구 대상으로 삼은 근대 철학자를 들라면, 스피노자(B. Spinoza)를 빼먹을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신이라면, 그리고 신이 창조주라면, 신은 창조 순간에 자연을 서식지로 삼은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현상은 유일한 궁극적 실체인 신의 물질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의 두 양상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자연과 신을 일치시는 사고방식을 기독교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난제가 있다. 창조주로서 신의 속성으로 간주된 무한성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신의 모든 피조물이 무한성에 대비된 유한한 것이라면, 어떻게 신의 무한성이 유한한 것들 속에 반영될 수 있을까? 자연과 신을 일치시키는 범신론적 입장을 이러한 물음과 관련하여 확장시킨 것이 만유내재론(panentheism)’이다.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음을 뜻하는 만유내재론이라는 용어는 셸링(F.W. Schelling)의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만유내재론은 이미 15세기 쿠자누스(N. Cusa)에게서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플라톤 및 피타고라스 학풍과 신비주의 전통에 호감을 가진 쿠자누스는 신을 수학자에 유비시키곤 했다. ‘신의 무한성무한한 크기의 원, 그리고 무한성에 대비된 유한한 것들은 유한한 크기의 다각형이나 원에 유비시켰다.

 

그 어떤 다각형도 무한한 원과 일치할 수 없다. 다각형을 유한한 것에, 그리고 무한한 원을 신의 무한성에 유비시킬 때, 이러한 유비는 그 어떤 유한한 것도 신의 무한성과 비교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유한한 크기의 원은 단 한 곳만을 중심으로 가질 수 있다. 반면에 무한한 크기의 원의 경우, 그것의 내부 어느 곳이나 중심으로 간주될 수 있다. 어느 곳을 중심으로 잡든, 그 곳을 중심으로 한 반경을 무한히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신의 무한성이 유한한 모든 것에 반영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유한한 크기의 원 둘레 일부분은 곡선이다. 유한한 크기의 주어진 원의 반경을 확대하면 할수록, 원 둘레 일부분은 직선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무한한 크기의 원은 직선과 동시 발생적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상반된 것들의 동시 발생성은 유한한 인간의 합리적 사고 능력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대와 최소, 축소와 확장, 선과 악, 정지와 운동 등 상반된 것들의 동시 발생성은 오로지 신비한 통찰을 통해서만 어림잡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통찰은 합리적 사고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즉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각각 신의 무한성과 유한한 것들의 비교 불가능성’, ‘유한한 것들에 반영되고 있는 신의 무한성’, ‘신의 무한성 영역에서의 상반된 것들의 동시 발생성이라고 하자. ‘신의 무한성과 유한한 것들의 비교 불가능성유한한 것들에 반영되고 있는 신의 무한성은 자연과 신을 일치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그 어떤 유한한 것도 상반된 것들의 동시 발생성이라는 속성을 가질 수 없다. 그 속성은 오로지 신의 무한성 속에서만 구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무한성은 유한한 것들의 총합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신은 자연에 내재하더라도 자연보다 더 큰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때 흥미로운 점이 있다. 유한한 것들에 신의 무한성이 반영되어 있다면, 유한한 것들은 상반된 것들이 동시 발생할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신은 자연 속에서 전개되며 동시에 자연을 감싸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결론과 유사한 생각은 쿠자누스뿐만 아니라 셸링, 헤겔, 화이트헤드(A.N. Whitehead), 라너(K. Rahner) 등에게서 엿볼 수 있다. 심지어 칸트와 퍼스(C. S. Peirce)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만유내재론은 외부 창조설에 바탕을 둔 정통 기독교 교리의 시각에서는 이단으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서양의 지성사를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세계 이해 방식 중 하나이다.

 

 

참고 문헌

Bacik, J.J.(2013), “Karl Rahner on God”, in Diller, J. & Kasher, A.(Eds.), Models of God and Ultimate Realities, Springer.

Cusa, N.(1440), De docta Ignorantia.

Schelling, F.W.(1809),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ueber das Wesen der menschlichen Freiheit und die damit zusammenhaengenden Gegenstaende.

Orange, D.(1984), Peirce’s Conception of God: A Developmental Study, Lubbuck: Institute of Studies in Pragmaticism.

Palmquist, S.R.(2008), “Kant’s Moral Panentheism”, Philosophia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