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자연철학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5.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

착한왕 이상하 2015. 4. 6. 22:11

 

5.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에 따르면, OMU는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TMA의 무한 후퇴 논증을 발생시키는 과정에 UI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 과정은 OM, SP, NI에만 근거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에 따르면, OMU를 전제한다. 물론 이때 그 전제 방식이 단순히 OMU의 형식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OMU가 내용적으로 이미 함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지는 논의거리가 될 수 있다. 전자의 전제 방식은 OMU의 분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반면, 후자의 전제 방식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OMU를 전제하는 방식은 논외로 하자. U를 전제한 OM 방식을 OMU라 할 때, OMU는 다음과 같다.

 

OMU

임의로 주어진 n개의 서로 다른 대상들 o1, o2, ..., on에 대해, F(o1), F(o2), ..., F(on)일 때 그 대상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F와 관련된 형상 F-ness’가 있다.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은 OMU, SP, NI에 근거한다.

 

(V-i) OMU에 따라 서로 다른 o1, o2, ..., on 모두 F일 때 o1, o2, ..., on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F와 관련된 F-ness’가 있다. 그 유일한 대상 F-nessF라고 명명하자. 이때 F는 형상 변수가 아니라 특정 형상의 이름처럼 취급된다.

(V-ii) SP에 따라 FF.

(V-iii) NI에 따라 F는 각각의 o1, o2, ..., on과 다르다.

(V-iv) o1, o2, ..., on, F 모두 F이므로 OMU에 의해 o1, o2, ..., on, F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F와 관련된 F-ness’가 있다. 그 유일한 대상 F-nessF1이라고 하자.

(V-v) SP에 따라 F1F.

(V-vi) NI에 따라 F1은 각각의 o1, o2, ..., on, F와 다르다.

(V-vii) o1, o2, ..., on, F, F1 모두 F이므로 OMU에 의해 o1, o2, ..., on, F, F1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F와 관련된 F-ness’가 있다. 그 유일한 대상 F-nessF2라고 하자.

(V-viii) SP에 따라 F2F이며, NI에 따라 F2는 각각의 o1, o2, ..., on, F, F1과 다르다.

(V-ix) 위 절차를 반복하면, o1, o2, ..., on들이 참여하는 서로 다른 F, F1, F2, F3, ..., Fn, Fn+1 등이 계속해서 나온다.

(V-x) (V-ix)o1, o2, ..., on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F와 관련된 F-ness’가 있다는 OMU와 모순 관계를 맺는다.

 

위 결론 (V-x)에서 알 수 있듯이,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은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달리 역설 형태를 띠게 된다.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은 단지 무한 후퇴 논증 방식만을 보여 주며, 그 결론은 U와 모순 관계를 맺는다.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은 무한 후퇴 논증이자 동시에 모순적 결론을 함축한 역설의 일종인 것이다. 따라서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에서 역설을 피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TMA의 무한 후퇴 논증은 OMU, SP, NI에 근거하고 있다. 무한 후퇴가 발생하지 않도록 OMU, SP, NI 모두 혹은 적어도 하나를 부정 혹은 수정하거나, 적절히 재해석하는 것이다.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은 다르다. 이 때문에, TMA의 무한 후퇴 논증을 피해 나가는 방법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서로 다른 구성 방식의 두 논증은 내용면에서도 다르다. 왜냐하면 실제 논증의 내용은 진술에 함축된 시제, 가능성, 필연성, 당위성 등의 양상 및 진술들 사이의 인과 관계뿐만 아니라, 논증 과정에서 진술들이 주어지는 순서에도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논증의 내용은 논증 목적에도 의존적이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에서 U는 전제로 사용되지 않는다.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에서 UOM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논증 구성 방식에서의 차이는 논증의 내용적 차이로 나타난다. 그 내용적 차이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그 차이는 두 구성 방식에 따른 TMA의 성격 차이로 나타난다.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에 따른 논증은 그 자체로는 역설이 아니다. 단지 그 논증의 결론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과 무관한 U’와 모순될 뿐이다. 반면에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에 따른 논증은 역설의 형태를 띤다. 그 논증의 결론 자체가 두 진술의 모순 관계나 모순형 결합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논증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논증 구성 방식은 논증의 목적에 의존적이다.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의 경우, 그 목적은 OMU를 동시에 주장할 수 없다거나, U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보이는 것이다. 반면에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의 경우, 그 목적은 각 형상의 수적 유일성을 전제한 OMU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OMU에 따르면, 술어 F를 만족하는 특정 대상들이 참여하는 형상 F는 단 하나로 유일하게 존재한다. 또 다른 술어 G를 만족하는 특정 대상들이 참여하는 형상 G는 단 하나로 유일하게 존재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형상들의 상호 의존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FG는 각각 FG에 관련된 형상들로서 서로 다르다. 파르메니데스는 TMA를 무한 후퇴 논증 방식의 역설로 규정함으로써 형상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됨으로서만 있음을 보이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술어 F, G에 각각 대응하면서 서로 다른 형상들 F, G를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블라스토스는 OMU, SP, NI에 근거한 TMA가 실제로는 타당하지 않은 논증이라고 주장한다. TMA는 논증 구성 방식에서 어떤 오류를 함축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TMA가 그러한 오류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면, 그 역설의 형태도 의미를 잃게 된다. 타당하지 않은 논증을 평가 대상에서 배제되지 때문이다. 블라스토스에게 TMA 문제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는 단지 플라톤의 지적 혼선(Platon’s intellectual perplexity)’을 보여줄 뿐이다. TMA 논증 구성 방식은 어떤 오류를 함축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다음의 타당성 기준에 근거한다.

 

논증 타당성 기준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은 전제들을 참으로 받아들일 때 그 결론을 내용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경우의 논증이다. 내용적으로 타당한 논증이 만족해야 하는 필요조건은 전제들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거나 모순 관계를 맺지 않도록, 혹은 그러한 불가능성이나 모순 관계를 함축하지 않도록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 논증 타당성 기준은 소위 아리스토텔레스 논증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의 거의 모든 논증들에 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논증 전통에 따라 생각을 펼쳐 나가자.

 

블라스토스는 TMA에서 SPNI가 양립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TMA가 실제로는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를 명확히 하려면, 블라스토스의 TMA 구성 방식 (V-i)~(V-x)에서 F와 관련된 형상 F-ness’가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달리 특정 형상의 이름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V-i)에 반영되어 있다. 주어진 대상들이 참여하는 F와 관련된 형상 F-ness’가 유일한 단 하나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F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 술어 F와 관련된 형상은 F 한 개로 고정된다. OMU에 따라 이렇게 F와 관련된 형상을 단 하나의 F로 고정시키는 경우, SPNI는 다음과 같이 의미적으로 축소된다.

 

SP

FF이다.

 

NI

FxF가 아니다.

 

이제 OMU, SP, NI에 근거한 TMA 구성은 오류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TMA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플라톤의 지적 혼선을 보여 준다는 블라스토스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플라톤의 지적 혼선>

NI에서 변수 ‘x’의 영역을 경험적 대상으로 국한시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처럼 그 변수를 경험적 대상으로 국한시킬 때, 무한 후퇴 논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NI에서 변수 ‘x’의 영역을 경험적 대상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플라톤의 의도가 아니다.

SP에 의해 FF이므로, NIxF를 집어넣어 볼 수 있다. 이때 NI에 의해 FF가 아니다를 얻을 수 있다. 그 결론은 FF이다와 모순 관계를 맺는다.

SPNI는 모순 관계를 함축하며, 그 근본적 원인은 NI에 있다. NIOMU, SP와 함께 사용될 수 없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렇게 사용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역설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타당하지 않은 TMA 무한 후퇴 논증은 플로톤의 지적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재 대세인 TMA의 구성 방식은 블라스토스의 이러한 <플라톤의 지적 혼선> 논의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 셀라스 등에 의해 고안된 것이며, 그 고안 방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OMU에서 등장하는 F와 관련된 형상 F-ness’를 특정 형상의 이름이 아니라 형상 변수로 취급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 OMU에서 U를 분리시킨다.

 

현재 대세인 TMA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 중 어느 것이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담긴 의도에 더 가까운 것일까? 이 물음은 문헌적 고증을 요구하는 작업이기에 나의 능력 및 관심사 밖에 있다. 하지만 TMA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아니며 플라톤의 지적 혼선을 보여 준다는 블라스토스의 입장에 대한 상이한 평가 방식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한 평가 방식은 플라톤의 형상론에 대한 상이한 접근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