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과학 속의 과학적 가설
- 골상학 -
이상하(철학 박사)
인간의 여러 능력은 ‘물질과 무관한 것으로 가정된 영혼이나 마음속의 어떤 작인(agent)과 같은 것’이 아니라 뇌 기능의 산물이며, 뇌는 어느 정도 서로 독립 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뇌 기능 분담설은 오늘날 가설이 아니라 사실로 여겨진다. 물론 마음이라는 현상이 뇌의 기능으로 환원 설명 가능한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뇌 기능 분담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도구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장치 fMRI’이다. 언어 능력, 지능, 특정 감정 등과 관련된 뇌의 기능적 영역을 추적할 때 사용되는 fMRI는 신문 기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한 도구가 없었던 시절, 뇌 기능 분담설을 주장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의사 프란츠 요제프 갈(F. J. Gall, 1758~1828)이다. 갈은 지금은 사이비 과학으로 간주되는 ‘골상학(phrenology)’의 창시자이다.
갈 시대에는 ‘마음의 기관들(mind’s organs)’이라는 은유가 유행했다. 그 은유는 인간과 동물의 능력이 보여 주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할 때 자주 사용된다. 엄격한 과학적 지식 체계의 형성 과정과 조건들을 논한 칸트의 철학에서도 ‘마음의 기관들’이라는 은유를 엿볼 수 있다. 감각 능력과 이해 능력을 이분하고 그 능력들이 발휘되는 방식을 합성하여 구체적 대상 및 대상에 대한 판단 표상들을 만들어 내는 칸트의 설명 방식에서 ‘마음’은 ‘물질과 독립된 영혼’과 다를 바 없다. 갈은 그러한 ‘마음’의 존재를 부정한다. ‘마음의 기관들’은 단지 ‘뇌의 특정 부분들’을 뜻할 뿐이며, 마음의 기능은 그러한 부분들의 기능일 뿐이다. 이 때문에, 초기 골상학 연구자들은 골상학을 ‘마음에 관한 진실된 유일한 과학(the only true science of mind)’으로 자처했다.
갈은 자신의 이론을 ‘두개골학(Schaedellehre)’이라 불렀다. ‘골상학’으로 번역되는 ‘phrenology’는 어원적으로는 ‘마음학’을 뜻한다. 그 용어는 그리스어의 ‘마음’과 ‘학문’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갈은 자신의 이론이 ‘phrenology’로 불리는 것에 반대했다. 아마도 그러한 용어가 ‘육체 소멸 후에도 남게 되는 영혼’과 같은 개념을 떠 올리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 철학의 ‘마음’이라는 개념은 영혼을 정신 작용의 원리로 간주한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며, 영혼의 기능을 사후 구원론보다는 인식론과 연관시킨 근대 이후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데카르트의 철학만 해도 ‘영혼’과 ‘마음’이 혼용되어 사용된 것이다.
갈 이론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i) 뇌는 마음의 기관이다.
(ii) 인간의 정신 능력은 일정 수의 독립된 기능들로 나누어 분석 가능하다.
(iii) 그 기능들은 선천적이며 각 뇌 표면의 특정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각 기능이 자리잡고 있는 부분의 크기는 사람의 성격구성요소 가운데 그 부분의 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 준다.
(iv) 두개골 표면과 그 하부의 뇌 부분 윤곽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머리 표면 관찰을 통해 뇌 부분들의 상대적 크기를 알 수 있다.
위 가설 들 중 (i)과 (ii)는 뇌 과학의 정설처럼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iii)도 일정 부분 인정되고 있다. 특히 인류 진화 역사에서 유인원들과 현생 인류의 두개골을 비교해 보면,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위 가설들 중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은 (iv)이다. (iv)는 가설인 동시에 (i)~(iii)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론을 함축하고 있다. 대범한 가설, 즉 ‘동시대 과학 공동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가설로서 만약 확정되면 기존 이론의 수정을 강요하는 가설’을 세운 과학자일수록 자신의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들만 채택하는 ‘인지적 편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갈과 그의 제자 요한 가스파르 슈프르츠하임(J. G. Spurzheim)역시 마찬가지였다. 능력 및 성격과 두뇌 부분들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들의 조사 결과는 당시에도 비판이 뒤따랐다. 실례로 1827년 윌리엄 해밀턴(W. Hamilton)의 비판을 들 수 있다. 이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피에르 플루랑스(P. Flourens), 파울 브로카(P. Broca) 등의 비판에 의해 과학 공동체에서 골상학을 추방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명 ‘골상학 대 반골상학 논쟁’으로 불리는 골상학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쟁에는 종종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 등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골상학은 점점 더 대중 속 깊이 침투하여 하나의 ‘컬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그 형성 과정에서 골상학은 18세기와 19세기 서양의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인종주의’와 결합하게 된다. 사실 골상학 자체는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사용될 수 있다. 두개골의 크기 차이에서 유의미한 인종 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 표면으로 추정하는 뇌의 특정 부분의 크기는 개인 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상학은 ‘신이 우열에서 차이가 나는 여러 인종을 창조했다’는 통속적 기독교 교리와 결합하면서 ‘과학적 인종주의’, 즉 ‘과학으로 인종주의를 증명할 수 있다는 관점’을 대표하게 된다. 이 점은 골상학을 수단으로 미국의 노예제를 옹호하려 했던 시도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골상학은 미국으로 전파되기 전 영국과 프랑스에서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했다. 그 지지자들 대부분은 일반 민중들이었다. 특히 골상학을 지지한 영국 중산층 시민들은 골상학을 이용해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의 생각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Psycho-Pass)’를 연상시킨다. 미래 어느 시대, 사람들의 성격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었다. 그 장치로 범죄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은 처형한다. 이하인 사람은 교화소로 보낸다. 영국 중산층 시민들 중 일부는 골상학을 이용해 범죄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을 미리 찾아내 교화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 사이코패스의 여주인공 아카네짱 -
미국에서 골상학이 노예제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을 보여 주는 영화를 들라면, 쿠엔틴 타란티노(Q. Tarantino)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극 중 인물 캘빈 캔디는 손님들 앞에서 흑인 노예들이 게으른 이유를 설명한다. 최근 죽은 노예의 두개골을 식탁에 놓고 ‘골상학의 과학은 우리 두 종족(백인과 흑인)의 분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라고 말한다. 두개골 뒷면 특정 부분을 지목하면서, 그 부위가 ‘복종심’을 나타내는 곳이란다. 그리고 흑인은 그 부분이 매우 큼을 강조한다. 캔디의 이러한 설명은 결코 갈의 골상학에 의해 뒷받침될 수 없는 것이다. 골상학에 담긴 갈의 동기는 마음의 기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지, 노예제나 인종주의를 옹호혀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중 한 장면 -
캔디의 롤 모델은 골상학으로 미국 노예제를 옹호하려 했던 인물들이다. 실례로 켄터키 출신의 의사 찰스 콜드웰(C. Caldwell, 1772~1853), 필라델피아 출신의 의사이자 인류학자 조지 모톤(G. Morton, 1799~1851) 등을 들 수 있다. 콜드웰은 신이 우열에서 차이가 나는 인종들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골상학에 근거해 증명하려 했다. 모톤은 골상학과 인류학을 결합시켜 백인, 황인, 아메리카 인디언, 흑인으로 이어지는 인종 간 서열을 증명하려 했다. 이들의 주장은 당시 다수 백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갈에 기원을 둔 원래 골상학은 노예제 옹호론과 거리가 멀었다. 골상학이 미국으로 건너가지 전,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골상학을 영국에 전파시킨 변호사 조지 콤(George Combe, 1788~1858)을 비롯한 대다수 골상학자들은 노예제에 대한 반대자였다. 콤은 특히 갈의 자연주의 정신을 계승해 ‘마음 역시 외부 물질의 법칙에 따른 두뇌 활동’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골상학으로 노예제를 정당화하려 했던 미국의 콜드웰은 일부 흑인들을 교화해 해방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화가 완전히 불가능한 인종은 흑인이 아니라 인도인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미국의 골상학자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 골상학자들은 노예제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골상학은 19세기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편견과 결합해 대중 속으로 침투했다.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교만한 캔디를 처단하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메시지는 ‘무비판적으로 확산되어 제도화된 편견을 부수어 버려라’는 것이다.
* 관련 글 <과학적 인종주의> -> http://blog.daum.net/goodking/98
'과학과 철학 에세이 > 역사의 단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힌두교(수정) (0) | 2016.04.19 |
---|---|
원자론과 서양 물질 개념의 기원 (0) | 2016.04.10 |
이븐 바투타의 여행 경로 (0) | 2014.08.22 |
본질주의적 인종 개념의 탄생(요약문) (0) | 2014.08.12 |
린네우스의 박사학위 (0) | 201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