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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구원의 논리: 기독교편 1

착한왕 이상하 2016. 1. 20. 00:43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독교의 유일신 개념은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고대 유대교 교리에는 사후 구원 개념이 명확히 등장하지 않는다. 사후 구원을 암시하는 유대교 문구들도 사실은 구약의 다니엘서 대목 등을 빌려온 것이다. 유대교도들의 삶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현세를 중시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삶의 목적 중 하나는 유대 전통을 계승 지속시키는 것이다.

 

사후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고대 유대교도들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선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또한 그러한 물음에 긍정하는 방식으로 모든 종교 교리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는 그러한 물음에 긍정하는 방식으로 형성된 여러 종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후 구원 가능성을 특정 종교에 국한시키지 않고 논리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가정을 전제하자.

 

(P1) 인간과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유일한 신이 있다.

(P2)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은 원죄를 타고 났기 때문에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위 두 가지 가정을 전제하고 일련의 물음들에 대해 답해 보자.

 

첫째, 원죄를 지은 인간에게 사후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준 신은 어떤 존재인가?

 

가정 (P2)에 의해 인간이 사는 곳은 불완전한 세계이다. 그 곳은 악이 없는 완전한 세계인 에덴동산에 대비된 곳이기 때문이다. 원죄로 인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에덴동산의 양심의 불꽃이 인간에게 남아 있어도, 그리고 악에 대항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어도, 누구나 한 번은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전지전능한 신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지 않고 그냥 없앨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신은 선 그 자체이자 조건 없는 사랑의 존재로 간주된다.

 

(P3) 신은 선 그 자체이자 조건 없는 사랑의 존재이다.

 

위 전제와 (P1)을 결합하면, ‘선 그 자체이자 조건 없는 사랑의 존재는 신 하나밖에 없다. 이로부터 아담과 이브의 타락 가능성이 성립한다. 아담과 이브가 신의 의해 선한 존재로 창조되었을지라도 신처럼 완전할 수는 없다. 여기서 하나의 반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 그 자체이자 조건 없는 사랑의 존재인 신은 아담과 이브를 용서해 주었으면 안 되었을까? 신이 선 그 자체라면, 그의 조건 없는 사랑도 악을 허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신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추방할 수밖에 없었다. 사후 구원은 신이 인간에게 회개의 기회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R1) 인간이 사는 곳은 일종의 도덕 훈련장인 셈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사람들만이 사후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요구하는 것 중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의무 이상의 행위혹은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없음에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의무 이상의 행위를 대표한다. 인간이 이를 알 수 있도록 신은 예수를 지상으로 보낸 것이다.

 

만약 의무 이상의 행위가 사후 구원의 최소한의 기준이라면,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을 규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일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톨릭 전통에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악의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기준으로 덜 악한 것을 판단하는 결의법(casuistry)이 발달했다. 종교 개혁기 이후에는 개신교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욕구 충족과 관련된 이기적 성향을 무조건 죄악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리에 따른 삶이 주는 즐거움은 곧 현세 구원이자 사후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관점도 득세하게 되었다. 그 어떤 경우든, 사후 구원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교리의 논리적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교세 확장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물음은 다음과 같다.

 

사후 구원의 대상은 개인인가? 아니면 전체 집단인가?

 

기독교적 사후 구원을 둘러싼 오해 중 하나는 불멸의 영혼이 사후에 어떤 빛에 이끌려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후 구원에 대한 이러한 식의 해석은 빛을 신성에 유비시키는 특정 교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해석은 기독교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단으로 취급된다. 기독교의 사후 구원은 사자를 되살리려는, 즉 부활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4) 기독교의 사후 구원에는 사자 부활이라는 목적이 함축되어 있으며, 부활의 대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사람들에 국한된다.

 

(P4)를 염두에 두고 두 번째 물음을 고려하는 경우, 다음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C1)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모든 사람들 전체의 구원 가능성은 개인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와 사자의 수를 합친 것을 X라고 하자. 종말이 없다면, 인구수가 줄어도 X는 계속 증가한다. 이러한 경우, 개개인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시간은 무한대가 된다. 무한대의 시간은 전지전능한 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은 원죄를 지은 인간에게 일부러 신앙을 심어 놓지는 않았다. 만약 인간에게 신앙을 심어 놓았다면, 지상에서의 도덕 훈련이라는 의미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평한 것들로 인해 사람들의 신앙심은 약화될 수 있고, 결국 인간에게 선이란 죽음 앞에 무기력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선이 죽음 앞에 점점 무기력해지는 인간 세계의 모습은 전제 (P3)와 어울리기 힘들다. 그 자체로 선하고 사랑의 존재인 신은 그래서 예수를 보내 자신의 뜻을 확실히 하려했다. 그 뜻은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모든 사람들 전체를 구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구원 가능성이 인간에게 실현되려면, 종말이 있어야 한다. 종말이 없다면, 개개인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전체를 구원하는 것은 무한대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무한대의 시간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기다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의 결론이 성립한다.

 

(R2)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모든 사람들 전체를 동시에 구원하려면, 인간에게는 종말이 있어야 한다.

 

사후 구원은 최후의 심판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심판의 대상이 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도 신의 사후 심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리 해석에 의지하는 경우, 살아 있는 사람과 사자에 대한 심판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는 설은 없다. 더욱이 심판 이후 사람들이 살게 되는 천국은 이 세상과 다르다. 종말은 천국이라는 사후 세계를 전체에게 열어 주는 데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사후 심판을 기준으로 현생 세계와 사후 세계가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최후의 심판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경우에도, 그는 사후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이면, 다음의 결론이 성립한다.

 

(R3) 종말의 날 신은 사후 심판을 통해 전체를 구원한다. 그 전체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 훈련을 마친 모든 사람들이며 사자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해 최후의 심판이 사후 구원이라는 개념 폭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위 결론 (R3)는 다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 종말의 날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신의 심판 기준은 무엇인가? 사후 세계 인간의 육체는 어떤 물질로 구성되게 될까? 사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문제들은 신학의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보다는 성경의 은유적인 특정 문구 해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답하는 방식도 교파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개인의 답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이 논의의 목적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다루지 않는다.

 

 

* 이어질 물음들

신에게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필요한가?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신의 전지전능함에 위배되는 것인가?

사후 구원의 매개물은 영혼, 육체, 의식 중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