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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구원의 논리: 기독교편 2 영혼론

착한왕 이상하 2016. 1. 23. 22:55

세 번째로 살펴볼 물음은 다음과 같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사후 구원을 위한 매개물은 필요한가?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영혼, 의식, 육체 중 무엇인가?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사후 구원에서 아무런 매개물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지 사후 부활이 아니다. 사후 부활은 사자의 무엇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R4) 사자 부활을 통한 구원은 매개물을 필요로 하며, 이 점은 신의 전지전능함이라는 속성에 위배되지 않는다.

 

기독교처럼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전제하는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하지만 이슬람교에는 원죄설이 없다. 이슬람교에서 예수는 120,000여 명의 예언자들 중 한 명일뿐이다. 무함마드(Muhammad)만이 인류에게 창조와 구원에 담긴 신의 참뜻을 전한 유일한 예언자이다. 이슬람교 경전은 육체와 분리 가능한 영혼을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명시하고 있다. 이슬람교와 달리, 성경은 무엇이 사후 구원의 매개물인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그 매개물이 영혼, 의식, 육체 중 무엇인지는 시기별로, 인물별로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한 다양한 해석들의 윤곽을 그려 보려면, 다음과 같은 부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C2) 사후 부활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 Y는 구원 이전의 삶을 기억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아니면 그러한 가능성을 반드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Y의 영혼이나 의식을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간주하는 경우는 ‘Y가 생전 기억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 Y의 육체를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간주하는 경우는 ‘Y가 자신의 생전 기억 가능성을 반드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경우이다. , Y생전 기억 불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 경우이다.

 

 

이제 위 도식을 분석해 보자.

 

영혼을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간주하는 관점을 이해하려면, ‘영혼이 서양 고대에나 중세에는 능력을 뜻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 영혼을 그저 육체와 분리된 정신적인 것으로 단순하게 처리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유기체의 다양한 활동 방식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능력들로 영혼을 해석하는 경우, ‘영혼이라는 용어는 항상 복수를 뜻할 수밖에 없다. 보는 능력, 듣는 능력, 느끼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 등 말이다. 그래서 능력들을 분류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서양 고대 및 중세 영혼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들을 생명의 원리로 간주하고, 성장을 담당하는 식물 영혼, 지각과 반응을 담당하는 동물 영혼, 추리 및 판단을 담당하는 합리적 영혼으로 구분했다. 플라톤 이후 영혼들을 주로 지적인 부분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분류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영혼들의 분류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논외로 한다. 사후 구원의 매개물을 영혼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분석하려면, 영혼에 대한 두 가지 이해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실체적 이해 방식>

영혼은 특정 활동성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인과적 작인(causal agent)과 같은 것이다. 행위 및 사고 활동 등은 영혼이라는 원인의 작용 결과이며, 능력이란 그러한 작용을 가능하도록 해 주는 영혼의 힘과 같은 것이다. 이때 그러한 원인은 육체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육체와 분리될 가능성을 갖는다. 그러한 원인으로서 영혼은 비물질적 혹은 비질료적 실체로 규정된다. 능력들이 다양해도, 능력들은 통합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연필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경우, 손 따로 머리 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영혼들이 여러 개라면, 영혼들의 조화로운 위계질서를 논해야 한다. 만약 영혼이 하나라면, 그 하나의 여러 측면으로 능력들이 발생하는 방식을 논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논의 방식은 알렉산드리아 시대에서 중세까지 이어진다. 그 어떤 이해 방식을 택하든, 영혼은 물질과는 또 다른 실체로 규정된다. 자아는 영혼들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한 것혹은 다양한 측면을 갖는 단일 영혼을 뜻하게 되기 때문에 실체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비실체적 이해 방식>

영혼은 특정 활동성에 내재한 성향과 같은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개체의 활동성은 그 환경에서 그 개체가 특정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출된 환경에서 공이 튀는 현상은 공이 튀도록 해 주는 물리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사고 활동도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성향들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한 성향들은 신경계, 내분비 체계 등 유기체의 여러 체계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아란 그러한 체계들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없다.

 

서양 고대에는 영혼의 <실체적 이해 방식><비실체적 이해 방식>이 경쟁 관계 속에서도 공존하고 있었다. 영혼의 두 이해 방식은 인간의 행위와 사고 활동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상이한 관점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관점만으로 인간의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영혼의 <실체적 이해 방식>을 지지하는 진영과 <비실체적 이해 방식>을 지지하는 진영 모두 개별적 행위 및 사고 활동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영혼의 두 가지 이해 방식 사이의 이러한 공존 관계는 알렉산드리아 시대까지 이어진다. 그 시대,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영혼을 간주하는 오리겐(Origen)의 입장이 나타났다. 최초의 신학자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영혼들의 통합성을 설명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플라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원자론자 및 스토아 사상가들의 주장도 일부 흡수했다.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영혼을 간주하는 것은 영혼의 <실체적 이해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한 이해 방식은 육체와 분리 가능한 영혼혹은 사후에도 남게 되는 영혼개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비실체적 이해 방식>은 고대 원자론이나 스토아 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원자론자들이나 스토아 사상가들 중 일부는 자아를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 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비실체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원자론자들 중에는 아예 자아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모든 현상은 원자들의 조합 및 운동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영혼은 단지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을 대체하는 용어에 불과하다. 스토아 사상에 따르면, 영혼을 가정하여 설명되는 모든 현상은 공기 중의 생명력인 프네우마(pneuma)가 육체로 퍼져 나타나는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자아는 그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일 뿐이다. 실체적 자아 개념을 부정하는 스토아 사상은 종종 로마 귀족들의 명예 자살을 정당화해 주는 토대처럼 기능했다.

 

육체와 분리 가능한 영혼혹은 사후에도 남게 되는 영혼개념은 1439년 플로렌스 가톨릭 협의회가 정죄계를 인정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사후 구원의 매개물을 영혼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종교 개혁기 루터 등의 비판 대상이 된다. 기독교에서 사후 구원론의 핵심은 사후 부활 가능성이며, 그러한 부활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시대별로, 교파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사후 부활을 통해 구원받은 X가 있다고 해보자. 그러한 구원의 매개물이 X의 영혼이라면, X는 살아 있는 동안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기억도 영혼의 작용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 (R2)(R3)의해 X의 구원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구원은 종말의 날 최후의 심판에 의해 동시에, 그리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죽을 수 없으며, 심판의 날까지 살아 있을 수도 없다. 최후의 심판 날 이전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 가톨릭의 정죄계 혹은 연옥은 영혼의 보관 장소로 가정된 것이다.

 

(R5)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육체와 분리 가능한 영혼이라면, 사후 부활을 통해 구원받게 될 사람은 구원 이전의 삶을 기억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사람의 영혼은 최후의 심판 날까지 특정 장소에 보관된다.

 

 

* 어이질 Part3. 기독교 필멸주의(Christian Mortalism)을 둘러싼 논쟁과 사후 구원의 매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