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Academic Info.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

착한왕 이상하 2016. 4. 17. 01:05

7월에 출간 예정인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을 수정 중에 있는데, 내용이 완전히 바뀐 부분들이 많다. 그러한 부분들은 새롭게 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 부분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보통 철학 입문서로 자유주의를 접근하게 되면, 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 기독교 전통이 깊숙히 개입외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개인주의. 경제적 합리성 등의 개념만으로 자유주의를 파악하고 있다가, 로크 등의 정치 철학을 보게 되면 혼란이 발생한다. 17세기 서양 철학에서는 정치와 신학의 분리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고 자유주의를 접근할 필요성은 여러 연구서들을 접해 보면 당연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그렇게 접근할 때, 자유주의의 여러 입장들을 깨끗하게 사전적으로 정리해 놓은 논문과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다음은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자유주의의 세 가지 입장>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기독교와 연관시켜 보편적 가치로 정당화하려는 입장이다. ‘종교적 전통을 정당화 맥락에 뒤섞지 않는 자유주의는 그러한 작업에서 신의 속성 등을 등장시키지 않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이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권리를 보편적 가치로 정당화하는 맥락에 신을 등장시키지 않는 경우에도 신을 자유에 대한 궁극적 원천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전통을 정당화 맥락에 뒤섞지 않는 자유주의자들 중 종교적 전통을 중요시하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표적 인물로 칸트(I. Kant)를 들 수 있다.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지 않는 자유주의는 종교적 전통을 정당화 맥락에 뒤섞지 않는 자유주의자들 중 종교적 전통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다.

 

 

위 정리 방식은 5-6쪽 정도 분량의 논의를 거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에 대한 기존의 지식에 더해 생각해 보면 분명히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기독교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다음을 권한다.

 

Trigg, R.(2007), Religion in Public Life: Must Faith Be Privatized? Oxford University.

 

트리그는 국제적 명성은 얻지 못했어도 영국에서는 꽤 비중있는 철학자이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과 성공회 교리쪽에 기운 철학자이다. 국제적 명성이 철학자의 실제적 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나야 무종교인이자 무신론자이지만, 트리그의 글은 좋아하는 편이다. 신 존재를 정당화 맥락에서 부정하려는 무신론자들과 달리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 인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리그의 책들 중 몇 권은 국내에서도 번역되었다. 그 중 <인간 본성에 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이라는 책이 있다. 원래 제목은 <Ideas of Human Nature>로서 최근판은 번역본과 달리 10명이 아닌 12명을 다루고 있다. 로크와 칸트가 새로 덧붙여졌다. 대학 학부생들을 위해 써진 책이지만, 다루는 인물들의 순서를 보면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책의 머릿말을 보라. 단 번역본의 주해는 비추다. 로크는 위 세가지 자유주의 입장 중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가 되며, 칸트는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권리의 정당화 맥락에 종교적 전통을 뒤섰지 않는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자유주의는 정치학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생각하면 된다.